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지만 우선 우리 마음 좀 다치지 않게 보호할게요.
미국은 1월 1일에 새해 분위기가 나고, 음력 설은 명절 분위기가 전혀 없다보니 설날을 달력에 써놓고, 설 전주 주말에 양가에 연락을 드렸다. 작년까지만해도 명절에도 돈을 보내드렸는데 작년 10월에 한국에 있는 자산을 모두 정리하면서 한국으로 돈을 보내지도, 받지도 않기로 했다. 한국 자산을 보고하는 것도 까다롭고 명절, 생신에만 보내던 돈을 끊고 싶기도 했다. 그저 매년 한번 여행을 크게 보내드리던지 아니면 1년에 한번 크게 드리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왜냐면.....
우리 부모님은 설에 우리에게 새뱃돈 명목의 돈을 주시는 반면 시댁은 그런 부분이 없다. 그래서 돈을 똑같이 보내드리더라도 왠지 우리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 시댁에 서운한 마음이 들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께 돈을 주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맛있는 밥이라도 사 먹으라며 돈을 보내주셨다. 결혼 전, 명절에 부모님께 돈이나 선물을 주고 받는 게 우리 가족 문화였지만, 시댁에서는 남편이 학생이었기에 돈을 드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기에 앞으로는 돈을 드리지 않고 받지 않는다고 하니, 오히려 우리 엄마가 더 서운해하셨다.
결국 명절에 양가에 돈도 보내드리지도 않고, 뵈러 가지도 않으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식들이 되었다. 죄송한 마음으로 전화를 드렸는데 양가 모두 명절 전주 주말에 미리 연락만 드리는 것으로도 만족해하셨다. 오히려 명절에 또한번 연락을 드리니 뭐하러 그러냐신다. 죄송스러운 마음이 감사한 마음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형제한테도 연락을 잘 하지 않는다. 나, 남편을 포함해 우리 오빠네 부부와 엄마, 아빠 총 6명이 있는 카톡방이 있다. 그 방에서 나와 남편은 오빠, 새언니와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한 나는 부모님과 따로 카톡방이 있다. 6명이 있는 방은 대부분 오빠 아기 사진과 영상, 아니면 가족끼리 만났을때 사진을 공유하는 용도로 쓰인다. 조카가 참 예쁘지만 멀리 있으니 자주 볼 수 없는 부분을 새언니가 사진을 공유해줌으로써 잘 풀어가는 것같다. 나와 오빠, 새언니와의 교류는 그 방에서 조카 사진을 공유하는 것으로 끝이다.
반면 시댁 식구들과의 카톡방은 아예 없다. 어머니와의 나의 방은 있지만 문자를 보내듯 가끔 안부를 물을 뿐이다. 주고 받는 대화가 아니라 '날씨가 추운데 어떠니. 잘 지내고 건강해라.' 라는 내용의 장문 문자 같은 느낌으로. 남편도 시부모님께 따로 카톡을 드린다. 처음 결혼했을 때는 시부모님과의 카톡방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불편한지 알고나서는 핸드폰이 바뀌면서 카톡 계정이 지워졌을 때, 카톡 아이디를 새로 만들면서 가족 방을 만들지 않았다. 남편의 누나는 결혼은 했지만 아기는 없다.
나는 구지 결혼하고나서 형제와 대화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왜냐면 엄마는 딸한테 많은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딸한테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딸은 엄마가 어떤 부분이 속상한지 알기 때문에 참다 참다 참견할수도 있다. 그리고 시누가 그렇게 개입하는 것이 가족간의 화합을 깨는 일임을 알고 있다. 나는 오빠가 있고, 남편은 누나가 있다. 만약 친한 사이라서 자주 소통하다보면 당연히 가족의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내 편을 들어주는 시누이든, 부모님 편을 드는 시누이든 반갑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오빠에게 5년에 한번 연락을 하더라도 어색한 사이는 아니다. 1년에 한번 하든, 5년에 한번 하든 비슷한 것 같다. 새언니도 마찬가지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결혼한지 5년이 넘었지만 아직 우리는 존댓말을 쓰는 사이다. 그래도 내가 오랜만에 한국에 가면 오빠보다도 새언니가 먼저 우리 집으로 와서 나를 반겨준다. 남편도 누나와 카톡을 가끔 한다.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 형제간 대화할 게 있다면 형제끼리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딱 이정도의 사이가 참 좋다.
이번 명절에 연락을 드리니 남편 누나네 부부가 시댁에 와있다. 시아버지는 전화를 받으시자마자 전화가 끊긴다며 누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라고 하셨다. 누나 폰으로 전화를 하니, 아침에 머리 감고 준비하고 있던 누나도 당황하고, 우리도 당황한다. 사실 남편 누나가 나보다는 1살 어린데, 어머니가 남편 누나한테 나에게 반말을 하라고 하셨단다. 그래야 빨리 친해진다고. 첫 영상 통화를 하는 날, 첫 대면하는 그 순간 남편의 누나가 나에게 반말을 했고 나와 남편은 당황했다. 나이를 떠나서 첫 만남에는 존댓말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형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렀던 것인데....반말을 하라는 것은 하대를 하라는 것으로 느껴졌다. 남편이 이 사건을 해결을 한다고 했지만 극기야 시어머니께서 나에게 존댓말로 카톡을 하는 상황까지 갔다. 결혼 초반에 일어난 일이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던 나는 서러움에 회사 밖을 나와 눈물을 흘렸고 나중에 시아버지께서 마음 풀으라 하셨다. 이런 일을 겪고나니 남편 누나도, 나도 더 어색해졌다. 형제가 잘 지내길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형제를 벗어나 배우자의 마음을 뒤흔들지는 마셔야 했다. 악의를 품고 한 일이 아님을 알기에 남편 누나와 부모님에 대한 마음을 풀었지만, 이런 경험을 하고나니 사실 친해지기는 힘들 것 같다.
작년에 부모님의 환갑이 다가와서 오빠와 한번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다. 친지 분들을 모시고 식사자리를 마련할 것인데 나는 못 갈 것이 분명하니 한번 상의를 해보려고 했다. 나는 부모님께 드리려던 금액이 있었고, 오빠는 식사도 할 거고, 부모님께 세탁기, 에어컨 등도 선물해 드리면 어떠냐고 하였다. 오빠와 이야기를 해 본 결과, 그냥 따로 하자는 결론이 지어졌다. 오빠는 어쨋거나 식사자리를 마련해야하니 돈이 들 것이고, 만약 세탁기, 에어컨이 부모님이 필요하시다면 직접 사실 수 있게 돈을 드리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나는 내 수중에서, 오빠는 오빠 수중에서 최선을 다하자. 액수는 비슷할지언정 사람이기 때문에 생각은 다르다. 그리고 사실 같이 드릴 수 있는 금액보다 내가 드리고 싶은 금액은 더 컸기에. 오빠는 오빠가 알아서, 나는 내가 알아서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한번 겪고나니 우리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라도 남편과 상의하여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시댁에 관한 일이라도 우리는 우리 부부가 결정하는 권한을 스스로 갖게 되었다.
이런 부분에서는 미국에 있는게 도움이 된다.
한발자국 물러날 수 있는 것.
우리가 주체가 되는 것.
명절이면 한국에 더 가고 싶기도 하지만, 명절이라서 해외로 나와 여행하는 친구들을 보며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도 돌아보고, 또 자식없이 조금은 허전한 명절을 보내는 부모님께도 감사하고 죄송스러운 마음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