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급 학교의 기말고사가 끝났다. 이제 방학을 앞둔 학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다. 성적 처리도 있지만 각 교과의 세부 특기 능력 사항, 이른바 세부 능력과 특기 사항 쓰기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한 반에 아이들이 28명 내외이니 국, 영, 수 교과는 보통 4개 학급에 들어가게 되어 100여 명의 세특을 쓰고 예체능이나 수업 시수가 적은 교과는 10개 학급을 들어가게 되어 280여 명의 세특을 써야 한다.
세부 특기 능력 사항이 점점 대학입시에서 중요한 자료가 되다 보니 세특에서 좋은 평가를 얻고자 아이들도 엄청나게 노력을 한다. 교사로서도 세특에 좋은 이야기를 써주려고 한 학기, 또는 일 년간 자료를 모으고 틈틈이 기록하는 시간을 갖는다. 세특은 수업과 관련하여 이루어진 활동 중심으로 학생의 변화 과정과 그 의미를 기록하기에 평상시에 꾸준히 기록하면 되지 뭘 그걸로 학기 말이나 학년 말에 임박해서 시간을 들여 쓰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학교 현장을 모르는 소리다. 평상시에는 자세히 기록할 시간이 없기에 활동의 내용과 주제, 활동에서의 역할, 그로 인해 변화된 자질, 특이점 등을 간단하게 기록해서 모아둘 뿐이다.
학교에는 통상 4번의 정규 고사가 있다. 예전에는 중간, 기말고사로 불렸지만, 지금은 1학기 1차 지필고사, 2차 지필고사로 불린다. 개인적으론 중간, 기말고사가 훨씬 입에도 붙고 익숙하고 정겹다. 이름은 그렇다 치고 3월에 학기가 시작되면 보통 4월 말 정도에 중간고사를 실시한다. 3, 4월에 배운 내용을 4월 말이나 5월 초에 시험을 치는데 3, 4월은 진도를 나가기에 바쁘다. 4월 중순부터 문제를 내야 하는데 공동 출제가 원칙이다. 진도 범위 내에서 각각 문제를 출제하여 협의를 거친다. 국어과 같은 경우 4~5번 이상의 협의를 하고 문장, 단어의 중의적 의미까지도 체크하여 원안지를 만든다. 이때 문항 출제 편집을 맡은 교사는 원안지가 나오기까지 여러 번 협의한 내용을 문제에 정리하고 고치고 또 고치며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했는데도 시험 전날에 다시 보면 치명적 오타나 기호가 빠진 경우가 있어 당일 아침에 해당 페이지를 재인쇄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이니 자기 과목의 시험 종료령이 아무 문제 없이 울려야 마음을 놓는다.
시험 문제만 내는 것이 아니라 학기 초에 정한 수행평가도 문제를 만들고 시험지를 인쇄하여 가지고 있다가 3, 4월 미리 공지한 시간에 실시하기도 하고 프로젝트형으로 정해진 주간에 시행하기도 한다. 수행평가 후 미처 채점하기도 전에 할 일이 밀리다 보니 시험이 끝난 다음에 채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시험이 끝나면 성적이 나오고 성적이 나오기 전에 혹시라도 있었던 오류나 문제 제기에 대응하기도 한다. 이 과정을 거쳐 성적이 완전하게 나오면 개인별 성적통지표를 작성하게 된다. 학부모님은 아이가 학교에 와서 어떻게 공부하고 어떤 과정을 거치고 있는지, 아이가 받은 성적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궁금하다. 성적과 학교생활 전반에 걸친 내용을 각각 아이별로 작성하면 결재를 거쳐 주로 방학하는 날 아이에게 나눠준다.
시험이 끝나면 학교는 체육대회를 비롯해 수학여행, 축제나 직업체험이나 진로체험 같은 기획한 다른 행사가 이어진다. 아이들의 진로와 적성을 파악하기 위해 만들어진 다양한 활동을 행사 주관 부서나 교사는 미리미리 장소 예약을 하고 단체 활동을 위한 각종 계획을 짜고 실행한다. 이런 활동을 통해 아이들에게 통해 진로나 직업을 계획하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그나마 5월 시험 후 자유로운 시간이기에 아이들의 활동이 많다. 6월이 오면 다시 기말고사 대비를 위한 긴장감이 감돈다. 교사는 또 문제를 내며 이전과 같은 과정을 거치고 기말고사에는 수행평가 성적도 합산되기 때문에 미뤄둔 채점에 몰두하기도 한다.
이렇게 빠듯한 과정을 거치면서 성적 처리에 올인하면 이제 방학이 코앞이다. 인간을 다루는 직업엔 방학이 반드시 필요하다. 초임 시절엔 방학이 그저 휴가의 개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기간이 없으면 교사들은 살아남기 힘들 수도 있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심하고 감정 소모도 만만찮다. 해묵은 감정의 잔재와 찌꺼기를 다 비우지 않고 새로 시작할 수 없는데 그러려면 방학이 필수적이다. 방학을 맞이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마지막 고비가 생활기록부 쓰기다. 1학기와 2학기 과목이 달라질 경우에는 1, 2학기 모두 써야 하지만 1년 동안 한 과목을 가르치는 경우는 1학기에 해당하는 내용만 기록하면 되기에 양이 적은 편이다.
요즘 학교는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갈 시간이다. 이제 방학을 맞기 전에 세특을 써야 할 시간이다. 아이들을 보내고 어두워가는 교무실에 남아 자판을 두들기는 선생님들이 많다. 한 학기 또는 일 년 동안 아이들이 활동한 내용을 미리 적어 놓은 엑셀 파일을 불러내 문장을 다듬는다. 각각의 활동에 관한 아이들의 성장 과정과 변화가 빼곡히 적혀 있는 내용을 불러내 주어진 글자 수에 맞게 정리하는 일이 남았다.
앞으로 AI가 세특을 적어주는 날이 올 수도 있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게 과연 가능할까? 얼마 전 현직에 있는 선생님으로부터 챗gpt를 사용해 생기부 작성하는 방법이 나온다는 말을 들었다. 교사가 학생에 대해 키워드를 서술하면 그걸 모아서 문구를 정리해주는 모양인데 제법 그럴듯한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키워드가 중복되거나 다양하지 않으면 세특의 내용이 비슷하거나 중복되는 경우가 생긴다고 한다. 게다가 교육부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챗GPT 생기부 작성이 대학입시 수시에 반영되는 자료이므로 선생님이 아닌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작성하는 것은 규정 위반이라고 단정을 지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할 경우 교사가 직접 작성했는지 인공지능으로 했는지 구분이 안 가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지금처럼 교사가 몸을 갈아 생기부를 작성(새롭게 만들어야 하므로 창작이라고 한다.)하는 고충이 조만간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미리 관찰한 자료를 바탕으로 아이들의 생기부를 직접 써야 한다.
그러므로 생기부를 작성하는 오늘도 야근 각이다.
배달의 민족에 저녁거리를 시키며 삼삼오오 남은 교사들은 전의를 다진다.
생(生)을 기부하는 생기부를 위하여.
그리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자판을 두들기는 외로운 선생님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