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하고 어이 없어 배꼽 빠지는 등반기
혼자 미소 짓다가, 어느 순간 킥킥대다가, 큰 소리로 박장대소하며 웃다가, 다시 마음 가다듬고 주인공의 진지한 글을 진지하게 읽어내려가다가 또 참을 수 없어서 푸하하 웃어대고 결국 마지막까지 읽은 후에는 단 한 문장,
"웃. 프. 다"
로 내 감정이 요약되어 버린 이 요란한 책을 심신이 지쳐있거나 삶에 도무지 재미가 없다고 느끼시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물론 삶 자체가 흥미진진하게 느껴지시는 분들에게도 이 책은 아마 포복절도할 책으로 남을 것이다. 정유정 작가님의 글처럼 "헬멧을 준비하시라! 뒤통수를 얻어맞을 테니." ㅎㅎㅎ)
이 책은 베스트셀러는 아니었지만, 오래전, 산악인과 극지과학자 등 모험파 사내들 손에서 떠돈다는 '전설의 소설'이라고 한다. 이 책 속의 '럼두들'은 실제는 존재하지 않는 산의 이름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사람들에 의해 '마운트 럼두들'이라는 지명이 공식적으로 생기기도 하고, '럼두들'이라는 식당이 생길 정도이니 이 책은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아는 사람들은 소수의 마니아로서 이 책을 사랑했던 것 같다.
1956년에 출간된 이 책은 지상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곧 눈 덮인 히말라야 성채에서 웅장한 랭클링라 곁에 자리 잡은, 유명하기는 하나 아직 사람이 정상에 오르지 않은 럼두들(해발 12,000.15m, 참고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는 8,848m)을 정복하기 위해 모인 일곱 명의 등반대원들과 수많은 포터들의 등반기를
대장이 화자가 되어 쓴 글이다.
이 책의 묘미는 아이러니에 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한다. 예상치 못한 사건을 접했을 때 '모순 이론'에 따라 터지는 웃음들이 폭소가 되고 박장대소가 되었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고, 황당하다. 어이없고 말도 안 되는 재미난 아이디어들은 저자의 스멀스멀 올라와 어느새 주체할 수 없게 된 유머감각을 통과해 이렇게 사랑스럽고 유쾌한 책으로 남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찰리 채플린이 주연을 맡은 영화로 영화화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등반대의 이름과 캐릭터, 그리고 그들의 반전을 살펴보자. 대장은 등반팀을 짤 때, 중요한 한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일석이조'라는 원칙이었다. 한 사람이 산을 잘 오르는 것뿐만이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뽑힌 여섯 명의 이름과 특징은 다음과 같다.
탐 벌리 - 영국 육군 병참단 소령, 보급 담당. 힘이 장사다!
크리스토퍼 위시 - 암벽 등반 능력이 뛰어난 과학자!
도널드 셧 - 사진 촬영을 담당하며 빙벽 타는 솜씨가 뛰어나다.
험프리 정글 - 무선 전문가이며, 등반길 안내자.
랜슬럿 콘스턴트 - 외교관이자 언어학자. 포터 관리 담당. 사교 수완과 인간관계가 좋음.
리들리 프로운 - 등반대 주치의이자 산소 전문가.
이 책을 읽을 때 이들의 스펙을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웃음이 터지고 또 터지는 것이다! (이름이 얼마나 기억하기 쉬운지 보라! 저자의 작명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놀랍게도 이들의 실제는 이러했다. 힘이 장사이며 보급 담당인 벌리는 런던 피로증, 골짜기 피로증, 빙벽 피로증, 슬리핑백 피로증 등 온갖 피로증을 느껴 물건을 나르기는커녕, 포터들이 운반하는 들것에 누워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사진 촬영 담당인 셧은 촬영 장비 조립에 시간을 다 보내느라 촬영은 정작 못하거나, 찍은 사진의 필름을 실수로 햇빛에 노출하여 사진을 날리거나 하는 식이다. 정글은 등반길 안내자인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아마도 길치인데다가 돌고 돌아 같은 장소로 돌아오는 놀라운 능력도 가지고 있다. 콘스턴트는 외교관에 언어학자이나 요기스탄 어를 쓰는 포터들과 의사소통이 전혀 안되어 포터를 3천 명 불러야 하는데 3만 명의 포터가 오게 하질 않나, 베이스캠프를 럼두들 정상에 설치하라고 하여 황당한 상황을 만들지 않나, 프로운은 주치의이지만, 그 사람 외에는 모두 건강하였고 정작 의사인 프로운만이 심한 코감기부터 수두, 폐렴, 백일해, 이하선염 등 온갖 질병은 혼자 다 앓는다.
거대한 스케일로 세간의 관심을 받으며 출발한 럼두들 등반대! 처음으로 오르게 되는 그들의 등반은 성공할까? 결론은 성공한다.
하지만, 아래 써놓은 본문을 읽으며 어떻게 성공한 걸까라고 묻는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우리는 정상에 서 있었다!
이번 등반의 여정에서 나는 두 번째로 내 정신을 의심했다.
럼두들의 높이는 12,000.15미터다. 그런데 내 고도계나 나 자신이 미치지 않은 이상
우리는 현재 10,500미터 지점에 와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그러다 나는 깨달았다. 동쪽 저편으로 거대한 산이,
그 산의 번쩍이는 정상이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내 머리 위로
1,500미터나 우뚝 솟아 있었다.
우리는 다른 산을 오른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시추에이션에도 대장의 초긍정성과 감성, 대원들을 사랑하는 마음, 모든 상황을 자기식으로 기분 좋게 해석하는 태도는 빛을 발한다. 어떤 상황에도 대장은 귀엽게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철저히 주관적인 자기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서 팀원들을 이해하고 자기의 리더십과 지혜에 대해 스스로 감탄한다. 한 예를 들자면, 대원 중 두 사람이 큰 소리로 다투는 걸 보면서, 대장은 두 사람이 고소난청 증상을 앓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두 사람이 한 팀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몇 시간의 고된 행군 후에도 그렇게 열띤 대화를 나눌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취향이 아주 잘 맞는 사람들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정말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 책에는 이런 부분이 아주 수없이 많이 나오니 웃음이 멈출 틈은 아주 비좁다.)
럼두들 등반대의 스포트라이트는 사실 등반대원 7인이 받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표정한 일관된 얼굴로 묵묵히 할 일을 하며 그들과 함께 있었던 포터들이 있었다. 위대한 누군가의 뒤에는 이 책에서의 포터들같이 그들을 서포트해주는 충성된 사람들이 있었다는 교훈 주의로 빠지지 않더라도 이 책은 우리 인생에서 포터의 중요성을 기억하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는 포터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도.
아주 재미있는 책이다. 다만 아이들 옆에서 이 책을 읽으면
"엄마, 뭐가 그렇게 재밌어요?
얘기해 주세요~
뭔데요 뭔데요~~~?"
하며 책에 집중하지 못하게 말을 걸어올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는 건 솔직히 말해두어야 할 것 같다.^^
The Well-beloved
배꼽 잡는 웃음의 세계로 종종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