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의 힘
지각이 눈앞에 보이는 아침이 있었다.
전날 밤 미리 생각해 둔 옷이 막상 입어보니 마음에 안 들어 갈아입었다.
고작 5분정도 시간이 더 소요됐을 뿐인데 늘 타던 지하철을 놓쳤고 출근길의 9호선 완행은 배차간격이 12분이라 코앞에서 출근시각이 17분이 늦어진 아침이었다.
속에서 화가 끓어오르고 그 화로 나는 마치 증기기관차가 된 듯 발을 동동 굴렸다.
다음차를 타고 회사가 있는 역에 내리자마자 칙칙폭폭 뛰어가는 나.
하지만 젠장, 결국 1분 지각이다.
이런 날은 하루가 정신이 없어 실수도 잦다.
이 얘기를 내가 그에게 했을 때, 그는 “나 같으면 지하철을 코앞에서 놓쳤을 때 마음을 내려놓았을 거야. 이미 지각인 걸 인지 한 순간,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으로 그냥 천천히 걸었을 거야.”라고 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내가 좀 더 빨리 달렸으면 지각하지 않을 수도 있었어.” 나는 반박했다.
나는 지각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피해보려 뛰는 사람, 그는 지각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걷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그런 빠른 포기가 싫었다. 포기-무기력-무능함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연결고리가 그에게서 주로 느껴지는 분위기 같았다.
나는 생각했다. ‘아니 나는 달라, 희망-노력-유능함이 나의 태도야.’
물론 이 말을 그에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헤어졌다.
그날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것은 참 다행이었다.
요즘 나는 내 전인생을 통틀어 비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몇 달 후면 나이의 시옷 받침이 사라지며 3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간다는 사실이 주는 촉박함 때문일까. 누구보다 혼자서도 잘 살던 내가 분리불안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상태가 된 것은 불과 몇 달 되지 않았다.
찬란한 시간이 있었으니 요즘 같은 날이 있는 것도 당연한데,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 노력하는데 결과를 달성하지 못하는 일이 잦아지자 나는 초조해 진다.
그래서 더욱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고 더욱 결과물을 갈망한다.
이러한 ‘노력’하는 태도가 기분이라면 극‘조증’, 신체의 기능이라면 극‘항진증’ 상태인데, 내가 나를 볼 때도 고장난 자동차에 가속도가 붙은 것처럼 위태롭게 느껴진다.
요란하게 날뛰는 마음이 너무 뜨거워, 작렬하는 태양을 손에 올린 채 견뎌야 하는 처지, 손바닥이 타들어가는 고통 같다.
이럴 때 그가 옆에 있으면 내게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나 같으면 ‘될 대로 되라지.’ 라고 생각하고 그냥 걸어 갈거야.”
그를 이 순간에 다시 떠올리게 될 줄이야.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은 겨울 바다처럼 차가워 내 손 위의 태양을 한방에 식혀 버리기 충분했다. 치이익- 소리를 내며 차갑게 굳는 나의 (시도때도 없이, 정처도 없이 튀어오르던 맹목적인 노력이라는) 열기를 보며 ‘어쩔수 없지’가 가진 힘을 느낀다.
무기력하고 무능해 보이던 그 말, ‘어쩔수 없지’도 힘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늘상 입에 달고 살던 ‘할 수 있어’의 힘이 그토록 뜨거운 것이라면 그의 ‘어쩔 수 없지’의 힘은 이토록 차가운 것이었다.
노력이 목적에 질질 끌려다니는 코뚜레처럼 느껴질 때, 냉소는 그 쇳덩이를 단칼에 끊어버리는 얼음같은 칼날이었다.
내 마음이 너무 뜨거워 안절부절 못 할 때,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 라고 생각하려한다.
그리고 그가 그랬던 것처럼 달리던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걷겠다.
그렇다면 비록 몇분 지각은 할 지언정 하루를 망쳐버리는 일을 없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