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계절, 가을

순환하지 않는 삶은 나뿐만 아니라 자연도 그러했다.

by 쓰는사람전볼

가을이 fall 인 이유는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이기 때문이란다.


10월 가을날 비가 내린다.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에 빗방울이 떨어지자 마음이 심연으로 가라앉듯 밑으로 밑으로 떨어진다.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중력의 끌어당김을 거역할 수 없다.

중력에 의해 낙엽이 떨어지고, 빗방울이 떨어지고, 마음마저 무겁게 내려앉을 수 있다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괴롭지만 받아들여야만 한다.


자연은 사계절을 순환하므로 이 가을이 가면 시리도록 차가운 겨울이 올 것이며 마침내 또다시 봄이 다시 올 것이다.

그래서인지 풀과 나무는 그저 지나가는 계절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뿐 아쉬워하지도, 저항하지도 않는다. 아직 꽃이 붉게 물들지 못했다고, 아직 열매가 무성하게 달리지 않았다고 시간을 붙잡고 싶어 하며 안달하지 않는다.

다시 봄과 여름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명백한 명제는 편안하다. 절대적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 의심이 끼어 들 틈이 없는 그 확실성 때문에 불안하지 않다.

그래서 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 잔잔한 자연에 비해 나는 불안하다.

나의 인생은 순환하지 않으므로 나에게 지나간 봄과 여름은 다시 올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새로이 가을과 겨울이 찾아올 테고, 나의 짧은 인생은 아직 겪어보지 않은 그 상실과 비움의 계절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지 못해 불안하다.


사람은 원래 불확실성에 극도로 예민한 존재란다.

<홀로서기 심리학> 책에서 읽은 한 실험이 떠오른다. 2016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아치 드 베커 박사가 한 불확실성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실험인데 컴퓨터 모니터에 보이는 바위 뒤에서 뱀이 나오면 참가자들이 전기 충격을 받는 실험이었다. 박사는 참가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눈 후 한 그룹은 뱀이 절대 나오지 않게, 다른 그룹은 무조건 뱀이 나오게, 그리고 마지막 그룹은 뱀이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게 무작위적으로 시뮬레이팅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 번째 전기 충격을 받을지 말지 예측할 수 없었던 그룹의 스트레스 지수가 두 번째 무조건 전기 충격을 받은 그룹보다 높았다고 한다.

전기 충격을 연달아 받는 것보다 받을지 말지 모르는 상태가 더한 스트레스라니!


뱀이 나올지 아닐지 알 수 없는 바위를 들춰보는 참가자들의 심정이 나의 심정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황혼이, 나의 내년이, 아니 나의 내일이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는 불확실성.

인생에 있어서 먼저 간 사람이 곱게 길을 내놓은 등산로는 없다.

앞서 걸었던 사람의 유전자와 성격과 인생의 궤도가 달라 부분 부분 일치하는 발자국이 있을지는 몰라도 나는 나의 길을 스스로 터벅터벅 걸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안개낀 길을 지도 없이 걷는 듯한 이 불안함은 누가 대신 할 수도, 누가 가르쳐 줄 수도 없는 오직 나 혼자만의 것이라 더욱 고독하다.


아침 산책길에 말갛게 핀 코스모스를 보았다. 아무것도 바랄 게 없단 듯 하늘거리며 피어있는 꽃이 요동치는 내 마음과 대비됐다.

자연의 법칙 계절의 순환처럼 불교의 윤회가 차라리 진리였으면.

나의 생명이 순환한다면 자연의 순환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나이 듦도 상실도 이별도 차분한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텐데.


그런데 순간 길 끄트머리에서 코스모스 화분을 옮겨 심고 있는 공공 인부들이 보였다.

맞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이 길에는 코스모스가 없었는데!

가을마다 산책길을 따라 난 코스모스가 내게는 익숙한 풍경이었는데 코스모스는 사실 한해살이 꽃이다.

작년 가을에 피었던 꽃과 오늘 본 꽃은 다른 생명이었던 것이다.

그 여린 꽃 역시 생에 처음 맞는 가을 한가운데에서 겪어본 적 없는 겨울을 천천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작은 생명에게 내년은 없는데 원망도 욕심도 없이 그저 부는 바람 따라 이리저리 하늘거리며.


코스모스 옆에 줄지어 서 있는 나무들도 마찬가지로 작년과 똑같은 계절을 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 눈에 주름이 생기듯 작년보다 나이테가 늘었을 것이다.

나무 역시 뿌리가 물을 흡수하는 힘도, 잎이 광합성을 하는 효율도 전보다 못한, 날마다 다른 하루를 살고 있겠지.

나아가 지구도 마찬가지. 작년보다 기온이 올라가고 해수면이 상승하여 기후와 날씨가 이전과는 다르다고 하지 않은가. 지구 역시 처음 겪어보는 계절, 처음 겪어보는 하루하루 일 것이다.


‘순환’한다는 것은 어쩌면 관념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년의 가을과 올해의 가을은 서른다섯의 가을과 서른여섯의 가을이 다르게 느껴지듯 자연에게도 서로 다른 가을이다.

그렇다면 자연을 바라보며 느끼는 편안함의 실체는 반드시 계절은 순환한다는 대자연의 법칙에서 오는 확실성이 아니라 어쩌면 변화를 묵묵히 받아들일 줄 아는 풀과 나무의 겸허함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코스모스와 나무와 그리고 온 지구가 조용히 새로운 계절을 받아들이듯 인생의 계절을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가 내게도 생기기를.

요란하지 않게 묵묵하게 나의 계절의 끝에 다다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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