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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 또는 예술가 Jun 03. 2024

선생님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교사에게 돈을 꾸러 오는 학생들이 심심찮게 있었다. 지금처럼 엄마 카드가 보편화되지 않았고 용돈을 타 쓰거나 준비물 사야 할 돈을 잊고 왔을 때, 배짱 좋은 학생들이 교사에게 돈을 빌리러 온다.

     

Y는 중학교 2학년 여학생. 내가 들어가는 반에서 안 좋은 쪽으로 조금 유명한 편이다. 출결이 안 좋고 친구들과 자주 투덕거리고 도벽도 있다. Y가 연루된 사건으로 선도위원회가 몇 번 있었지만, 그런대로 여기까지 왔다. 얼굴만 보면 여리여리하고 큰 눈에 약간의 슬픔이 어려있어 청순미와 풋풋함이 가미된 미소를 보일라치면 교사들은 과거 그의 행적을 말끔히 잊는다. 앞에는 그냥 순진한 눈망울을 지닌, 약간 젖은 눈의 소녀가 있을 뿐이다.     

“선생님. 돈 좀 빌려주세요.”

금요일 점심시간. Y가 돈을 빌리러 왔다. 말은 부탁의 어조이지만 맡겨놓은 돈을 찾으러 온 태도다. 담임도 아니고 교과를 가르치는 교사에게 넉살 좋게 와서 돈을 꾸는 학생이라니. 어라, 뭐지 하는 마음으로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고 무심하게 물었다.

“뭐에 쓸 건데?”

“오늘 계발활동 시간에 준비물 대금을 내야 하는데 깜빡 잊고 가져오지 못했어요. 준비물 대금 4천 원이 필요해요. 월요일에 꼭 갚을게요.”

맑은 큰 눈을 굴리며 나를 쳐다보는 Y의 말에 홀리듯 4천 원을 꿔 주었다.

“월요일에 갚도록 하렴.”

     

월요일이 되었다. 복도에서 만나 인사를 하고 내 뒤를 따르던 Y는 다른 반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일주일 중에서 월요일이 제일 긴장되고 바쁜 학교생활 중에 나는 돈을 빌려주었다는 사실도 잊었다. 물론 Y도 나를 보고 아무런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러다 2주일이 지나 다시 계발활동 시간이 돼서야 돈을 꿔 준 일이 기억났다. Y는 여전히 나를 보고도 그냥 지나친다. 그 천진한 눈망울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사이의 일이 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Y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따라서 돈도 빌리지 않았으며 그 기억은 나만의 잘못된 신호에 불과하다고. 그 뒤로도 시간이 꽤 흘렀다. 여전히 돈도 가져오지 않고 가타부타 말이 없는 상태로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자 Y가 어떤 아이인지 궁금해졌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내면이 궁금했던 거다. 담임을 통해 듣게 된 이야기는 이랬다. Y를 낳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내를 너무도 사랑했던 남편은 아내의 죽음과 맞바꾼 아이를 용납하기가 힘들었다. Y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버지는 해외 파견 근무를 자원했고 친할머니 손에서 자라던 Y는 할머니의 죽음 이후 고모에게 맡겨졌다고 한다. 고모 처지에서 Y는 갑자기 맡은, 하지 않아도 될 숙제 같았고 이미 아들 2명이 있던 고모에게 사고뭉치 Y는 골칫덩어리였을 뿐이다. 학교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들로 몇 번이나 선도위원회에 불려 나온 고모는 늘 피곤하고 억울한 기색을 보였다. 하루빨리 아이가 아버지에게 가서 자신의 짐을 벗고 싶은 욕망이 가득할 뿐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이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학교에서나 집에서든 늘 외톨이로 지냈다. 몇 년에 겨우 한번 볼까 말까 한 아버지. 그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이 Y의 가슴 속에 고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작고 여린 눈빛의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운명의 수레바퀴가 아닌가. 아무도 진심으로 돌봐주지 않는 상황에서 튕겨 나가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Y를 불렀다. 내 앞에 서자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내일까지 돈을 갚겠다고 말했다. 잊었다고 생각했으나 아이는 그 일을 잊지 않고 있었던 거다.     

떡볶이를 먹자는 내 말에 Y는 경계심을 보였다.

왜요? 제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요?

그냥. 이라는 내 말에도 결코 마음을 열지 않았다. 생각보다 마음이 굳게 닫혀 있는 아이였다.

그 뒤로도 Y는 돈을 갚지 않다가 방학이 가까워질 무렵에 동전 40개를 가져왔다.

선생님. 100원짜리로 갚으면 안 될까요?

나는 한숨을 쉬며 동전을 받았다. 뭐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쩌면 Y에게 상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뒤로도 그녀는 자잘한 사고를 끊임없이 저질렀다. 친구가 새로 산 운동화를 말없이 신고 간 일도 있었고 등교했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기도 해서 학교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그러나 일이 생겨도 그녀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혼나고 끝나면 된다는 마음인 듯했다. 혼나도 곁에는 아무도 없으니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그녀의 상황이 마음에 아렸다. 불러서 몇 번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했으나 Y는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다. 생각보다 강한 아이일까,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3학년이 끝나갈 무렵, Y는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떠나게 되었다. 다시는 한국에 들어올 생각이 없었던 아버지는 오랜 세월이 지나 이제 누군가에게 더 이상 맡길 수 없는 딸을 데려가기로 했다. 그의 아버지는 오랜 세월이 지나 상처를 딛고 드디어 딸과 화해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새로운 사랑이 찾아와 옛사랑의 아픔을 치유했는지도 모른다.

Y는 떠나기 전 나에게 인사하러 왔다. 반짝이는 영롱함이 사라진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 나이 또래가 가진 특유의 희망 대신 무심함과 덧없음이 허공을 바라보는 눈 속에 담겨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주고 간 작은 종이에 또박또박 쓴 몇 줄의 문장이 마음을 계속 후볐다.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어요. 돈도 빌려주시고 늦게 갚아서 죄송해요.

몇 번이나 맛있는 거 사주려고 하셨는데 나가지 않은 것도 죄송해요.

누가 저에게 관심을 가진 적이 없어서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제가 친구가 없잖아요. 가서도 선생님을 생각할게요.

안녕히 계세요.  
   

홍콩으로 간 Y의 소식은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친한 친구도 없었기에 한국에서의 그녀 삶이 휘발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끔 Y가 남긴 편지를 보며 나는 그녀의 슬픈 눈망울을 떠올리는 것으로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 아이가 나에게 돈을 빌린다고 다가온 이유는 혹시 외로워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어느 날 불현듯 그 생각이 스쳤다.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 그 시기에 타인의 시선 안에 들기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해야 했다면 Y가 했던 일련의 행동들은 살기 위한 몸부림 아니겠는가.

친구의 물건을 말없이 가져가고 말썽을 부리던 행동의 근원은 외로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는 정말 보지 못했던가. 그 아이의 눈 속에 담긴 신호를?

그리고 듣지 못했던가. 그의 절박한 목소리를?

교직 생활 이십 년이 훨씬 넘은 경력 교사라고 자부하면서 나는 아이가 내는 작은 목소리에 예민하게 응답하지 못했고 스스로 서야 한다고 자립성을 강조하며 손을 내밀어 잡아주지도 않았다. 그 사이에서 아이는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도대체, 그녀에게 나는 어떤 교사였을까.     

해마다 아이들이 바뀌는 학교.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고 정들었던 아이들과는 학년이 달라져 보지 못하거나 졸업으로 영영 이별하기도 한다. 학년이 바뀌고 학급이 달라져 지속적으로 만나지 않아도 되기에 어쩌면 마음을 열지 않고도 몇 년을 지낼 수 있다. 누구도 가까이 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 상태처럼.

많은 사람들과 같이 있어도 얼마든지 홀로 지낼 수 있는 공간인 학교를 나는 섬이라고 생각했다. 다가서야 존재를 알 수 있는 무수한 개체가 모여 있지만 누군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려고 들지 않으면 알 수 없기에 나는 학교에 있는 모든 대상이 섬처럼 느껴졌다.

겉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은 아니다. 시간을 들여 그의 속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아야 진짜 그를 알게 되는 것처럼 모든 독자적인 섬은 누군가가 자기를 알아주길 원한다. Y도 그랬을 것이라고 이제야 어렴풋이 짐작한다.

무수히 많은 섬 가운데 다가가 그 존재를 알아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가까이 있었다면 Y의 삶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선생님이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멀리 떨어져 있는 섬에 닻을 내리고 그 섬의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퐁퐁 솟아나는 샘물을 기꺼이 마실 수 있는 사람. 섬에 나무가 어느 쪽에 많이 자라는지 알고 바람이 부는 방향을 감지하는 사람. 아무도 모르는 섬의 고요한 침묵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말없이 손을 잡아주는 사람. 선생님이란 발견하고 다가가는 사람이 아닐까. 나는 그녀에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녀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쪽이 무너져내린다.

     

Y가 그리워지고 내가 정말 누군가의 선생님인가 회의가 들 때 읽는 시는 정현종 시인의 <섬>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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