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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씨 Apr 06. 2023

경단녀의 재취업 스토리 ②

뭐라도 좀 하겠다는데 이렇게 안 될 수가 없다

해가 바뀌었고 마음은 급해졌다. 내일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아무리 움직이고 노력해도 발전이 없는 것 같은 기분에 초조함만 쌓여갔다. 당장 생활비 걱정에 앞으로의 미래를 위한 투자보다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 돈을 만들 수 있을지 전전긍긍했다. 알바 사이트를 뒤져 아이들이 기관에 가있는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알바자리를 찾아 모조리 이력서를 넣었다. 나의 초라한 이력서로는 부족했는지 지원한 곳에서는 문자하나 못 받았지만 내 이력서를 보고 딱 한 군데서 전화가 왔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학생 때도 안 해본 주방 설거지 알바를 하게 되었는데 또 이것도 할 만해서 주방이모가 되는 미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주방 삼촌이 볶아주는 쌀국수가 참 맛있었고, 주방 이모가 일머리가 좋다며 오래오래 일하라고 매일 새롭고 맛있는 걸 만들어주셨다 (나 먹을 거에 되게 약하네). 잠깐이지만 여러 개의 화구 앞에서 불쇼를 하고 있는 나를 상상하곤 했다. 3 개월쯤 지나고 벚꽃축제가 끝나 지역에 관광객이 뜸해질 무렵 난 해고됐다. 말 그대로 짤렸다. 해고라니! 너무 충격적이었으나 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날로 오르는 인건비에 재료값에 사장 입장에선 뭐라도 하나 줄여야 했겠지. '뭐라도'가 나였다는 게 씁쓸할 뿐

이후에 커피전문점에서 파트타이머 관리자로 1년 정도 일했는데 이곳은 사장이 장사를 접었다. 안타깝게도 4대 보험이 가입되어 있지 않아 사장이 주는 소정의 퇴직금만 받을 수 있었다.


이혼을 하고 나서는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월급과 의료보험이 필요했다. 공부하면서 만들어뒀던 예쁜 쓰레기들을 모아 작은 회사의 쇼핑몰 디자이너로 취업을 했다. 처음 정식으로 취업하게 된 분야라 혼자 일해야 하는 곳이었다면 포기했을 텐데 되게 웃기는 사수가 있어서 즐거웠다. 매번 독학으로 공부하고 혼자 일하던 나에게 사수가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었다. 웹용, 인쇄용 파일을 구분해서 만드는 법과 거래처와 소통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배웠다. 재작업을 넣는 동료에게 웃으며 화를 내는 방법도 배웠다. 아 웃기는 사수인 이유는 처음으로 혼자 청계천에 있는 인쇄소에 가던 날 내 사수는 파일을 잘 맡기고 인쇄물을 무사히 찾아오는 것보다 인쇄소 사장님을 어떻게 닦달해야 좀 더 저렴하고 빠르게 완성시킬 수 있는지를 먼저 알려주었다. 실없고 재밌는 사람이었지만 아닌 척 알려주고, 챙겨주는 사수가 참 고마웠다.


하지만 9살, 6살 4살 아이들에게 8시~7시까지의 기관 생활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리 월급이 필요해도 오랜 시간 일을 하는 건 무리가 있겠다 싶었다. 새로운 환경에 난  즐거웠지만 아이들은 점점 힘들어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어린이집 앞에서 한참을 울다 들어가기도 했고, 퇴근 후 하원을 하러 가면 나를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늦게 와서 밉다고 화를 내기도 했다. 이건 아니지 싶어 두 달을 못 채우고 그만뒀다. 한 번쯤은 제대로 '잘'해보고 싶었던 일이라 중도포기가 아쉽긴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삼형제를 생각하면 그때 그 일을 그만둔 건 참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후엔 영어 학원에서 상담실장으로 일했다. 첫 면접에서 원장은

- 이력서에 써져 있는 디자인 툴 활용 능력 때문에 뽑으려고요, 홍보물 작업도 함께 해주세요.

그러니까 상담도 하고 전화도 받고 애들 비위도 맞추고 홍보물 작업과 sns 홍보 활동도 하라는 얘기였는데, 최저시급보다 약간 높은 시급에 12-6시 딱 좋은 근무시간과 4대 보험가입까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코로나가 시작되어 학원업계가 직격탄을 맞을 때까지 열심히 일했다. 아마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오래오래 일을 하지 않았을까, 엄마들 사이에 꽤 평판 좋은 상담실장이었으니 아마 학원 상담계의 전설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환장하겠는 코로나로 인한 권고사직으로 마무리된 나의 원대한 꿈은 실업급여로 이어졌고 실업급여가 끝나갈 무렵 다시 취업사이트를 들락날락했다. 이번엔 알바보다 9-6시 근무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해야지 마음먹고 기웃거렸고 구직 2주 차 한 회사의 사장이란 사람과의 전화 면접을 통해 이 세상 살기가 참 쉽지 않다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의 쓴맛을 제대로 느꼈다.


예전 회사 너저분한 내 자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내 책상보 다는 오만배 깨끗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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