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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 또는 예술가 Jun 10. 2024

부치지 못한 편지

  

어머니.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이 편지는 여전히 부치지 못할 것이지만, 저는 올해도 어머니께 편지를 씁니다.

2007년이니 벌써 17년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시간이란 왜 이리 저 혼자 달음질치는 데 익숙한지 저만치 먼저 달아난 시간을 소환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어머니, 그해 겨울, K는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지요.

2007년 2월 초. 날이 조금 추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졸업식을 며칠 앞두고 외부 인사들의 참석 여부를 확인하느라 조금 바빴던 오전. 

K의 담임 선생님이 조회가 끝나고 저에게 왔습니다. K가 아직 학교에 오지 않았다더군요. 당시 학교는 무슨 일인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았을 때 학생의 위치를 담임 교사가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지침이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학생에게 문제가 생겼는데 어떤 상황인지 몰라 학교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안 되는 그런 상황이었지요. 학생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보고하지 않아서 생기는 불상사에 대해 교사나 학교가 문책당하는 그런 분위기였어요.

      

그때 시간이 9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어서 저는 일단 집으로 전화를 해보라고 했어요. 혹시 늦잠을 잤을 수도 있으니까요. 늦잠을 잤는데 등교 시간이 많이 지났다면 보통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는 경우가 흔하거든요. 담임은 전화를 여러 번 해도 받지 않자 결국 어머님과 통화를 했다고 하더군요. 어머니는 아이가 오늘 교복 공동구매가 있어서 늦게 가도 된다고 했대요. 사실 공동구매 관련해서는 수업이 끝난 오후 2시 이후의 일이었는데 말이죠. 일의 전후를 이해하신 어머니와의 통화 이후 담임은 K와 통화를 했고 곧 등교하기로 했다고 전해 왔습니다. 


    

그로부터 삼십 분 정도, 아니 더 시간이 흐른 후였을까요? 제 자리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동사무소라고 해서 동장님이 졸업식에 오지 않기로 한 일정을 바꿔 다시 참석한다는 전화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K가 우리 학교 재학생이냐고 묻더군요. 그렇다고 답하고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는 담담하게 K가 조금 전 자기 아파트에서 투신을 했다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투신이라니요, 저는 제 귀를 의심했지만, 상대방은 지금 학생을 병원으로 이송하려는 상태임을 알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어머니. 그 뒤부터는 저도 경황이 없었어요. 일단 담임에게 학생의 주소를 확인하고 교장 선생님께 보고함과 동시에 학생부장님과 같이 K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으로 달려가는 동안 얼굴을 때리는 바람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발보다 앞서 나가 허둥지둥하며 몇 번이나 돌부리에 걸렸습니다. 막상 K가 사는 아파트가 가까워지자 솔직히 저는 무서웠습니다. 그가 살고 있다는 아파트 앞에는 모여 있는 사람도 없었고 차가운 바람만 오가는 현관엔 그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조금 전 받은 전화가 거짓이었나, 도리질하며 하늘을 보았어요. 집이 15층이었다는데 올려다보니 너무 아득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우왕좌왕하는 우리를 보고 경비실에서 나온 분에게 K에 관해 묻자 이미 K가 이미 세상을 등졌기에 병원 영안실로 옮겨 갔다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어머니. 어떻게 학교로 돌아왔는지 솔직히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교장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 서둘러 병원으로 갔을 때, 그날 병원 복도에서 만난 어머니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흰자위가 온통 핏빛으로 물든 그 눈빛에서 어머니의 깊은 슬픔을 마주했어요. 병원으로 달려왔지만, 막상 울고 있는 유족과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지요. 어머니도 막 병원에 도착한 상태였고 넋을 놓고 무너진 모습이라 가까이 가기도 조심스러웠어요.     

“그까짓 출석이 뭐라고 기어이 애를 나오라 해서.”

동행한 담임 교사를 향해 온몸으로 돌진하는 어머니를 막으며 슬펐습니다. 어머니의 분노는 담임을 향해 거침없이 표출되었고 이게 담임 선생이 받아야 할 일인가 생각하느라 제 머리도 어지러웠어요.

K가 없는 세상에 남겨질 어머니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아무런 잘못 없이 정해진 업무를 수행한 담임 교사 또한 저에게는 슬픔의 한 부분이었어요. 제가 그때 전화를 해보라고 괜히 말했던 걸까요?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어머니에게 K가 거짓말한 내용을 알리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일이 없었던 것으로 될까요? 


학교로 돌아와 그날 하교 후에 K와 친했던 아이들, 특히 전날, 같이 집으로 갔던 아이들을 불러 K의 행동에 이상한 점이 없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어요. 아이들은 최근 K가 다소 우울했다고 말했지만,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다만 한 아이가 K와 헤어질 때, ‘안녕’이라고 말했다며 그때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일반적으로 헤어질 때 ‘잘 가’라거나 ‘내일 봐’라는 말을 했을 텐데 그날따라 다른 말 없이 ‘안녕’이라고 한 말이 지금 와 생각하니 마음에 걸린다고 하더군요.     

평소 어머니와 K가 갈등 관계에 있었고, 그날도 학교에서 온 전화를 받고 어머니가 K를 심하게 질책했다는 얘기. K가 엄마를 비난한 유서를 쓰고 투신했다는 이야기를 경찰이 전해주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았어요. K가 없는 세상에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3일 내내 빈소에 있으면서 3학년 아이들을 반별로 병원에 와서 조문하게 했지요. 또래 아이들을 보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때는 그게 도리라고 생각했지요. 아이들은 K의 빈소에서 조용히 친구의 마지막을 전송하였고 아들과 친한 친구를 보면 어머니는 달려와서 아이를 감싸안곤 하셨죠. 3일 동안 저는 꽃으로 둘러싸인 앳된 아이의 영정을 바라보며 일을 막지 못한 회한과 슬픔으로 휘청거렸습니다. 기가 막힌다는 말이 몸으로 이해되는 순간이었죠. 


    

졸업식 날, 저는 졸업식 대신 K의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처음 가보는 화장장도 낯설고 입구엔 거친 나뭇가지들이 무성해 황량함이 더했습니다. 모든 것이 꿈인 것 같았습니다. 왜 여기 있는지, 이게 무슨 일인지, 시간을 돌릴 수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지요. 불꽃 속으로 관이 들어가고 때마침 어머니를 갑자기 잃은 남매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허공에 가득했습니다. 화장 후, 유골함을 들고 장지로 향하는 어머니와 이별하고 혼자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K를 생각했습니다. 말수가 적었지만 순하고 착한 아이였지요. 그 아이의 어디에 그런 독한 마음이 있었을까요. 15층에서 발을 내디딘 순간, K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화를 내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로 순간적인 행동을 감행했지만 바로 후회하지 않았을까요? 그 짧은 순간 아이의 머릿속에 교차하며 지나갔을 온갖 생각을 떠올리면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충동적으로 뛰어내리긴 했지만,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없었을까요?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아차, 하는 마음이 들진 않았을까요? 중력의 힘으로 내리닫는 그 찰나의 순간에 아이는 대체 어떤 생각을 한 것일까요? 후회가 아니었으면 했지만, 후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동안 혼자 샤워를 할 수 없었어요. 김이 어리는 거울에 어렴풋이 K의 영정이 어른거렸기 때문이죠. 


     


어머니. 오랜 시간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시간이 흘러 삶이 바빠지면서 저도 K의 일을 잊었습니다. 아니, 잊으려고 노력했지요. 하지만 2월이 오고 졸업 시즌이 되면 문득 K가 생각납니다. 어머니가 그토록 분노했던 담임 교사는 그 후 정신과 치료를 받고 학교를 휴직하셨죠. 교실에 들어서면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고 자신에 대한 어머니의 분노와 그에 대한 억울함이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어머니와 순탄치 못했던 아이의 관계로 아이가 투신한 것이라고 경찰 조사가 나왔을 때 분노하던 어머니의 모습과 담임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볼 때마다 머리채를 휘어잡으려던 어머니로 인해 담임은 빈소에서도 떳떳이 나서지 못하고 구석에서 떨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도대체 이게 누구의 잘못인지, 아니 이 일이 잘잘못을 따져야 하는 것인지 저는 아직도 분간이 안 갑니다. 어머니의 슬픔과 휴직을 하는 선생님의 아픔을 저는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자를 잃은 교사의 마음도 어머님 못지않거든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일의 순서를 치밀하게 따져 잘잘못을 가리고 책임을 묻는 교육계의 풍토에서 교사의 자율성은 자리를 잡을 수 없습니다.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나쁜 결과를 예상해서 교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교육의 질을 저하시키지 않을까요?


그 일 이후 저는 아이들을 볼 때 좀 더 세심하게 표정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아이가 웃고 있어도 그 표정이 진짜인지 아니면 내면에 뭔가 담고 있는 아픔이 있는지 늘 조심스럽게 관찰하기 시작했죠. 평소 순둥순둥한 얼굴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업에 참여하던 K의 모습이 이제는 전부가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지요. 겉으로 웃고 있다고 그 아이가 슬프지 않은 건 아니라고요.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기만 해도 눈물샘이 확 터지는 아이들이 있는 걸 보면 그런 관찰을 그만두기가 어려웠어요. 힘들고 어려울 때 말을 들어주기만 해도 아이의 표정이 조금은 가벼워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라고 해서 어른보다 마음의 짐이 가벼운 것은 아니라는 점도 알게 되었지요. 작은 표정의 변화라도 잘 살펴서 아이가 혹시라도 잘못 내릴 수 있는 결정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게 교사의 책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이 그걸 알아주지 않더라도 고독한 그 길을 그렇게 걸어가는 선생님들이 주변에 많이 계시거든요.     

어머니.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어머니 마음의 분노가 조금은 가라앉으셨으리라 생각해봅니다. 자식에 관한 일이니, 시간의 흐름이 상처의 치유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시간은 상처를 아물게 하고 다독이고 가라앉게 하는 힘이 있더군요. 어머니 마음속 슬픔이 오래 자신을 짓누르지 않고 이제는 조금 헐거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살아 있었다면 지금쯤 30대가 훌쩍 지났을 K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솜털이 눈에 잡히던 볼 통통한 얼굴이 떠오르고 싱긋 웃던 미소도 기억납니다. 그 모든 것이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아직도 묵직한 통증이 가슴에 남습니다.


어머니, 이 편지를 어떻게 끝맺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부치지 못할 편지이니 늘 가슴에 묻고 살고 오래전이라 해도 세상을 등진 제자를 어찌 쉽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서로가 아이의 마음을 조금 더 세심하게 살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아이를 기억하며 눈시울이 붉어질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어느 순간 틈새를 비집고 나와 가장 약한 부분을 헤집는 기억의 힘에 휘둘리지 마시고 새로운 힘으로 이겨내셨으면 합니다. 아이는 언제나 어머니의 마음에 살아 있으니까요.

어머니. 부디 건강하시기를 소망하며 K와 함께 수업했던 한용운의 <님의 침묵>으로 이 편지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려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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