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을 읽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_유현준

자연과 사람의 향기를 담은 도시 건축

by Jianna Kwon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_유현준 지음/을유문화사


얼마 전 운동을 하면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치이나는 클라스 <동네가 사라지면 사람도 사라진다>편을 보게 되었다. 조정구 건축가의 도시와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높은 빌딩보다 낮은 한옥에 살고 싶어졌고 우리나라에 아주 오래된 집들이 더이상 사라지지 않았으면 싶었다. 건축에 대한 글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문득 얼마 전 서점에서 본 이 책이 생각났다. 그래, 우선 베스트셀러부터 한 번 읽어보자!

이 책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이자, 몇 차례 TV 방송에도 출연하면서 인지도가 높아진 유현준 교수님이 쓰신 책이다. 건축이라는 영역은 사실 자기 집이나 건물을 짓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는 영역이지만, 사실 우리는 수많은 건축물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건축과 떼어놓으려야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에 살고 있는 우리가 내 집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볼 수 있도록 시야를 확장시켜주는 책이다. 저자 유현준 교수님이 이 책의 마지막에,

이 책은 건축가가 건축비전공자에게 보내는 일종의 편지이다.

라고 썼듯이 건축비전공자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도시의 건축과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꼭 읽어두면 좋을 책이고, 무엇보다 읽는 내내 신선하고 재미있고 감동도 있었다.


통섭(統攝, consilience)


큰 줄기(통)를 잡다(섭), 즉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는 의미로,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범학문적 연구를 일컬음.
『사회생물학 : 새로운 종합(Sociobiology : The New Synthesis)』(1975)을 저술해 세계적 명성을 얻은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1929~)이 사용한 ‘컨슬리언스(consilience)’를 그의 제자인 이화여대 교수 최재천이 번역한 말.



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님의 추천사에서 볼 수 있듯이 건축이야말로 전형적으로 통섭적인 분야이다. 건축학만이 아니라, 수학, 과학, 철학, 인문학, 심리학, 예술 등의 영역이 서로 융합되고 상호작용하여 만들어진 응집체가 바로 건축인 것이다.

이문재 시인의 <사막>이라는 시에 보면,

사막에
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이다

라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이것이 건축의 영역과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건축물 하나씩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모든 사람과 전체적인 그림을 볼 줄 알아야 비로소 예술이 되는 것이 건축인 것이다. 이 모래 사이를 생각하지 않고 벽돌과 콘크리트 등 재료만 쌓아올리면 그것은 흉물이 되어 쉽게 치우지도 못하는 괴로움이 될 수 있다. 사람을 생각하고 자연을 생각하고 시간을 생각하고 연결을 생각하는 것이 건축이어야 한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자유롭고 유연할 수 있도록 전체 사막의 흐름을 알고 짓는 것이 건축이어야 한다.


걷고 싶은 거리

저자가 물리학 수식과 통계, 수학을 이용하여 산출한 이벤트 밀도에 관한 내용은 특히 재미있었다. 우연성이 넘치고 나의 선택권이 많아지고 볼거리가 다양한 거리가 걷고 싶은 거리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걸을 때에도 자기 주도적인 삶을 추구하는 듯하다.


이 숍에 들어갈까 말까?

이걸 살까 말까?
여기서 마실까 저기서 마실까?
지금 먹을까 나중에 먹을까?


이런 모든 선택권들이 우리가 그 거리의 주인이 되게 만든다. 걷고 싶은 거리는 결국 거절당하지 않고 인정받는 거리이다. 테헤란로처럼 '당신이 들어올 곳은 없습니다'라는 거절감이 아닌, '당신이 원하면 언제라도 들어올 수 있어요'라는 환대를 받는 거리, 설사 내가 들어갈 생각도 없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열려있는 거리를 우리는 원하는가 보다.


하늘


골목과 복도에 대한 비교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골목과 복도의 차이는 하늘을 가졌느냐에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아파트들과 주상복합, 거대한 빌딩과 쇼핑 플레이스에서 우리는 하늘을 잃었다. 그리고 수많은 바람도 잃었다. 환기를 시키지 않으면 탁해지는 공기, 빛이 전혀 들지 않아도 LED 조명으로 환한 실내는 사람의 가슴을 움츠리게 하고 때로는 숨통이 막히게 한다.

골목길이 그리워졌다. 하늘을 향해 열린 공간인 골목길... 모이고 흩어지는 것이 자유롭고 누구라도 잠시 머물다가 원하면 빠져나올 수 있는 곳.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없는 곳. 친하지 않은 사람과도 이야기 나누어도 괜찮은 곳.

공간이 마음을 만드는 것 같다.


소주와 포도주, 개미와 벌


좋은 건축물은 공장에서 일정한 맛으로 만들어내는 소주가 아니라 토양, 기후, 생산자에 따라 다른 맛을 내는 포도주 같은 것이어야 한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했다. 동양의 관계 중심 건축과 같은 집을 짓는 개미와 서양의 기하학 중심 건축과 같은 집을 짓는 벌의 비교도 재미있었다. 유기적으로 얽히고설킨 우리나라의 예전 건축이 그리워졌다. 세련되지 않아도 삶이 녹아있고 사는 재미가 있고 관계를 빼앗기지 않은 우리나라의 낮은 집들이 한없이 그리워졌다. 빨래가 널려있고 개들이 짓고 담장 너머로 감나무의 감이 맺혀있는 집들을 보고 싶어졌다.


한국적인 건축이란?


로마의 피렌체, 체코 프라하, 스페인 톨레도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오래되고 통일성 속에 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이 되고 예술이 되었다. 한국적인 것은 조선적인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글이 인상적이었다. 지금 우리의 사는 이 모습이 몇 백 년 후에는 전통이 되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연, 우리나라만의 특징들로 인해 그렇게 지어질 수밖에 없는 건축물들, 자연을 깎고 없애고 짓는 건물이 아니라 자연에 순응하며 지은 건물들이 많아지는 우리나라가 되면 좋겠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이 될만한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조선적인 것도 현대적으로 승화되어 표현되고 곡선미가 살아 있으며 자연과 건축물 안에 사는 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건축,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건축, 오래될수록 나타나는 색바램과 낡음도 아름다움으로 지속되는 건축이 앞으로 더 많아지면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며 아파트에 사는 것이 좀 답답하게 느껴졌다. 내 집은 여전히 내 집이어서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공간이지만, 밖을 누리지 못하고 바라보는 우리 집에 대해 아쉬움이 커졌다.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비눗방울처럼 부풀어 올라 내 눈앞에서 톡! 톡! 하고 터지는 것 같다. 그리움을 많이 남기는 책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시선을 떼기 어려웠던 두 개의 건축물의 사진을 올려본다. 세상은 즐겁고 생명력으로 충만한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던 이 두 장의 사진이 내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Fallingwater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Dancing_House




The Well-beloved

도시는 자연과 사람의 향기를 머금고 지어져야 한다.



p.s. 책을 만나기 전에 이 책의 저자의 생각을 알고 싶다면, 아래의 영상을 먼저 보시는 것도 좋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U9QW3REvBXI&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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