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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 또는 예술가 Jul 08. 2024

나의 수학 여행기

 

지인들과 국내 여행을 할 때, 사람들은 우리의 목적지가 내가 이미 여러 번 다녀온 곳이라는 것을 알고 놀란다.

제주도를 비롯해 설악산, 지리산, 선운사, 마이산, 낙안읍성, 낙화암, 부여, 보성 차밭, 보령, 속리산, 화엄사, 오대산, 경주, 부산, 충무, 오동도, 거제, 외도, 평창, 문경새재. 일본(오사카, 돗토리현)

대충 떠오르는 것이 이 정도이다. 금방 기억나지 않아 적지 못한 장소도 있을 것이다.

여행은 물론 집 밖에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 많은 곳을 어떻게 다 다녔을까?

언급된 곳들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동안 아이들을 인솔하여 간 수학여행지이다.

해마다 수학여행을 따라다녔고 설악산도 서너 번, 지리산도 손으로 헤아리고 산으로 들로 바다로 다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누군가는 여행을 그렇게 많이 다녔으니 즐거운 기억과 그 장소에 대한 특별한 추억이 있지 않으냐고 묻는다. 물론, 그 많은 곳을 다녔으니 추억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곳에서 오롯하게 나만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기에 다녀온 그 장소는 지명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출발부터 도착까지 차 안에서 아이들의 안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정작 수학여행지에 가서는 아이들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질서 유지와 만약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태 예방에 애쓰다 보면 여행의 기쁨은 저만치 달아나 버린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든 후에도 조를 나눠 불침번을 서던 기억이 있는 여행은, 돌이켜보면 일의 연속이지 힐링의 시간은 아니다.  


   

수학여행도 시대에 따라 변천의 역사를 거쳐왔다. 가는 장소도 경주나 설악산에서 벗어나 다양한 곳을 탐색하고 세월호 이후로는 학년 전체가 한 곳으로 가지 않고 무리를 나눠 다른 지역으로 가는 테마 여행의 형식을 취하기도 했다.

80년대에는 가족 여행이 일반화되지 않았기에 아이들은 학교에서 가는 여행을 기다리고 좋아했다. 학급 아이들 전체가 집을 떠나 한 곳에서 숙식을 같이하니 얼마나 큰 의미가 있었겠는가.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부터는 가족 단위의 여행, 그것도 해외여행이 일반화되면서 학교에서 가는 여행의 의미는 다소 퇴색되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여전히 친구들과 밤을 새우며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기대를 건다. 이름하여 학창 시절의 추억 만들기이다. 

여행을 다녀와서 단짝이 된 친구들도 있으니 여행이 의미가 적은 것도 아니다.


     

교사에게 수학여행은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이 아닌 근무 시간이다. 2박 3일의 여행을 위해 몇 달 전부터 계획을 짜고 예약을 하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하는데 아무리 계획을 잘 짜고 준비해도 오고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돌발사태나 여행지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학교를 벗어나 또래끼리의 일탈을 즐기는 시간으로 생각하는 일부 아이들과 그걸 막으려는 실랑이는 교사에게 수학여행이 즐겁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이다. 버스가 학교 마당에 도착해 아이들을 무사히 내려놓고 그들이 집으로 가서 도착했다는 완료 문자를 받아야 안심하고 수학여행 일정이 종료되는 것이다. 대부분 수요일에 가서 금요일에 도착하는 일정을 선호하지만 같은 날짜를 원하는 곳이 많다 보니 입맛대로 고를 수가 없고 오히려 월요일에 출발해서 수요일에 돌아오는 일정이 많다. 정한 시간에 맞게 돌아온다면 다음날 출근에 지장이 없지만 지연돼 늦게 도착한다면 다음 날 수업까지도 지장이 있다.  


    

몇 년 전 고2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도에 갔다가 돌아오는 날. 우리가 탈 비행기는 오후 8시였는데 심하게 부는 바람 때문에 순서가 밀리고 계속 연착되더니 10시 30분 넘어서 탑승하게 되었다. 공항에 도착해 인원 점검을 마치고 버스에 오르니 밤 12시. 학교에 도착하니 새벽 한 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 시간에 아이들을 귀가시키고(다들 학교 근처이긴 했지만) 나도 집으로 오니 두 시 가까워지고 있는데 잘 들어갔다고 문자 보내라고 말했건만 연락이 없는 애들 체크하고 나니 2시 반이 넘어가고 있다. 그날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데 말이지. 이런 강행군을 견뎌내며 수학여행을 가는 이유는 단 하나, 아이들을 위해서이다. 학교에서 제한된 시간에 이뤄지는 관계의 폭을 넓히고 좀 더 깊이 있게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교사가 기획하여 만드는 여행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도 예전처럼 여행을 못 가는 것도 아니고 추억을 만들 계기가 여기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제 단체로 몰려가는 여행은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를 다녀오면 우스갯소리로 한 해 농사는 다 지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힘든 일이, 아니 그해의 중요한 일이 무탈하게 넘어갔다는 안도의 말이기도 하다. 요즘같이 모든 게 교사 책임이 되는 사회에서는 학년 전체가 움직이는 여행 같은 큰 사안은 물론이고 학급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사건들도 모두 교사의 책임이다. 아이가 다쳐도, 아이들끼리 싸워도, 그 반의 성적이 낮아도 담임은 반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힘들다. 그래서 담임을 맡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선생님들도 점차 늘어간다.      

기본적으로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새롭게 혁신하려는 마음을 가진 교사들이 주변에 많다. 그러나 불가피한 일이 생겼을 때 책임에 대한 부분은 오로지 해당 선생님에게 돌아온다. 학교 측이나 교육청, 동료 교사가 떠안을 수 없는 부분인데 설령 개입한다 해도 부분적이어서 문제에 대한 고통이나 해결을 위한 노력은 해당 교사가 감당할 수밖에 없다. 


     

내가 퇴직을 할 무렵 정년 퇴임을 앞둔 고등학교 선생님이 극단적 선택을 하신 일이 발생했다. 당시 신문 기사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체육 교사였던 그분은 수업 중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학생 한 명이 다른 학생이 찬 공에 맞아 눈 부위를 다치는 사고로 인해 피해 학생 측으로부터 과실치상 혐의로 고소를 당하셨다고 한다. 다른 학생이 찬 공이 구령대에 있는 여학생에게 가서 눈이 가격을 당한 사고인데 학부모가 관할 교육청에 감사 및 징계를 요청해 감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정년을 일 년 앞두고 세상을 떠난 선생님도 소송을 당해 고민했다고 한다. 정년을 일 년 앞두었다는 것은 그동안 수많은 난관을 헤치고 거기까지 걸어왔다는 말과 같다. 우스갯소리로 하늘이 도와야 정년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일단 내부적으로 건강해야 하고 외부적으로 소송이나 기타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 수업 중 잠깐 자리를 비워(고인이 배탈로 자리를 비웠다고 유가족은 말했지만, 교육 현장에서 임장 지도의 원칙이 엄정하다.) 그 사이에 학생이 다쳤을 때 그 모든 책임은 교과 담당 교사가 져야 한다. 그런 사안이 생기면 요즘은 주로 법적인 대응이 많다. 그에 비해 교사를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보호해 줄 법적 시스템이나 보호망은 구멍이 많이 뚫려 있다. 기본 전제에서 어긋나 버린 교사를 도와줄 사람이나 시스템은 없는 셈이다. 그는 혼자서 오롯이 견뎌야 하고 감당해야 한다. 소송에 대응하는 비용도 감당해야 하고 그사이에 자신을 둘러싸고 조여오는 신분과 앞날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에 대응해야 한다.  


    

한국에서 교사는 외로운 존재다. 학생을 지도하는 자율성은 있을지 몰라도 결과에 대한 책임을 교사가 져야 한다. 학생 지도에 무한 책임을 가진 교사의 일은 결과론적으로 자기 자신을 갉아 먹게 마련이다. 과정도, 책임도 교사가 모두 지는 현재의 시스템은 교사를 옥죄고 자율성을 좀먹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든다.

학폭 업무를 맡았다가 학부모의 민원 세례를 받는 건 다반사고 처리 결과에 불복하여 교사를 고발하는 학부모도 많다. 내가 아는 선생님도 소송에 걸려 있다고 들었다. 언제든지 소송에 걸릴 수 있는 교사. 그중에 학폭이나 담임 업무는 그 비중이 더 크다. 그러니 누가 담임과 어려운 업무를 맡고자 하겠는가. 사명감이나 교사로서의 보람은 이미 바닥을 친 지 오래다. 교사도 누군가의 부모이고 자녀이자 남편과 아내이다.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한 개체일진대 사명감을 내세워 교사를 박제하는 문화는 사라져야 한다. 초과 근무로 힘겹게 학폭 업무에 시달린 끝이 소송이라면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문제는 한국 교육계에서 교사가 짊어져야 할 무게가 무겁다는 점이다. 물론 사안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평화롭다. 학교도 학생도 학부모도 각자 선을 지킨다. 그러나 일단 사건이 발생하면 책임 소재를 가리는 자리에 맨몸으로 서 있어야 하고 비난과 화살을 혼자서 감내해야 한다. 비록 그 끝이 극단적인 선택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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