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 교과 담임으로 학급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새로 만난 선생님을 탐색하느라 바쁘다.
내 첫인상으로 말하면, 전적으로 아이들의 의견을 종합한 것이지만, 약간 차갑고 엄하게 생겨 무섭다고 하는데 한 달만 수업을 같이하고 나면 그 인상이 사라진다고 한다. 중학생의 경우 교사의 겉모습이나 풍기는 이미지가 수업에 영향을 주기도 하는 까닭에 학기초에는 조금 엄격한 모습이 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나 학기 초에 아이들을 약간 단속해놓지 않으면 일 년이 힘든 까닭에 짐짓 무서운 체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나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같다. 거창하게 그들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이러지는 못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해 주려고 노력하며 가능한 한 상황을 이해하고 긍정적인 말을 해주려고 한다. 나의 말 한마디로 누군가의 마음에 꽃이 핀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할 용의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처음 만날 때마다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이름하여 병아리 이야기.
만난 지 몇 번 안 된 시점에서 아이들은 선생을 제대로 파악 못 해 상당히 조심스러워 하고 이때를 틈타 나는 내가 얼마나 엄격하고 무서운 선생인지를 강조하며 이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 집은 예전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아버지로부터 남동생에 이르기까지. 나보다 세 살이 어린 남동생이 초등학생 때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사 온 적이 있었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닌 서른 마리 정도였으니 그 규모는 일러 무엇하겠는가. 그런데 아무래도 엄마에게 혼날 것 같아 일부는 자기 방에 숨겨두고 일부는 내 책상 서랍에 넣어주기를 애원하는 거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서랍 맨 밑 우묵한 곳에 신문지를 몇 겹 깔고 병아리를 열 마리 불하받았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생겼다. 동생이 친구 집에 간다고 나간 다음 믿거나 말거나 학구파였던 나는 책상에 앉아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랍에 넣어둔 병아리들이 얼마나 짹짹거리는지 아무리 참으려 해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참다 못해 벌컥 서랍 문을 열었다. 떠들던 병아리들이 갑자기 영문을 몰라 조용해진다. 그러면 나는 입술을 앙 다물며 '한 번만 더 떠들면 알아서 해….'라는 엄포를 놓는다. 한 일 분간의 조용함이 지난 후 또다시 책상 서랍 속은 전쟁이 일어난다. 나는 다시 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고 다시 조용하다가 시끄러워지기를 반복. 드디어 참을 수 없어진 나는 서랍 문을 열고 그중에서 제일 떠들어 대던 한 놈을 꺼내 들고 '너'하고 소리를 질렀다. 다음 순간, 나의 엄지와 집게손가락에 목청만큼 힘이 들어갔든지 고 녀석의 항문으로 무언가가 비집고 나온 것이 아닌가. 너무 놀라 살펴보니 내가 너무 힘을 준 탓에 내장이 힘을 이기지 못해 밖으로 삐져나온 것이었다. 나만큼 병아리도 놀랐는지 조용해졌고 그 뒤로 공부는 팽개치고 삐져나온 내장을 원상 복구 하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솜을 양쪽에 두툼하게 뭉쳐 부드럽게 안으로 밀어보았으나 되지 않았고 매끄러운 책받침을 사용하여 보았으나 허사였다.
비지땀을 흘리며 최선을 다하였으나 병아리는 회복되지 못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좀 조용히 하라고 했잖아….
병아리를 서랍에 넣으며 내가 한 말이었다.
이제 동생이 오면 병아리를 보러 올 텐데 지금 벌어진 저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머리를 굴리고 또 굴리던 즈음, 드디어 동생이 왔다. 동생이 책상 서랍을 열며 "오~~귀여운 내 새끼들~~" 할 때까지도 나는 모른 척 책을 읽고 있었지만, 가슴은 뛰었다. 곧이어 바로 "아 ~니" 하는 경악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왜 그래?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며 내가 물었고 동생은 불구가 된 병아리를 들어 올렸다.
"어…. 그거? 아까 공부하다 보니까 서랍 안이 너무 시끄러운 거야. 그래서 뭔가 하고 열어보았더니 아 글쎄, 모든 병아리가 걔를 밟고 있지 뭐야? 그 후에 보니까 저렇게 돼 있던데…?"
생각해봐도 신통방통한 내 대답에 나도 놀랐지만, 동생은 내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리곤 병아리에게 왜 그런 짓을 했냐고 야단을 쳤다. 그러나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날 저녁, 우리의 정성 어린 간호에도 불구하고 병아리가 죽었다. 우리는 깨끗한 휴지에 병아리를 싸고 비닐봉지로 다시 싼 다음 작은 상자에 넣어 담 밑에 묻어 주었다. 나무젓가락을 십자가형으로 묶어 비문도 적었다. 오오, 불쌍한 병아리…. 여기 잠들다…. 라고.
여기까지 얘기하고 그윽한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웃다가 나의 눈빛에 내가 왜 그 말을 하는지 비로소 이해하는 눈치였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떠들면…? "하고 내가 묻는다.
"병아리처럼 돼요" 아이들이 크게 대답한다.
그러나 내가 이 이야기를 한 의도와는 관계없이 아이들과 나의 서먹한 관계는 그 순간 일시에 무너져 내리고 우리는 일 분간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누가 누가 힘주나 게임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