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의 하얀색 나이키 운동화

by 쓰는사람전볼

자유로를 따라 달리는 출근길.

매일 똑같은 지루한 길이지만 내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다.

킨텍스ic에서 자유로를 향해 빠지는 커브에 놓인 하얀 신발 한 켤레.

새하얀 나이키 운동화가 커브 왼쪽 갓길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오직 신발뿐이다.

주변엔 여느 교통사고 지점처럼 유리 조각이나 자동차 플라스틱 파편도 없고, 신발이 한 짝씩 나뒹굴고 있는 것도 아니며, 신발에 혈흔이나 지저분한 검댕이 같은 것이 묻어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가지런히 놓인 하얀 신발뿐.

마치 누군가가 난간을 넘기 전 가지런히 벗어 둔 것 같았다.


저 난간을 넘는다고?

여긴 수십 미터 상공에 튼튼한 철근 다리를 놓아 만들어진 ic인데?

그 구불구불한 커브를 도는 일은 초보운전자인 나에게도 자칫 난간으로 떨어질까 오싹한 기분에 자동차 핸들을 꽉 움켜쥐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런데 신발은 커다란 식탁 한켠에 아주 정갈하게 놓인 숟가락처럼 반듯이 난간을 향하는 방향으로 놓여 있었다.


일산으로 이사를 온 지 반년이 넘었지만 어째서인지 하얀 나이키 신발은 킨텍스ic에 여전히 있다. 그동안 세찬 비와 폭설도 있었건만, 여전히 그곳에서, 아침 햇볕으로 하얗게.

그 도로를 관할하는 기관이 어디인지 모르겠으나 그곳에서 아직 나이키 신발을 발견하지 못한 것일까, 수시로 이 길을 왕래하는 경찰차도 저 신발을 못 본 것일까, 아니면...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일까.


매일 아침 본의 아니게 하얀 나이키 신발의 안위를 확인하며 출근하는 나는, 신발 주인의 안위마저 궁금해진다.

빠르게 달리며 지나치듯 본 것이라 정확한 사이즈는 가늠하기 힘들지만 아이의 것이라기엔 매우 크고, 성인 여자의 것이라고 보기에도 다소 큰 듯하다. 아마도 신발의 주인은 성인 남자, 매우 깔끔한 성격의 청년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그는 어떻게 이곳까지 왔을까? 걸어서? 아니면 차를 타고?

차들이 이렇게 많이 다니는 곳인데 한 밤중이었을까?

그리고 이어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 그는 왜 신발을 저리도 가지런히 벗어두고 어디로 간 것일까?


나는 이렇게 매일 아침 신발 주인에 대한 생각을 하며 한 시간을 달린다.

반년 간의 출근길 상상은 ‘삶에 지친 한 청년이 자신이 아끼던 나이키 신발을 그곳에 가지런히 벗어두고, 마치 아침 이슬처럼 증발해 버린 것’이란 결론으로 끝이 났다.

내가 증발이라고 한건 그의 생과 사, 행방과 족적, 그리고 이 증발의 자의와 타의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그가, 죽지 않았기를 바라며, 아래로의 추락이 아닌 앞에 펼쳐진 들판으로의 전진이기를 바라며, 이 모든 것이 살기 위한 자신의 간절한 선택이기를 바란다.


무라카미하루키의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옐로 서브마린 소년이 초록색 요트 파카를 걸친 복화술 인형을 남기고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신발의 주인도 저 신발을 남기고 다른 세계로 사라져 버린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거장의 소설이 아니더라도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세계 역시 자살하는 사람, 실종되는 사람, 가출하는 사람 등등 매일 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택한다.


우리가 떠나야 할 이유는 너무 많다.

슬프고, 힘들고, 견디기 힘든 일들은 도처에 있다.

나 역시, 현재, 그런 기분을 느낀다.

산뜻하게 증발해 버리거나, 심연으로 잠수해 버렸으면 하는..


돈은 벌어도 벌어도 항상 부족하고 월급은 나에게 인사만 하고 부지런히 사라졌다.

때문에 나는 10년째 회사를 꾸준히 다닌다.

회사의 발전과 나의 발전이 그다지 관계없다 느끼는 나는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척이나 고역스럽다.

오늘은 몸살로 오들 거리면서도 출근을 위해 욕실로 향한다.

책임져야 할 처자식과 봉양해야 할 부모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척이나 외로운 아침이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탄력 없이 모공과 주름이 늘어져 있다.


그보다 비애로운 건 못생긴 얼굴을 보는 것보다 더 빠르게 못생겨지는 내 마음을 마주할 때이다. 고시를 하다 그만둔 자격지심 때문에 같은 사무실 변호사 동료와는 여전히 친해질 수가 없다. 그가 알고 내가 모르는 건 당연한 건데, 그가 모르고 내가 아는 게 있으면 금세 기세등등해진다. 마음이 더 못생겨지기 전에 이대로 사라져 버렸으면 싶기도하다.

어쩌면 나의 슬픔과 고통은 객관적 사실이라기보다 내가 느끼는 삶의 압박의 무게랄지 정서적 배고픔 때문이다.


혹자는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사라질 이유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평범한 인생이라는 거대한 수족관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빠져나갈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마침내 꼬르륵 가라앉고 있는 나.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해봄직한 생각일 것이다. 이유야 가지각색이겠지만, ‘내 인생 이거 아닌데...’ 싶을 때가 누구에게나 있을 테니까.

사라진다면 어떻게?

나는 나와 당신이 종국적인 삶의 종결이라는 자살보다 좀 더 생애 애착을 지닌 마음으로,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라고 생각하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나이키 신발의 주인도 신발을 그곳에 고이 벗어둔 채 새로운 삶을 향해 떠난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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