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천, 하늘을 달리다.

하늘을 관측한 사람들의 길을 따라

by GoGo자형

매일 아침마다 하는 루틴이 하나 있어요.

커튼을 걷고 창문을 조금 열어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죠.

날씨도 보고 오늘 하루의 기온도 가늠해 봅니다.

늘 같은 자리에서 바라보는 하늘이지만,

하늘은 단 한 번도 같은 얼굴을 보여준 적이 없어요.

구름이 가득 낀 날도,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는 날도 있지만

어떤 하늘이든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져요.


오늘도 그렇게 하늘을 보며 하루를 시작했어요.

그 하늘을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가까이 느끼고 싶어서

'옛날 사람들은 하늘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번 달 ‘런인문화유산’을 기획해 보았어요.


조선의 하늘을 관측하던 곳에서

근대의 하늘을 읽던 곳까지

이제 하늘을 따라 달려볼게요!


창경궁 관천대

오늘 러닝의 시작은 창경궁입니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천문 관측기구인 관천대(觀天臺)가 있어요.
‘하늘을 보는 대’라는 이름 그대로, 조선의 천문학자들이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곳이죠.


돌로 단단하게 쌓은 관측대는 오랜 세월을 버텨내며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조금만 부주의하면 그냥 지나칠 수 있을 만큼 소박한 모습이라,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놓치기 쉬워요.


관천대는 궁궐 중심부가 아니라 궐내각사,

즉 신하들이 일하던 곳 한편에 자리하고 있어요.
하늘을 관찰하는 일도 결국 백성을 위한 실무였다는 뜻일까요.


그런데 이 주변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1980년대까지 동물원으로 사용되기도 했어요.
농경사회에서는 하늘을 읽는 일이 백성의 생명과 직결되던 시절이었는데,

궁궐 안 그 자리를 동물원으로 바뀌었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묘하게 무거워집니다.

창경궁 관천대(촬영_고고자형)


창경궁 풍기대

창경궁 풍기대(촬영_고고자형)

관천대를 봤으니, 이번에는 또 다른 천문관측 기구를 보러 가볼까요?

관천대에서 오른쪽 언덕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관측하는 풍기대(風旗臺)가 있어요.


그 옛날, 바람이 불변 풍기대에 꽂힌 깃발이 펄럭였고,

사람들은 그 움직임으로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읽어냈다고 해요.


이곳은 창경궁에서도 가장 높아서

멀리 남산까지 시야가 트여있습니다. 서울타워도 보이네요.

뻥 뚫린 이 광경 때문에 이곳은 창경궁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해요.


동궐을 지나며

풍기대를 뒤로 하고 창덕궁으로 넘어가 볼게요.


창경궁과 창덕궁은 담장으로 나뉘어 있지만
조선시대부터 서로 문을 통해 오갈 수 있었어요.
경복궁의 동쪽에 자리한 두 궁궐을 합쳐

‘동궐(東闕)’이라 불렀습니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잠시 상상해 볼까요?
사극 속 복장을 한 신하가 별을 관측하러 총총걸음으로 지나가던 모습을 떠올려볼까요?

길 위에 서 있으면, 시간이 천천히 과거로 흘러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궁궐 담장길 전경(촬영_고고자형)

서울 관상감 관천대

창덕궁에서 나와 현대사옥 앞으로 가볼게요.


"갑자기 여기는 왜 가냐고요?"


현대 사옥 앞에는 옛 관상감 관천대가 남아있거든요.


방금 보고 왔던 창경궁의 관천대와 거의 똑같이 생긴 걸 보니

조선시대에 하늘을 관찰하는 시설은 이런 형태였나 봅니다.


신라의 첨성대와는 또 다른 모양이라는 점도 흥미롭죠.


지금은 건물 울타리와 현대식 건물에 묻혀 눈에 띄지 않지만,

이 자리에서 하늘을 바라봤던 조선의 관측자들을 떠 올려봅니다.

그때 이곳은 어떤 분위기였을까요?


경복궁 풍기대

이제 경복궁으로 가볼게요.


경복궁에도 하늘을 관찰하던 문화유산이 있답니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아니면 유명한 문화유산인 경회루를 보느라 놓치셨을까요?


경회루 앞에서 잠시 뒤를 돌아보세요.

낯익은 형태의 돌 구조물이 보이실 거예요.


바로 경복궁 풍기대입니다.

창경궁 풍기대와 거의 흡사한 모습이죠.


다만 두 풍기애의 위치는 좀 차이가 있어요.

창경궁 풍기대는 높은 언덕 위에 있고,

경복궁 풍기대는 넓은 평지에 자리하고 있네요.


이 차이는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경복궁 풍기대 전경(출처_국가유산청)


세종의 하늘

광화문 광장에 들어서면
세종대왕 동상이 경복궁을 등지고 서 있어요.


반대로 이야기하면, 백성들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죠.


세종은 하늘의 질서를 백성을 위한 과학으로 바꾼 인물이었습니다.
별의 움직임, 비의 양을 기록하고 그 지식을 백성의 삶 속으로 가져왔어요.


농사를 짓던 시절,

날씨와 기후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거든요.


근대의 하늘, 기상박물관

조선시대 천문관측 기구들을 달려보았다면,

이제 조금 더 가까운 시대, 근대의 하늘을 만나러 가볼까요?


이제 제법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어요.

숨이 차오를 즈음, 아이보리색 건물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이곳이 바로 기상박물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기상관측소예요.


이 자리에서 100년 동안 하늘을 관측했어요.
바람의 세기, 구름의 모양, 기온의 변화.
그 작은 기록들이 차곡차곡 쌓여 오늘의 일기예보가 된 것이죠.


이제 이곳은 더 이상 기상관측을 하지는 않지만,

박물관 마당에는 서울의 꽃이 피는 시기를 관측하기 위해 심은 나무들이 여전히 서 있습니다.

가만히 서서 말없이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들입니다.

기상박물관 전경(촬영_고고자형)


하늘 아래를 달리며

경희궁을 가로질러 천천히 걸으며 마무리합니다.


지금까지 약 8km, 두 시간가량 달리고 걸었어요.

오늘은 조선의 하늘에서 시작해서 근대의 하늘을 지나왔습니다.


별과 바람을 관측하던 시절에서
데이터와 위성으로 하늘을 읽는 지금까지,
시간의 흐름을 따라 '하늘을 본다'는 일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몸으로 느낀 하루였어요.

결국 하늘을 본다는 건

하늘 너머의 세상이 아니라

그 아래 서 있는 "나"를 돌아보는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경희궁 숭정문과 인왕산(촬영_고고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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