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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nna Kwon Nov 30. 2018

뮤지엄산에서, 미래의 건축을 만나다

   어제는 첫눈이 왔다. 쌓였던 눈이 얼마나 녹았는지 창밖을 내다보았다. 손에 든 스마트폰 날씨앱으로 원주시의 현재 날씨를 검색해보았다. 해가 가려질 정도로 구름이 짖게 낀 그림이 아쉬웠다. 일요일 여덟시 십분, 집을 나섰다. 한 시간 삼십분 정도면 도달하는 그곳을 난 참 오래토록 그리워만 해왔다. 그 이름이 ‘한솔뮤지엄’이었을 때부터 올해의 끄트머리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을 따라 가다가 드디어 고속도로를 달리니 그간 마음을 먹어야 갈 수 있을 것 같던 그곳이 참 가깝게 느껴졌다. 뮤지엄산이 겨우 한 시간 앞이었다.


   새벽처럼 안개가 많았다. 안개 덕분에 속도를 꽤 줄였다. 홀로 달리듯 안개 속을 느리게 달렸다. ‘불안해할 필요는 없어. 언젠간 걷히지, 안개는.’ 내 호흡만으로도 따뜻해진 차 안의 공기는 유리창을 하얀색으로 칠했다. 잠시 창을 열었다. 차창을 통해 빠른 속도로 내 머리카락과 얼굴을 휘젓듯 만지고 지나가는 바람이 들어왔다. 바람이 제법 찼다. 눈 덮인 산, 하얗게 내려앉은 안개, 유리창에 올라앉은 작은 물방울들, 그리고 차가운 바람으로 이젠 겨울임을 느꼈다. 뽀얀 입김이 자연스러워지는 계절, 겨울.


Museum. Space. Art. Nature.



   산에 있는 미술관이기에 ‘뮤지엄산’이리라 생각했지만, 산(SAN)은 Space, Art, Nature의 이니셜을 따서 만든 이름이었다. 공간과 건축이 있고, 예술이 있고, 자연이 있는 곳, ‘뮤지엄산’이라는 이름은 이곳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10시에 미술관 입장이 가능해지자마자 아무도 밟지 않은 첫눈을 밟듯 플라워가든으로 걸어 들어갔다. 붉은 패랭이꽃 대신 하얗게 눈이 쌓인 대지를 지나 하얀 자작나무들의 길로 들어섰다. “제제제제~”우는 새소리가 청량하고도 경쾌했다. 뮤지엄산은 겨울을 맞이한 자연보다 앞서지도 두드러지지도 않았다. 조용히 겨울의 품에 안겨있는 뮤지엄산의 모습이 고요하게 느껴졌다. 





   드디어 워터가든의 거대한 Archway를 만났다. 아무도 없는 워터가든에 들어선 순간 그 어떤 환영의 문구보다 격한 반가움으로 나를 환대하는 그 길을 설레며 바라보다가 걸어갔다. 조형물이 내 밖에 있는 것, 나와 분리된 것으로 생각되지 않고 그것을 통과하는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된 느낌이었다. 미술관 지붕에서 녹은 눈이 물이 되어 떨어지는 소리가 바닥에 고인 물에 부딪혀 똑! 똑! 똑! 소리를 내었다. 떨어지는 물소리를 음악처럼 들으며 미술관의 문을 열었다.  


풍경은 마음의 그림이 되어


   청조갤러리에서는 <풍경에서 명상으로>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하고 있었다. 오영희 작가의 <Radiant Center of Life>를 보고는 빛에 반사된 오묘한 색의 아름다움에 반해 다가갔다. 가까이 들여다보았다가 반대편 벽에 닿을 만큼 떨어져서 보았다가, 왼쪽 측면과 오른쪽 측면에서 또 바라보았다. 그러고도 떠나지 못하고 꽃향기를 맡듯 작품을 호흡했다. 한 가지 컬러로 설명할 수 없는 자개 꽃과 소녀 같은 분홍빛 꽃, 그리고 날아가는 스카프를 보았다. 마음이 살랑대다가 간지럽다가 분홍빛으로 물들더니 어느새 바람처럼 하늘로 붕 떠오르듯 날아가는 것 같았다. 공중에서 바람을 타는 스카프의 날갯짓이 아름다웠다. 자유를 느끼는 건 바람에 나부끼는 천 조각 하나로도 충분한 것을.





   이번 전시에서 내가 한동안 도무지 발걸음을 떼지 못했던 건 이해민선 작가의 <육지는 금방 차가워졌고>라는 작품 때문이었다. 마음이 쓸쓸해지는 거친 붓질을 따라 눈길을 쓸어내렸다. 바람이 휩쓸고 간 거칠고 황량한 땅 위에 ‘무언가’가 하나 서 있다. 멀리서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긴 머리 나풀대는 여인의 모습으로 보이다가 가까이서 보니 각목으로 아랫부분을 받쳐 무언가를 세워두고 반투명의 하얀 천 따위로 감싸놓은 것으로 보였다. 생명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육지 위에 서 있는 그 무언가, 그리고 바닥의 바퀴자국. 누군가 그 길을 지나갔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곳에 홀로 서 있는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위로가 있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따뜻한 위안이 느껴졌다. 한참 감상하다가 도슨트의 설명으로 알게 된 건 작가는 개발로 인해 모든 나무가 깎인 공사현장을 보고 이 작품을 그렸다는 것이다. 파헤쳐진 산에 아직 남아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통해 작가가 의도했던 것이 아무 말 없이도 이미 내 마음에 닿은 후였다.


보이지 않는 의도가 있다



   제임스터렐관으로 잰걸음으로 갔다. 제임스터렐관은 시간제로 입장하고 해설을 해주고 있어서 시간에 잘 맞추어 가야했다. 제인스 터렐(James Turrell)은 독실한 퀘이커교 가정에서 자라나 정신적인 수련과 침묵을 중시했다고 한다. 그는 “빛”을 주인공으로 작품을 펼쳤다. 나는 전시관에 들어가 어둠에 적응하기 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걸었다. Ganzfeld(간츠펠트)라는 작품 앞에서 도슨트가 남긴 말이 가슴에 몇 번이고 글을 썼다. “보이지 않는 의도가 있다.” 빛과 색을 매개로 제임스 터렐은 자신의 의도를 드러냈다. 관람객이 미처 알 수 없는 사이 그 의도는 관람객에게 신비로움을 경험하게 했다. 


보.이.지.않.는.의.도.가.있.다. 


우리의 삶에, 우리가 겪는 모든 일에 보이지 않는 의도가 있다. 우리가 보지 못해도 알지 못해도 우리를 창조한 분의 선한 의도가 있다. 


   Skyspace에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이 부셔서 눈을 감고 있다가 찡그리며 다시 눈을 뜨고 하늘을 보았다.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아주 빠른 속도로 지나가 버리는 구름도 있고, 잠시라도 머물다 가는 구름도 있었다. 바람의 속도와 힘을 느꼈다. 구름을 움직이는 거대한 손길이 느껴졌다. 이번엔 바닥을 보며 걸었다. 매끄럽고 검은 바닥에 비친 하늘이 내 발 곁을 떠나지 않고 따라왔다. 하늘의 구름을 움직이던 그 손길이 이번엔 나와 동행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인생엔 분명 보이지 않는 선한 의도가 있다는 걸.


건축은 여행을 부르고



   오늘은 <미래의 건축 100>이라는 작고 예쁜 책과 함께 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하고 지은 아름다운 건축물 안에서 미래의 건축을 읽는 시간을 누린다면 달콤하겠다 싶어서였다. ‘건축이 여행을 만든다.’라는 문장에 마음이 꽂혀 밑줄까지 치며 즐겁게 책장을 넘겼다. 가우디의 건축을 보겠다는 생각 하나로 바르셀로나행 비행기티켓을 끊고, 도쿄여행에서 꼭 시간을 내어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 오모테산도 힐스를 방문할 정도로 나는 미술만큼이나 건축물에 마음이 동한다. 마치 여행서적을 보듯 가볍게 책장을 넘기며 신기한 건축물들을 구경했다. 만약에 내가 집을 지으면 주변의 자연환경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거울벽면으로 외장마감을 해야겠다. 참, 새들이 지나가다가 부딪히지 않게 자외선 코팅을 잊지 말아야지. 집의 옥상에는 텃밭을 만들어 갓 딴 상추로 쌈을 싸먹으면 되겠다. 그리고 집 옆엔 오두막을 지어 벽면 책장엔 잔뜩 책을 꽂고 바닥엔 여기저기 책을 쌓아둔 작은 개인도서관 하나 만들면 좋겠다. 이 도서관의 지붕엔 오염된 공기를 정화할 특별한 장치를 설치하면 되겠다. 건축은 삶을 꿈꾸게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미술관 산책은 내 마음을 춤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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