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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nna Kwon Oct 26. 2018

바우지움에서, 조각은 살아있다

   기다림이 버겁게 느껴지는 어느 날이었다. 곧 상황이 정리되리라는 기대가 무너지고 적지 않은 시간을 기다림으로 채워야 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 끝이 언제일지 모른다는 불안함에 흔들렸다. 세상은 흐르고 난 그 자리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 같았다. 속초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기다림이 시작되기 전부터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그곳에 가고 싶은 의지가 올라왔다. 아이들 학교에서는 추석 연휴 이후로 이틀 더 휴교한다고 공지를 한 터라,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기에도 좋았다. 출발 하루 전날 마음에 두었던 숙소를 예약했다. 


   속초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지난여름의 뜨겁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즐겨 찾던 작은 서점에서 유현준 교수님의 북 토크를 한다는 공지가 있었고 나는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당시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교수님의 두 번째 책이 출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질문이 있느냐는 서점 주인의 말에 손을 들었고, 꼭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우리나라 건축물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때 처음으로 ‘바우지움(BAUZIUM) 조각미술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별표와 함께 ‘바우지움’이라 적었다.




BAU + MUSEUM = BAUZIUM



   바우지움(BAUZIUM)은 강원도 방언으로 바위를 뜻하는 ‘바우’(BAU)와 ‘뮤지엄’(MUSEUM)을 합성하여 지은 이름이라 한다. 조각가 김명숙 관장님 부부가 설립한 사립 조각미술관인 ‘바우지움’은 건축가 김인철의 작업으로 세워졌다. 하늘을 향해 열린 공간을 돌담이 고즈넉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매끈하고 세련된 콘크리트 벽이 아니라, 깨진 돌들과 얽히며 굳어진 콘크리트로 된 담이다. 완벽하게 구획된 담이 아니라, 깨지고 부서져 내린 것 같은 담이다. 시선 둘 곳 없는 밋밋한 담이 아니라, 노출된 돌의 질감에 손길이 머물게 하는 담이다. 담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우둘투둘했던 마음이 위로받는 것 같았다. 지어지다 만 것이 아니라, 완성된 것이 그러할 수 있음이 위로였다. 허름한 것이 주는 위안이다. 입구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서있는 박병우 작가의 <해갈>이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하늘을 향해 간절한 눈빛으로 기다림의 손짓하며 서 있는 두 여인의 모습이 구름 낀 흐린 날씨를 더 돋보이게 했다. 흐린 날씨,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도 누군가에겐 한없이 간절한 기다림일 수 있다.



박병우 <해갈>


조각이 살아나는 순간



   벽면이 아니라 공간 속에 자리 잡은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한 면 만이 아니라 모든 면을 보여주는 솔직한 조소 작품을 바라보며 좀 더 정성을 들여 작품 주위를 돌며 발걸음을 옮겼다. 한 면에 서서 바라보는 그림과 달리, 조각은 나를 움직이게 한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기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작품은 뒷모습으로 나에게 말하고, 어떤 것은 옆모습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근현대 조각관에서 나는 김창희 작가의 작품인 <비상>의 측면에서 오래 머물렀고, 황지선 작가의 <PLAY>를 위에서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어떤 시점에서 작품을 기억할지는 나의 선택이다. 모든 방향을 향해 스스럼없이 열려 있는 자유로움과 진솔함이 조각의 매력이다.



김창희 <비상>


황지선 <PLAY>



   이번 관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김명숙 작가의 <꿈꾸는 소녀>였다. 핑크빛 대리석으로 작업한 둥그런 몸매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풍선처럼 부푼 몸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고, 오므려 내민 입술은 풍선에 바람을 넣는 입구 같았다. 눈을 감고 꿈꾸는 표정을 한 소녀의 동그란 입에서 휘파람 소리가 날 것 같았다. 꿈을 머금은 온몸의 세포들, 노래하는 수줍은 입술. <꿈꾸는 소녀> 앞에 서서 내 마음 문을 열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줄어드는 건 꿈이어서, 하나씩 감동을 잃은 일상이 되어버리거나 현실에서 멀어져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모래같이 사라졌다.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부피가 줄어들어버린 내 마음에 다시 한가득 꿈으로 채우고 싶어 졌다. 그득하게 채워져 부푼 마음이 기쁨으로 둥실 거리게 하고 싶었다. 내 앞에서 살아나 나에게 꿈을 호흡하라고 속삭이던, 꿈꾸는 그 핑크빛 소녀처럼. 


김명숙 <꿈꾸는 소녀>



기다림에 대한 단상


   속초의 바닷가로 나갔다. 가을에도 서핑이 맛있는지 열 명은 족히 될 사람들이 물 위에 떠 있었다. 모래사장 위에 빨간 체크무늬 돗자리를 깔았다. 신발을 벗고 모래사장 위에 맨발로 섰다. 바다는 파란 하늘과 닮아서 닿아 있고, 내 맨발은 모래 색과 닮아서 닿아 있었다. 발등에 파도의 끄트머리를 적시는 일의 재미가 시들해졌을 때, <조각 감상법> 책을 들고 돗자리 위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쏟아지는 햇살을 책으로 가려보았다. 책 그늘이 제법 시원했다. 



   조각을 더 꼼꼼히 잘 감상하고 싶어서 감상법을 요목조목 설명한 책을 읽어보겠다며 가져간 책 <조각 감상법>은 내 의도와는 다르게 조소에 대한 개론서 같은 것이었다. 하긴, 감상이라는 게 규칙이나 절대적인 방법이 있을 리가 없지. 예술이라는 것은 감성과 감성이 만나는 거니까. 물론 예술을 이용하여 자신의 숨겨진 정치적 의도를 표현하는 경우엔 감별해야 할 필요가 있겠지만 말이다. 조각은 주변 공기를 호흡하고, 그 공간을 음미하며 손으로 만져서 얻어지는 예술이라는 글을 읽으며 그것이 내가 조각을 좋아하는 이유임을 알게 되었다. 흙과 바람의 솜씨로 빚은 소조, 정성스러운 작가의 손길로 본모습을 드러낸 조각, 다양한 재료로 작가의 감성과 의지를 드러낸 조소 작품들은 관람자의 시선으로 생명을 얻어 의미를 남긴다.


   책 속에서 문옥자 작가의 <기다림>을 바라보며 기다림을 생각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모든 기다림에도 반드시 끝은 온다. 톨스토이가 남긴 글처럼, ‘열매가 자라기 시작하면 꽃잎이 떨어진다.’ 열매가 아직 희미해 보이고, 꽃잎은 이미 떨어진 그 순간이 기다림의 시간이다. 기다림에는 열매가 있다. 열매가 설익지 않도록 서두르지 않고 최고의 타이밍을 잠잠히 기대하는 것이 기다림이다. 기다려야 강해지고 단단해지며 무르익는다. 열매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과 ‘인내’다. 반드시 열매가 맺힐 것을 믿음으로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자만이 기다림을 고통스러운 시간이 아닌 기쁨의 시간으로 채울 수 있다. 모든 두려움과 불안은 ‘만약’에서 온다고 했다. 모든 가능성과 의심을 내려놓고 최선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차창을 열고 뮤직 앱에서 ‘달리기’를 검색해서 플레이했다. 틀림없이 끝이 있음을, 그 끝이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열매일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열린 차창으로 싱그러운 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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