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위대한 한 사람의 이야기
한 사람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서점의 서가를 산책하거나 두리번거리는 일은 나에게 휴식 같고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일이다. 며칠 전에 서점에 갔다가 문학책 몇 권을 사면서 평대에 놓여 있는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전 세계 25개 언어로 번역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세상을 변화시키는 감동적이고 가슴 따뜻한 소설'이라는 책띠의 내용도 내가 이 책을 들추는 데에 영향을 주었지만, 그보다 먼저 이 책이 시선을 끈 건 최수연 작가의 그림 때문이었다. 고독하게 쇠막대기를 들고 어둠 속을 걸어 오르는 듯한 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제목이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니 이 표지에 있는 그림의 주인공이 나무를 심은 사람인 모양인데, 그는 왜 이렇게 고독하게 나무를 심었을까, 그가 결국 이룬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책을 들춰보게 되었다. 그림책이었다. 나는 성인 문학 서가에 꽂힌 그림책을 좋아한다. 글밥만 가득한 책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얇은 페이지 수로, 또 그림과 함께 있어 실제 내용은 길지 않은 그런 책은 책을 집어 드는 내 마음을 편안해지게 한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이 되게 하는 것 같아서 좋다. 이 책은 이미 아이들용(?) 그림책으로도 출간되어 있는 책이지만, 나는 이 책을 구입했다. 단지 최수연 작가의 그림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책의 내용만큼이나 내게 감동을 주었던 건 최수연 작가의 그림이었다.
1913년, 화자가 만난 한 사람은 황무지에서 홀로 나무를 심어온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1910년부터 나무를 심어왔고, 3년 동안 매일 좋은 도토리만 골라내서 심어 10만 개의 도토리를 심어두었다고 했다. 그는 쉰다섯 살의 '엘제아르 부피에'. 농장 하나 가지고 소박하게 자신의 꿈을 가꾸며 살았던 그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아내까지 잃은 후, 이곳에서 도토리를 심기 시작했다. 그가 도토리를 심기 시작한 이유는, 그곳에 나무가 없기 때문에 그 땅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땅을 위해, 그 땅을 밟을 사람들, 크게는 인류를 위해 그 일을 하고 있었다.(물론 그는 인류를 위한다는 거창한 말은 하지도 않았을거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말수가 거의 없었고, 점점 더 말수는 줄어갔다. 그는 철저한 고독 속에서 그 일을 해나갔다. 그 누구도 그를 돕지 않았고,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그가 하는 일에 큰 의미를 두거나 그 일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상상도 못해서였을지 모른다. 황무지 한 쪽에는 작은 베르공 마을이 있었는데, 그곳은 열 채에서 열두 채 남짓 되는 집들이 있었지만, 모두 떠나고 세 명만이 살고 있었고, 난폭하고 서로 미워하며 거의 원시인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그 어떤 희망도 선함도 없었다. 사람도, 집도, 땅도 있었지만, 그 황무지는 죽어 있었다. 존재는 있으나, 그 존재들이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모른 채 살아가는 곳. 그곳에서 존재 의미를 온몸으로, 온 삶으로 뿜어내며 살아가는 한 사람이 바로 엘제아르 부피에였던 것이다.
화자가 마지막으로 엘제아르 부피에를 만난 건 1945년 6월. 그의 나이는 어느덧 여든일곱 살이었다. 그는 여전히 예전의 그 황무지가 있던 그 지역에 있었지만, 그곳은 더 이상 황무지가 아니었다. 버스가 빠른 속도로 지나다니고 사람 사는 냄새,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부는 소리, 샘물이 흐르는 소리가 있는 살아있는 곳이 되어 있었다. 베르공 마을에서는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있었고, 공동작업을 한 희망의 흔적이 있었다. 채소밭에는 열매들이 맺혀 있었고, 그곳에는 젊은 부부 네 쌍을 포함한 스물여덟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곳은 살아있는 곳이자, 살고 싶은 곳이 되었던 것이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여전히 예전의 그 황무지가 있던 자리에서 아직도 황무지인 것처럼 그곳에 묘목을 심고 있었다.
마음이 변하지 않는 사람, 작은 일에 충성된 사람, 큰 변화를 꿈꾸지만 그것을 자기를 드러내는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 한결같이 그 일을 하여 결국은 그 일을 해내는 사람, 고독하지만 투덜대거나 보채지 않는 사람, 제1,2차 세계대전 때에도 불안을 느끼지 않고 묵묵히, 흔들림 없이, 전과 다름없이 계속 나무를 심은 한 사람... 그리하여 결국엔 자신의 삶을 통해, 죽어있던 땅에 생명을, 생기를, 의미를 불어넣어 넣고 이 세상을 떠난 한 사람, '엘제아르 부피에'.
사람들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내달리다가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죽은 사람을 보며 '허무하다'라고 말한다. 또 자신의 세상적 욕심과 야망을 채우기 위해 전력질주하여 마침내 그것을 이룬 사람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통해 세상을 살기 좋게 바꾸고 이타적인 인생을 살았던 엘제아르 부피에 같은 사람에게는 '위대한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대단한 사람은 많지만, '위대한 사람'은 많지 않다. 대단한 사람은 잊히지만, '위대한 사람'은 잊히지 않는다. 대단한 사람은 지식으로 기억되지만, '위대한 사람'은 가슴으로 기억된다.
그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을까? 무엇이 수십 년간의 인생 동안 그를 고독함 속에서 그 일을 낙심하지 않고 할 수 있도록 이끌었을까. 문득 바티칸 시국의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만났던 미켈란젤로의 천장화가 떠올랐다. 홀로 숭고한 의지를 가지고 자신과의 씨름을 하고 위대한 걸작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엘제아르 부피에와 미켈란젤로를 연결해주었다. 연합하여 선을 이루는 것 못지않게, 홀로 자신의 일을 잘 감당하는 모습도 아름답다. 고독에 파묻히거나 질식되지 아니하고, 그 내면에서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그 불꽃처럼 살아낸 그들의 인생에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다. 내 한 몸, 내 곁의 가족들만 잘 지내다가 떠나는 인생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아주 오래 기억될 감동을 남기는 인생, 누군가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인생, 세상을 조금 더 환하고 미소 지을만한 곳으로 느끼게 해주는 인생을 살고 싶다. 기적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기적은 우연과 다르다.) 그것이 어디로부터 말미암음인지 아는 사람만이 그 기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낙심하지 않고 소망을 소유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오직 정신적, 육체적 힘만으로
황무지에서 이런 가나안 땅을
이룩해 낼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주어진 힘이란
참으로 놀랍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위대한 혼과 고결한 인격을 지닌
한 사람의 끈질긴 노력과 열정이 없었던들
이러한 결과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The Well-beloved
오늘도 나무를 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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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4장 1절, 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