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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nna Kwon Nov 16. 2018

대림미술관에서, 취미를 관람하다


   유난히 추억이 많은 미술관이 있다. 나에겐 대림미술관이 그렇다. 몬드리안의 그림을 닮은 창을 가진 대림미술관으로 향할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고 그리운 이야기들이 있다. 얼마 전 갑자기 마음이 동하여 차를 가지고 대림미술관에 들르려다가 도저히 주차할 수가 없어서 돌아섰기에 오늘은 지하철을 탔다. 경복궁역 3번 출구 쪽으로 밀집되어 쏟아지는 듯한 햇살을 밀어내며 계단을 올랐다. ‘흐읍~ 하아~’ 가을날의 시원하고 청량한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한복을 입고 활보하는 거리의 꽃 같은 사람들이 눈앞을 스쳤다. 몇 년 째 그 자리를 지키는 유명 커피숍을 끼고 돌아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전시를 홍보하는 대형이미지들이 줄지어 늘어선 담장이 보였다. 오늘의 전시는 <나는 코코 카피탄,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다. 



전시회를 관람하는 취미


   ‘미술관 옆집’으로 들어갔다. 이전엔 카페였던 그곳이 이제는 입장권까지 판매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오래된 주택들의 변신이 아름다웠다. 대림미술관도, 미술관 옆집도 사람이 자신의 삶을 적시며 살았던 주택을 개조하여 꾸민 곳이라 더 아늑하고 따뜻했다. 전시회 표를 구입하면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보태니컬 아트로 프린팅 된 컵홀더의 꽃들이 으스러질까봐 조심스럽게 감싸 쥐고 이층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을 올랐다. 새빨간 철제테이블과 의자로 쏟아지는 빛이 눈부셨다. 이 전시회를 오기 전부터 읽었던 <취미는 전시회 관람>이라는 책의 남은 부분을 읽어 내려갔다. 대림미술관의 에듀케이터 한정희 씨가 쓴 책이다. ‘미술관 사용법’이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미술관에 대한 기본적이고도 상세한 모든 내용들을 담고 있다. 미술관과 갤러리의 차이는 무엇인지, 미술관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또 전시관람 에티켓이나 작품을 감상하는 다양한 방법, 전시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전시 만드는 과정들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책이다.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 중에 기억해둘만한 내용이 있었다. 작품 앞에서 ‘왜’라고 시작하는 질문을 하고 ‘왜냐하면’이라고 시작하는 답을 찾기, ‘만약에’로 물어보고 답하기,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 만들기 등은 오늘 적용해보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Just feel it!” 작품 그 자체를 느끼며 즐길 것! 




예술은 당신이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앤디 워홀-

   오늘도 나는 일상을 잠시 벗어나기 위해 미술관에 갔고, 또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예술을 만났다. 전시회를 관람하는 취미는 매일 새로운 공기로 인생을 충전하는 일. 이제 미술관에 들어가 볼까?




Is it tommorow yet?


   아무것도 모르면서, 단지 ‘호기심’ 하나 달랑 들고 전시장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그 흔한 전시에 대한 설명조차 읽지 않고 갔다. “그냥 느끼세요! Just feel it!” 오늘은 이 문장 그대로 해보자. 코코 카피탄이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작품에 대한 설명이라고는 전시장 벽에 쓰인 글뿐이라면 나는 어떻게 작품들을 느낄지 궁금했다. 전에는 전시 관람 전에는 그 작가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도 하고, 작가와 관련된 책을 읽기도 했으며 당연히 오디오 가이드까지 챙겨 듣는 나였는데 오늘은 습관적으로 하던 그 일들을 모두 멈췄다. 그리하여 나는 코코 카피탄을 문자가 아니라 그의 작품으로 대면했다. 생경하지만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만남이었는지도 모른다. 예술가와 관람객이 예술작품으로 처음 만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닐까?




   그의 사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해가 가지 않거나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작품은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좋은 작품들이 분명히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무의식의 끌림이다. 이끌림대로 그 앞에 서서 작품을 느끼는 일이 좋았다. 어떤 대형 프로필 사진 앞에서는 눈썹을 부드럽게 덮는 앞머리를 따라 눈길을 주다가, 오똑한 콧날로 또르르 시선을 떨어뜨렸다. 콧망울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시선은 인중을 타고 가볍게 다문 입술의 올록볼록한 선을 타고 흘렀다. 그 시선의 흐름이 좋아 몇 번이고 반복하였다. 그러다가 가장 빛을 많이 머금은 귀와 그 앞으로 생동감 있게 늘어진 발랄한 옆머리를 보았다. 사진 속 인물의 모든 둥근 선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기에 그 사진 앞에서 몇 번이고 시선의 미끄럼을 즐겼다. 




   <Escalator to a dream>이라는 작품은 지나가던 관람객 대부분이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가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나는 운명처럼 그 작품 앞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생각보다 감정이 앞섰다. 왜 나는 그 작품 앞에서 심장을 떨어뜨렸을까. 왜냐하면, 나는 그 에스컬레이터에 첫발을 들여놓을 찰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결정하면 이제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그 에스컬레이터에 첫발을 디디려는 순간에 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갈등과 불안한 감정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뒤에 미뤄두고 있다가 그 순간 그 모든 것들이 쏟아져버린 것이다. 사정없이 밀려 그 에스컬레이터 앞에 떨어져버린 것이다. 만약에 내가 저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발 딛기를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 아니, 그냥 두 발 다 그 위에 올려버리면 어떻게 될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모든 선택은 불안을 동반한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에스컬레이터 위에 한 발을 내딛었다. 이제 필요한 건 용기뿐이다.


메시지로 남는 전시


   코코 카피탄은 문자로 메시지를 남기는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다. 그녀가 쓴 영문자 ‘S’는 좌우가 뒤집혀있어 문장에 독특한 리듬감을 주었고, 그로 인해 문장들은 그림처럼 보였다. 노란 구찌 티셔츠에 쓰인 문장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I WANT TO GO BACK TO BELIVING A STORY

동화를 믿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누구에게나 순수했던 시절은 있다. 들리는 대로 듣고 보이는 대로 믿었던, 동화를 믿던 그 시절. 나이를 먹고 아는 것이 많아지고 생각이 깊어진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닌가보다. 들리는 대로 보이는 대로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걸 보니 말이다. 뒤에 숨겨진 의도를 추측한다는 건 지혜롭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동화를 믿는 순수함은 잃었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동화를 믿는 것처럼 믿고 싶다. 믿어지지 않는 것은 ‘설마 그럴 리가’하며 그냥 넘기고 싶다. 





“다른 사람이 잘하고 있다고 해서

네가 못하는 것은 아니야.

너는 잘하고 있어.

단지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을 뿐.“


코코 카피탄의 메시지를 본다. 동화를 읽듯 믿는다. 믿어본다, 아니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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