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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 - SF소설 모음

고령화와 저출산률 대체하는 미래는 유토피아일까

by Y One

여러 보석 같은 SF들을 한꺼번에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강양구의 『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SF 소설 모음집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개별 작품들을 통해 오늘날을 조망하고 미래를 사유해 보는 책이었다. 모든 글이 흥미롭지만, 여기서는 두 챕터만 짚어보고 싶다. 5장 〈영원히 살면 행복할까〉와 18장 〈누구를 위한 인공 자궁인가〉다. (생각해 보니 둘 다 일본 작가의 작품인데, 같은 동북아시아라서 관심사도 닮은 걸까.)

5장에서는 생명 연장 기술이 만들어낼 부정적인 미래를 다룬다. 야마다 무네키의 『백년법』 속 세계에서 인간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원하는 시점에서 노화를 멈출 수 있기에, 영원히 20대나 30대의 몸으로 살 수도 있다. (나 같으면 30대 초반에서 멈추고 싶다.) 하지만 젊음을 유지한 채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고, 젊음의 권태를 호소하는 일이 늘어난다. 인구가 과도하게 불어나자 국가는 수명을 100년으로 제한하고 강제 사망을 제도화한다. 게다가 늙은 세대가 젊은 몸을 유지하며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제로토크라시’ 현상이 심화되면서, 늦게 태어난 세대는 억눌리고 결국 사회는 발전 대신 파국으로 향한다.

18장은 무라타 사야카의 『소멸 세계』를 다룬다. 인공 자궁이 발명·상용화된 시대, 성관계는 금지되고 오직 인공 자궁만이 출산을 허용한다. 사람들은 성욕을 부정적으로 여기며 성관계를 불결한 것으로 인식한다. 여기에 더해 양육권마저 국가가 독점한다. 모든 성인 남녀는 ‘엄마’로 불리고, 아이들은 공동 자녀로 취급된다. 자신의 친자녀를 만날 수 없으며, 건강하지 않은 아이는 일종의 폐기 대상이 된다.

이 두 소설은 영생과 출산의 해방이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죽음 문제는 나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다. 노인이 늘어나면, 아무리 젊은 외양을 갖추더라도 사회는 필연적으로 보수적·퇴행적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이런 기술은 처음엔 초부자와 기득권층이 독점할 것이고, 이미 한국 사회에서도 고령층일수록 자산을 더 많이 보유한 현실을 생각하면 세대 간 격차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백년법』에서 백세 제한이 ‘사회적 대타협’으로 받아들여지는 맥락이 의미심장하다.

반면 인공 자궁 이야기는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나는 그동안 인공 자궁이 여성에게 육체적·경제적 해방을 줄 거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오히려 정반대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출산의 부담이 사라진다는 이유로 여성에게 자녀를 강요하는 장치가 되거나, 여성 혐오자들에게는 ‘여자 없는 세상’을 주장할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출산과 양육은 여성에게 강제된 의무처럼 여겨졌는데, 『소멸 세계』는 그것이 ‘빼앗길 수 있는 권리’라는 점을 드러낸다.

이 책에는 이 외에도 환경 파괴 이후의 미래, 아포칼립스 시대의 음유시인 이야기 등 아름답고 사유적인 작품들이 다수 소개된다. 다가올 미래가 무엇일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책을 통해 여러 가능성을 미리 체험해 보는 것도 유의미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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