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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_배철현

샤갈의 [성서 메시지] 연작에 관하여

by Jianna Kwon
<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_배철현 저/코바나컨텐츠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

-러시아 비텝스크(Vitebsk)라는 도시의 유대인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남.
-하시디즘(Hasidism)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었다. 하시디즘은 유대 신비주의이며,
신앙 가운데서의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려는 의도를 지닌다.
-파란만장한 디아스포라의 삶
-'에콜 드 파리'멤버
-러시아혁명과 나치의 유대인 학살 경험.
-미국 망명



샤갈의 별명은 참 많기도 하다. '색채의 마술사', '화가의 날개를 가진 시인', '몽환적이면서 순수한 감성의 화가', '사랑을 그린 시인', '환상을 사실처럼 보여 주는 화가' 등 그는 20세기 화가로서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파리를 여행할 때, 퐁피두 센터에서 그의 작품인 <에펠탑의 신랑신부>를 보고 가슴이 마구 떨렸었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행복해지는 것 같은 달콤함을 경험했었다. 이 책은 그가 그린 주된 소재인 서커스, 연인, 성서 중 성서와 관련된 작품들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얼마 후면 프랑스 니스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니스의 국립마르크샤갈성서박물관에서 만날 그림들에 대해 알고 가고 싶었고, 검색하다가 알게 된 이 책은 현재는 품절 상태여서 도서관에서 빌려봐야 했다.

이 책의 저자 배철현 교수님은 신학을 공부하고, 히브리어를 공부한 분이다. 그런 저자였기에 샤갈의 [성서 메시지] 연작들이 그에게 더 의미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유대인으로써 온갖 풍파를 겪고 떠돌이 삶을 살았던 마르크 샤갈이 1955년부터 1967년도에 걸쳐 작업한 [성서 메시지]는 프랑스의 A. 볼라르(Vollard)에 의해 요청되어 작업이 시작되었다. 샤갈은 이 작업에 매우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직접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유적지에 가 보고 연구하고 깊이 생각하며 이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그리스어나 라틴어 번역본으로 기록된 성서를 보고 그림을 그린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샤갈은 구약성서의 히브리어 본문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 행간까지 읽을 수 있었으면, 유대인들 사이에 내려오는 구전으로 된 내용까지 모두 화폭에 담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리스어나 라틴어 번역상의 오역으로 인한 잘못된 그림 표현의 문제들은 원천봉쇄되었다.



샤갈이 사용한 색깔들의 상징적인 의미들을 적어보았다. [성서 메시지] 작품들을 감상할 때, 이 컬러들의 의미를 알고 있으면 전체적인 분위기를 쉽게 감지할 수 있고 또한 숨은 의도와 중요한 포인트를 잘 발견할 수 있다. 그의 그림에서는 사람의 머리에 뿔을 그려 넣은 것도 종종 등장하는데, 이는 그 사람에게 '신과 같은', '신격과 가까운'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성서를 주제로 하는 작품을 만들 때 예술 형식에서 꼭 지키는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신의 모습을 그림이나 형상으로 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에는 하나님의 손이나 임재 정도만 표현하고 있다. 창세기의 시작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이다. 하지만 샤갈은 우주 창조를 그리지 않았다. 창세기 연작의 시작은 <인간의 창조>였다. 그는 휴머니즘 철학을 가지고 있었고, 인간이 흙으로 만들어지고 단순히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가 아닌, '신의 형상'이자 '신의 모양'을 한 인간으로 보았다. 그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작품에 남겼고, 사랑과 인류애에 대해 강조했다. 1973년 7월 7일, 샤갈의 86회 생일에 <국립마크르샤갈성서미술관> 개관식이 있었다. 그때 그가 한 말의 일부를 보자.


이곳에 오는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은
내 색채와 선이 꿈꿔왔던
사랑과 인류애 이상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와 무관하게
누구나 여기서 상냥하고 평화롭게
그 꿈을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삶에서처럼 예술에서도
사랑에 뿌리를 두면
모든 일이 가능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만나게 될 샤갈의 작품들을 미리 알고 갈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더 좋았던 것은 히브리어에 기초한 성서의 내용을 설명해주는 배철현 교수님의 글들이 더 의미 있었다. '축복'을 뜻하는 히브리어 '버러카'는 '무릎'의 의미를 포함하며,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하시고자 하는 바를 깨닫고 순종하는 것이라는 글과,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의 시험'이 주된 포인트가 아니라 '이삭의 희생'이 주제인 이유에 대한 설명, 또한 '야훼'라는 히브리어가 'to be alive'라는 의미와 'to make alive'의 의미를 모두 포함하는 사역형 동사라는 것, '가시덤불'의 의미에 대한 내용은 마음속에 밑줄을 긋고 써두고 싶은 것이었다.

샤갈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 대한 신앙 여부, 하시디즘이 그에게 미친 영향 등을 떠나서 그의 그림을 직접, 어서 빨리 만나고 싶다. 그의 그림을 통해 내가 어떤 감동을 받고 어떤 묵상을 하게 될지도 기대가 된다. 그가 그림에 남긴 메시지보다, 그 그림을 통해서 나에게 보게 하실 하나님의 메시지가 더 궁금하다.


The Well-beloved

니스가 아니었다면,
샤갈의 [성서 메시지]는 아마 내게서 스쳐 지나가는 제목이었을지 모르겠다.
곧 떠날 여행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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