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을 읽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anna Kwon Feb 07. 2018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_빌 브라이슨

웃음이 폭발하는 빌브라이슨의 유럽여행기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_빌 브라이슨 저/21세기북스

빌 브라이슨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여행작가'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영국에서 20년간 <타임스>와 <인디펜던트>에서 기자로 일했고

영국과 미국의 주요 언론에 글을 기고했다.



    <럼두들 등반기>의 추천자로써 알게 된 빌 브라이슨이 쓴 책이다. (나는 그동안 어찌 그리 재미있는 책을 멀리하였을까? 그의 이름을 지금 알게 된 게 아쉽다.) 그가 쓴 유럽여행기가 궁금해서 이 책만큼 읽고 싶었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보다 이 책을 먼저 선택했다. 지적이거나 감성적이거나 인생 자체에 대한 통찰과 질문을 하게 하는 여행기가 아닌 '웃긴' 여행기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아쉬운 점은 그의 여행기가 1990년대의 여행의 기록이라 내가 느끼는 유럽에 대한 느낌과는 사뭇 다른 면도 있었다. 그래도 유럽은 여전히 유럽이고, 빌 브라이슨은 여전히 즐거움이 뿜어 오르는 작가이기에 이 책은 지금의 내게 의미가 있다.

   이 책을 읽다가 그의 글이 너무 좋아졌다. 그래서 그의 글이 좋은 몇 가지 이유에 대해서 메모장에 적어두었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에 실린 역자의 글을 보니 그녀도 빌 브라이슨의 글이 좋은 세 가지 이유에 대해서 써 놓았다. 같은 생각으로 리뷰(?)를 쓰고자 했다는 것이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한 편으로는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읽으면, 그의 글이 좋은 이유에 대해 쓰고 싶어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혼자 피식 웃었다. 그럼, 내가 만난 빌 브라이슨의 글에 대한 생각을 적어볼까?

   첫째, 나는 빌 브라이슨 식의 유머가 좋다.
   상상력이 창천하여 어디로 솟고 퍼지고 폭발할지 모르는 그의 생각이 내 가슴속과 머릿속에서 퐁퐁 튀어 올라 웃음보를 터뜨렸다. 두세 페이지마다 한 번 씩은 큰 소리로 껄껄 웃어대기에 잠시 뭉쳤던 복부 근육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한 그의 글이 좋다. 이 책은 도무지 쉽게 진도가 나가지질 않았다. 한 페이지에 황당하고 마냥 웃기고 그의 머릿속이 궁금해지는 웃음이 여러 번 폭발하도록 장치를 해놓았을 때에는 그냥 책 읽기를 잠시 중단하고 그 문장을 몇 번이고 생각하면서 누가 보면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키득거리며 웃었다. 세상에 어둠이 얼마나 깔리든, 주위 빛이 어떠하든 그의 빛깔은 노란색이다. 아니면 무지개색? 때로는 발그레한 붉은빛이었다.

   둘째, 나는 할 말은 하고야 마는 빌 브라이슨의 글이 좋다. 
   퐁피두 센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를 써 내려간 부분은-그는 퐁피두센터를 합성수지로 만든 '부유하고 우매한 인간상'의 상징이라 하였다-아무 의심 없이 남들 좋게 보는 것을 그대로 좋게 받아들인 내게 펀치 한 방을 제대로 날리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맞아, 그러네!'하며 맞장구를 치게 하는 놀라운 설득력(?)이 그에게 있다. 아래의 두 가지 글을 읽어보면 빌 브라이슨이 할 말은 하는 두려움 없는 쏘~ 쿨한 기자였음을 알게 해준다.


유럽 어디를 가더라도 1960-70년대의 건축물을 보면 당시의 건설업체와 건축가들이
대체 얼마나 몹쓸 정신병을 앓았기에 아름다운 유럽을 이 꼴로 만들어놨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오늘날 모든 것은 지금 기차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실용성이 떨어지는 풍차처럼
기껏해야 세련된 외관을 자랑할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웬만한 도시 외곽마다 양철이나 콘크리트로 대충 지어놓고
대형마트라고 부르는 곳들처럼 싸구려 가건물처럼 보인다.
인간은 문명을 건설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쇼핑몰이나 짓고 있다.


   셋째, 나는 그의 천진한 기대감이 폭발하는 글이 좋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상대방의 반응을 예측한다. 마치 자신이 상대방의 깊은 마음까지 간파한 듯 아주 자신만만하게. 그리고 그 반응이 현실화되지 않고 무너질 때에는 "그들은 나를 싫어하는 게 분명해!"하며 씨익 웃거나 쓸쓸하지만 살짝 연민까지 불러일으키는 귀여움으로 돌아선다. 파리 시민들이 자신을 끌어안고 2차 대전을 승전으로 이끌어줘서 고맙다고 말해주기를 내심 기대하지만 번번이 파리 특유의 불친절로 인해 모든 기대가 산산조각 나버리는 상황들은 그가 안쓰럽게 느껴지게까지 한다. 그의 기대감이 얼마나 높은 것인지를 잠시 잊은 채. 허무맹랑한 추측에도 "맞아, 그래"하며 그에게 공감하고 동의하는 건 그의 글을 읽는 사람이 경험하는 마법이다. 그는 천진난만 그 자체이다.

   넷째, 나는 그의 소심함과 아이 같은 솔직함이 좋다.
   절대 길을 묻지 않는다는 그는, 자기가 길을 잃은 것을 누군가 웃음거리로 삼아 소문을 내며 낄낄거리는 상상을 하며 자신이 잘못된 곳에 와 있음을 알면서도 자존심을 날카롭게 세운다. 하지만 그 어떤 상황에도 품위를 결코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럴싸하게 멋지게 포장하지 않고 자신의 어린아이 같은 두려움과 떨림도 그대로 보여주어 읽는 이로 하여금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다독이고 싶게 하는 그의 있는 모습 그대로가 담긴 글이 좋다.

   다섯 째, 그의 뾰로통함과 뒤끝이 좋다.
   세상에 대해 호의적인 그에게 세상은 냉혹하다고 생각하는 그는 여행지 자체에 대해 주로 삐쳐 있다. 파리 신호등을 건널 때의 상황에 대한 글은 그야말로 내 배꼽이 배 밖으로 탈출할 지경까지 만들어버린다. 그는 또한 뒤끝이 선명해서 브뤼셀에 가서도 파리의 교통 환경에 대한 불만을 다시 끄집어내는 집요함까지 여지없이 드러낸다.


   이렇게 재미있게 읽었으면서도 내 마음에 남은 아쉬움이 있다면, 여자가 읽기엔 그다지 공감이 안되고 노골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낯 뜨거운 성적인 농담들에 대한 것이다. 그가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독특한 취향들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음에 안심하며 슬쩍 읽고 넘기긴 했지만, 이미 읽어버린 불편한 글에 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만 특별히 유머러스한 여행이 준비되어 있는 건 아닐게다. 여행자의 마음에 달려있다. 나도 배꼽 빠지게 우스운 여행을 해볼까? 아니, 그런 여행을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하지만 웃기기'만' 한 여행 말고, 웃기기'도' 한 여행^^) 웃음은 도처에 있는데 웃음이 아닌 무관심으로, 혹은 무비판적 수용으로 묻어두거나 지나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번 여행은 눈과 코와 귀를 더 생긋하게 살아있게 해보자. 입으로 수없이 키득거리게 하는 웃음이 폭발하는 여행이 되도록.



The Well-beloved

빌 브라이슨의 말처럼,
어쨌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여행이란 어차피 집으로 향하는 길이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