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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 또는 예술가 Jun 17. 2024

희망에게 말 걸기

아주 가끔 아이들에게 고민을 적어보게 하는 시간을 갖는다.

2학기가 시작되고 9월 말이 되면 학년 초 가지고 있던 결심과 목표가 어느 정도 희미해지고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아이들도 자주 생긴다. 그리고 지난 학기와 너무나도 다른 태도를 보이는 몇몇도 있다. 특별히 그들에게 마음이 간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고개를 숙이는 빈도가 잦아지고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으며 칠판을 바라보는 눈에 하얀 막이 끼인 듯한 아이들이 보인다. 그들의 눈은 나를 통과해 어디 먼 우주를 유영하고 있다. 문제는 자기들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거다. 희미한 눈빛과 지각과 조퇴가 빈번해지면 개인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눠보아야겠다고 생각한 아이들이 늘어가자 교실은 가라앉고 쓸쓸한 분위기로 가득하다. 


비가 오는 금요일. 창밖을 잠시 바라보다가 나는 교과서를 덮으라고 했다.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은 혹시나 노는 시간을 주는 건 아닐까 환호하며 일찍 샴페인을 터뜨린다.

예전에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나는 내가 이미 다 자란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생각도 있고 결정할 능력도 있는데 인정해주지 않고 아이 취급하는 어른들이 야속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다. 그랬기에 눈앞의 작은 아이라도 나는 그들만의 세계가 반드시 있다고 믿는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뿐 그들은 단 하나의 우주다.     

색깔 고운 종이를 나눠주며 현재 자신이 안고 있는 고민을 적어보게 했다.

뭐든지 좋다. 성적 문제, 친구 문제, 이성 문제, 가정 문제, 학원 문제, 진로 문제, 성격 문제 ,외모 문제 ..등등등. 자기 문제도 좋고 친구의 이야기도 좋고 편지 형식으로 써도 좋고 그냥 번호로 적어가도 좋다. 단 하나, 솔직할 것. 여기에 적힌 문제는 너희들과 나만 안다고. 그리고 답장이 필요한 사람은 메일 주소를 적으라고 했다. 

아이들에게 선생님을 믿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것이 고마웠다.


주어진 시간 내내 아이들은 고개를 박고 무언가를 쓴다. 예상대로 고민의 60퍼센트는 성적 문제였다. 지난 시험보다 평균이 떨어져서 고민이며 부모에게 좋은 아들. 딸의 모습을 보여 효도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을 속상해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집안 경제 사정이 어려워 학원을 다니지 못하는데 성적이 자꾸 떨어져 어떡해야 좋을지 모른다는 하소연도 있다. 자기가 원하는 길은 곡선인데 자꾸 직선만을 고집하는 엄마와의 갈등, 공부 잘하는 형제나 이웃과 비교하는 가족에 대한 분노, 공부하는 방법을 몰라 고민하고 좀 더 집중하고 싶은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 아이들의 모습은 비교적 밝고 건강하다.


그다음 순위의 고민은 이성 문제.

의외로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하다는 아이들이 많았다.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털어놓는 경우도 있었으며 짝사랑에 힘들어하거나 자기보다 버거운 상대를 만나 차이면 어쩌나 하는 고민을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오빠는 다른 언니를 좋아하지만, 자신의 마음은 3년째 변함이 없다는 여학생. 모범생인 한 여학생을 좋아하는데 그보다 훨씬 못한 자기의 성적과 외모 때문에 말을 해야 할지, 사귄다 해도 그 애가 변함이 없을지 고민하는 남학생도 있었다.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풋사랑에 마음 졸이는 아직은 너무나 순수한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비교적 접근이 쉬운 것들이다. 문제가 해결될 확률도 높거니와 장기적인 접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정 문제에 이르러서는 좀 심각하다.

아이들은 부모의 사이좋음과 나쁨, 부모의 이혼, 집안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  누구보다 민감하다. 얼마 전에 실직하신 아버지, 그리고 잦아지는 부모의 싸움. 그 과정에서 공부해도 오르지 않는 자신의 성적 때문에 부모의 싸움이 잦아지는 상황에 대한 죄책감.

아이의 얼굴에 어느새 그늘이 짙다.

K는 가정적이던 엄마가 인터넷에 빠진 뒤로 매일 외출하신다고 썼다. 인터넷 카페에서 아저씨. 아줌마들과 찍은 사진을 감상하는 엄마를 보며 외출을 자제하시라 했지만 소용이 없다는 고민을 말한다. 예전의 엄마가 그리운데 돌아가기엔 너무 먼 길을 왔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J는  몇 년 전에 이혼한 엄마와 살고 있다. 요즘 세상에 이혼한 집이 많아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2년 전부터 사귀는 엄마의 남자 친구로 인해 고민이 생겼다. 아이들을 데리고 재혼하려던 엄마는 시댁의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끝내기로 하셨단다. 그러나 아저씨 옆에 있을 때 너무 행복해 보이던 엄마의 모습이 어른거리고  자신과 동생 때문에 엄마가 행복하지 못하게 된다는 죄책감에 얼굴이 너무 어두웠다.

Y는 너무 자기중심적인 아버지와 가족들 사이에서 희생만 하는 엄마의 슬픔에 공감하면서도 바보 같은 그 모습이 싫어 집에 늦게 들어간다고 썼다. 이 꼴 저 꼴 보느니 차라리 집을 나가고 싶어 돈을 모으는 중인데 절대 비밀 보장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하나같이 메일 주소를 적었다. 

답장을 원하는 것이다. 아니 최소한의 해결책을 말해달라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편지를 읽어가면서 마음이 아프고 내가 해줄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요즘 들어 더욱 어깨가 처지고 어두워진 K, J, Y.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수업 시간에 자꾸 고개를 숙이고 딴 짓을 하고 어디다 마음을 두지 못하였구나....

마음 둘 곳 없는 너희들에게 집중하라고 야단만 쳤구나. 내 마음도 어두워진다.

긴급한 사안부터 정리해 무엇을 말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메일을 쓰기 시작한다.

너무나 어른스러운 K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작다. 그들의 고민에 비해 어쩌면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고민으로 가득 찬 그들의 마음 한구석에 작은 돌파구라도 뚫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의미를 두려고 한다.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고 후련해진 이발사처럼.

빼곡히 적혀진 메일 주소를 보며 그들의 맑은 눈이 떠오른다.

그들을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천진한 눈망울에 세상의 고민을 담고 나름대로 헤쳐나가려 노력하는 이 아이들을 어리다고만 말할 수 있나? 그들의 이야기를 그저 어린아이의 투정으로만 여겨 무시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세계를 품고 또 다른 세계와 만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어두운 눈빛은 그들이 만난 암초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아이들에게 서둘러 편지를 쓰면서 나의 글이 어딘가에 닿아서 그들 눈에 반짝임이 되살아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여전히 그들은 미래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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