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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nna Kwon Nov 23. 2018

성곡미술관에서, 명화로 독서하다

   서늘했던 공기가 쌀쌀하게 변하던 지난주부터 청명한 날씨를 시샘하듯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렸다. 간만에 찾아온 미세먼지는 전보다 더 가슴 갑갑하게 느껴졌다. 한낮에도 세상이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연회색 비닐을 눈앞에 펼쳐놓은 것처럼 세상은 뿌옇게 변했다. 계획했던 그날, 나는 성곡미술관에 갈 수 없었다. 미세먼지 앱을 보지 않아도 미세먼지를 눈, 코, 목으로 느끼는 나의 예민함 때문이었다. 그 나쁜 공기를 들이마시며 미술관으로 나들이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이 시뿌연 공기는 언제 가려나, 동풍아 힘을 내라! 




전시 없는 미술관


   전시는 끝났다, 불과 3일 전에. “다음 전시는 언제 시작될까요? “라는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은 ”올해 더 이상의 전시는 없어요. 내년쯤.“이었다. 전시가 언제 끝나는지 미리 챙겨서 알고 있었더라면 좀 더 일찍 챙겨서 갔을 거라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설사 지난주에 알았다 해도 나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성곡미술관엔 밝고 맑은 날에 꼭 가보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술관 앞에는 대형 트럭이 서 있었고, 이전에 전시했던 작품들은 잘 포장되어 그 트럭에 실리고 있었다. 다 끝난 전시의 뒷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어수선하면서 한편 적막감도 느껴지는 미술관 앞을 지나 티켓 부스에서 조각정원 입장권을 구입했다. 음료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입장권이었다. 성곡미술관의 매력은 조각정원과 정원 속 카페다. 나는 사계절 어느 때에 와도 그 계절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성곡미술관의 정원을 좋아한다. 오늘 만난 조각공원은 온전하고 완숙한 가을을 품고 있었다. 


꽃인지 별인지



   조각정원의 나무로 된 계단을 올랐다. 모든 따뜻한 계열의 색채들이 계단 위에 펼쳐져 있었다. 꽃인지 별인지! 가을 잎의 색깔은 참 예쁘다. 가을이 무르익으며 나뭇잎들도 점점 더 가벼워지고 이파리의 끝은 말린다.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낙엽 위를 걸었다. 바스락바스락, 사르락사르락 소리가 아슬아슬했다. 내 발걸음이 지날 때마다 부스러지는 낙엽의 소리를 들었다. 샘터 발행인 김성구 작가님의 표현대로 ‘낙엽이 먼지가 되는 소리’가 이런 소리일 것이다. 낙엽이 먼지가 되어 흩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슬쩍 부는 바람에도 쉬이 흩어져버릴 먼지가 되어버린 낙엽의 마지막이 쓸쓸하지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떠날 때 무겁지 않은 인생을 살고 싶다. 세상에서 누린 모든 것들을 도무지 손에서 놓지 못해 그 무게감으로 주위 사람들까지 힘겹게 하는 삶은 슬프다. 내려놓아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인생이 아름답다. 바람을 탈 수 있을 만큼 가벼워지는 인생이 아름답다. 꽃 같고 별 같던 인생의 마지막은 부드럽고 순하며 따뜻한 바람 같아야 한다.




조각정원의 가을을 걷다


강대철 <구도자>


   해가 기울어가는 오후의 조각정원을 홀로 걸었다. 꽃길을 걷듯 낙엽 위를 걸으며 조소 작품들을 감상했다.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마주하는 조소 작품들은 더 친근했고 가까웠다. 사박사박 걷다가 만난 강대철 작가의 1993년작, <구도자> 앞에 멈춰 섰다. 뾰족한 가시관을 머리에 쓴 채 두 눈을 감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난 괜찮다. 너를 위해서라면’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 다문 입에서는 나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먹먹해진 가슴으로 한참을 바라보던 작품을 지나 걷다가 돌아보았다. 작품의 뒤편을 보고 나니 와락 눈물이 고였다. 뻥 뚫린 것 같은 얼굴의 뒷부분 때문에. 움푹 들어간 채 비어있는 얼굴의 뒷면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랑과 맨 밑바닥도 마다하지 않는 겸손함을 보여주는 듯했다. 진정한 사랑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그 자체가 가장 큰 가치가 되는 것이다. 사랑을 받을 수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길 원하기 때문에 끝까지 사랑하는 것을 택한 신이자 인간이었던 유일한 한 분의 모습이 그 작품에서 보였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뒤에 잔뜩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도 괜찮은 것. 나에겐 아직 그런 사랑은 너무나 어렵다. 


오상욱 <4차원 드로잉 보행자>


   오상욱 작가의 <4차원 드로잉 보행자>를 가만히 보았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내 가슴에 느껴지는 대로 그것을 보았다. 맨 앞에 선 자의 침묵한 얼굴을 보았다. 꿋꿋이 서서 자기 페이스대로 움직이려고 하지만, 뒤에 선 사람들은 점점 앞으로 기울어져 맨 앞에 선 자를 밀어댄다. 맨 뒤의 사람은 마음이 급해 발보다 가슴이 먼저 앞으로 나가 있다. 그들은 걷는다기보다 밀고 밀리는 것처럼 보였다. 두 번, 세 번, 맨 앞의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괜찮니?”라고 묻고 “아니”라는 답을 들었다. 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눈은 아무 소망 없이 바닥을 향해있었다. ‘선택’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선택을 함에 있어서 우리는 세상의 시선과 가치로부터 자유하기가 참 어렵다. 단독자로서 결정하기보다 주위 시선에 밀리듯 결정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남들이 내게 원하는 것을 거절하는 용기를 수반해야 한다. 나는 맨 앞에 선 그가 고개를 들고 몸을 뒤로 돌리기를 원한다. 자신에게 기대어 원치 않는 속도로 자기를 밀어대는 그들에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길 바란다. 다시 홀로 자신의 길을 자기 속도로 걷기를. “Go your own way!”




명화로 문학을 독서하다



   정원 안에 있는 작은 카페의 테라스에 앉았다.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목을 타고 꿀꺽 넘어가니 온몸에 온기가 도는 것 같았다. 요즘 읽고 있던 책 <명화독서>를 꺼내어 읽었다. 명화와 함께 고전문학을 읽어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낙엽이 땅 위에 수북이 쌓인 작은 조각정원에서 가을의 품에 안겨 책을 읽는 호사스러움을 누렸다.


“긴 밤 내내 비가 후려치고 바람이 격렬하게 휘몰아쳤는데도 벽돌 벽에 담쟁이 잎 하나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덩굴에 붙어 있는 마지막 잎새였다. 잎자루 부분은 아직도 짙푸르지만 톱니 모양 가장자리는 사멸과 퇴락의 노란색을 띠고, 땅에서 20피트 높이 가지에 용감하게 매달려 있었다.”

_오 헨리, <마지막 잎새> 중에서


   나무에 매달려 있는 촉촉한 붉은 잎새들과 바닥을 나뒹구는 마른 잎새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직 저 위에 매달린 잎새들은 떨어질 때까지 온 힘을 다해 자기 자리를 지키는 ‘용감한 잎새들’, 바닥에 착지한 잎새들은 ‘갈 곳을 아는 지혜로운 잎새들’이라고 불러주고 싶었다. 너무 많아서 어느 것 하나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수많은 낙엽 중에 기억하고 싶은 이파리를 골라내는 아이의 손길이 정성스러웠다. 마침내 자신의 마음에 꼭 닿은 낙엽을 들고 내 책 사이에 꽂아주는 아이를 보며, 마지막 잎새는 그것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의미 있었음을 다시 생각했다. 내 책 사이에 보관될 이 붉은 낙엽이 나에게 소중해진 이유는 그것이 이 모든 낙엽들 사이에서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할 낙엽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담겨 내게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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