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요일 또는 예술가 Jul 22. 2024

꿈은 이루어진다

지금부터 이십 여년전. 고등학교에 있다가 중학교로 옮겨 1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36명이 있는 교실. 초등학교에서 막 올라와 아직 중학생이 되기엔 어리숙한 아이들의 눈매를 보면서 일 년 동안 함께 할 목표를 정하기 시작했다.


담임으로 첫 시간 들어가서 자기소개를 하고 아이들과 인사를 나눈 후, 일 년의 목표를 말해보라고 했다. 아이들은 중학교에 와서 친구도 많이 사귀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보람찬 중학생이 되고 싶다고 입 모아 얘기했다.

고등학교와 달리 중학교는 하나하나 일일이 설명하고 자세히 가르쳐줘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아이들이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중1이라는 시기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기에 목표를 세우고 성취하는 기쁨을 맛본다면 그 기분이 평생을 좌우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저 아이들에게 뭔가 할 수 있다는, 성취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자. 첫 시간에 나는 그 생각을 했다.     

“중학생이 되어 열심히 살겠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기쁘네~ 그럼 우리 약속 하나 하자. 오늘부터 지각, 조퇴 결석을 하지 않아 무결석을 하면 선생님이 종업식날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 교실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사 줄게. 어때 해볼 만하니?”

아이들은 무결석이라는 무게보다는 짜장면과 탕수육에 열광했다. 눈을 빛내며 아이들 모두에게 그걸 사 주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 괜찮으세요, 라는 말로 나의 결심 강도를 측정하기도 했다.

“무결석만 한다면. 그것도 일 년 무결석이라면 선생님이 기꺼이 그 모든 걸 기쁘게 쏠게~”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일 년 무결석.     

하지만 일 년 무결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른여섯 명이나 되는 아이 중에 아픈 아이도 있을 수 있고, 깜빡해서 지각이나 조퇴를 할 수도 있고 집안에 누가 돌아가실 수도 있고 일 년 내내 산 넘고 물 건너는 일이 많은 학교생활에서 일 년 무결석이라니. 그게 과연 가능할까? 지각, 조퇴, 결과가 3번이면 1회 결석으로 치는 상황인데 그 많은 아이가 일 년 동안 지각이나 조퇴 결과가 없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말을 꺼낸 나도 크게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다만 새로 중학교에 들어온 아이들에게 뭐가 성취를 위한 동기부여 정도의 미션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무결석을 하지 못했더라고 짜장면과 탕수육은 사 주려고 했다.     


 

그날부터 우리 반은 1년 무결석이라는 목표를 갖고 시작했다. 1학기 동안 단 한 번의 지각이나 조퇴도 없었다. 우리는 자주 짜장면을 먹는 상상을 했고 그날이 점점 다가오는 기쁨에 가득 차 매일매일을 보냈다.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보건실로 데려가 약을 먹게 하고 평소에 지각할 위험이 있는 아이는 옆에 사는 다른 아이들이 챙겨서 데려왔다. 공동의 목표가 있는 학급은 결속력이 강했다. 아이들은 내 말을 신뢰하고 늘 반짝이는 눈빛으로 반겼다. 개구진 아이가 많았지만, 선을 넘지 않았다.      

2학기가 되자 아이들과의 미션을 학부모님께 편지로 전해드렸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지각이나 조퇴 결석을 예방하기 위해 미리미리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해 달라는 부탁도 드렸다. 가을이 오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의 열기는 뜨거워갔다. 

짜장면값을 미리 준비하라는 아이들의 애교도 늘어갔다. 그러면서 스스로 출결 관리를 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종업식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일이 생겼다. 평소 아슬아슬하게 등교 시간을 지키던 승태가 오지 않은 것이다. 교실은 초비상이 걸렸다. 조회에 들어가기 전에 반장이 달려와 상황을 이야기하고 서로 전화를 걸고 하느라 아침 교실은 북새통이었다. 승태는 부모님이 저녁 장사를 하시느라 아침에 집에 늦게 오시기 때문에 깨워서 학교에 가라고 도닥일 사람이 없는 아이였다. 그런데도 지난 일 년 가까이 지각, 결석하지 않고 온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다행히 승태네 집이 학교 근처라 아이들이 1교시 전에 집에 가서 승태를 데려오겠다고 내게 말했다. 혹시 모르니 1교시 교과 담당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2명의 아이가 승태네 집으로 갔다.     

그사이 교실은 불안과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지 않는 아이와 깨질지도 모르는 무결석. 자칫하면 일 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잘 될 거라는 긍정적 마음으로 버티고 있었다.


집에 간 아이들이 1교시 전에 승태를 데리고 왔다. 아이는 열이 나고 몸이 아픈 상태였다. 몸이 아픈 상태에서 깜빡 잠이 들어 등교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고 한다. 자는 아이를 깨워 숨을 고르며 의기양양하게 교실로 들어서는 모습이 얼마나 대견하고 안쓰러웠는지. 승태는 몸 상태로 보아 병원에 가야 하는데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자기로 인해 반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너무 미안해하는 모습에 오히려 이런 목표를 준 내가 미안해졌다. 일 년을 돌아보면 아픈 데도 기를 쓰고 나와서 병원도 가지 않고 버틴 아이가 있는가 하면 조퇴할 일이 있어도 수업이 다 끝나고 가는 성의를 보여준 아이들이 많았다. 그 열정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단지 짜장면이 그 원동력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목표를 이루려는 아이들의 마음. 그 마음들이 모여 꿈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혼자 이루려는 꿈이 아니라 다 함께 이루는 꿈은 힘이 세다. 그리고 강력하다.  


   


종업식 날이 왔다. 

종업식을 마치고 의자를 네 개씩 마주 보게 하여 식탁을 만들었다. 근처의 중국집에 미리 부탁하여 40개의 짜장면과 9개의 탕수육을 주문했다. 양이 많은데도 시간에 맞춰 따뜻한 상태로 배달해 주셨고 군만두도 덤으로 풍성하게 주셨다. 서로 마주 보고 앉은 아이들은 일 년의 고락을 서로 헤아리며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너무 기뻤다. 마지막에 승태가 1회 지각을 했지만, 결석은 아니었기에 1년 무결석이 완성되었다. 교직 생활을 더듬어 보니 일 년 무결석은 그때가 처음이지 싶다. 그만큼 전원 무결석이 쉬운 일이 아닌데 그걸 이뤄낸 우리 반 아이들이 너무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 

    

돈 많이 쓰셨다고 미안해하는 아이들을 안아주며 너희들로 인해 내가 배운 게 많다고, 마음을 모으니 어려운 일도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이번 일의 성취감이 인생에서 큰 자산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어려운 고비를 넘어가는 게 인생이라고. 그 순간, 혼자가 아니라 같이 있다면 그 힘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마지막까지 음식물 처리를 같이하고 교실 문을 열고 나서는 아이들을 배웅하며 기뻤다. 밖에는 2월의 찬 바람이 불고 있지만 우리 마음에는 훈훈함이 가득했다. 

마주 잡은 손의 따스함이 시간이 흐르면 기억에서 희미해지겠지만 모두 오늘의 기쁨과 뭔가를 이뤄냈다는 그 마음을 평생 간직했으면 한다. 다소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라며.

이전 06화 학교는 살아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