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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씨 Apr 05. 2023

경단녀의 재취업 스토리 ①

나도 내가 경단녀가 될지 몰랐죠

결혼 전 난 바리스타로 꽤 오랜 기간 일했다. 그 시절엔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막 알려지기 시작하는 무렵이라 모든 것이 새로웠고 전공과 다른 새로운 일을 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재미나게 일했다. 한 달 월급의 절반을 뚝 잘라 전문가 선생님의 교육을 받으러 다니기도 하고 일주일에 딱 한번 있는 소중한 휴일엔 서울 시내에 있는 커피 맛집과 그때는 흔하지 않던 로스터리 카페를 찾아다녔다.


전남편과도 일하던 카페에서 만났는데, 결혼 후 바로 이어진 출산과 육아로 인해 난 경력단절여성이 되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별거 없는 서비스직 경력의 기혼여성. 열심히 일하고 성실히 살았던 것 같은데 나에게 남은 건 그 한 줄이 전부였다.


경단녀로 사는 동안에도 놀아본 적은 없다. 블로그를 통해서 장사도 해보고 전남편과 사업체를 차려보기도 했고 , 시기가 온라인커머스 쇼핑몰이 성장하던 시기여서 다양한 마케팅 관련 공부도 꾸준히 했던 시간이었다. 그 시간으로 인해 나의 지식은 더욱 넓어졌으나 사실 뭘 해야 잘할 수 있는지 잘 모르던 시기이기도 했다.


뜨겁게 하는 사랑보다 적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래오래 꾸준히 사랑하며 살자 약속했던 전남편과 내가 함께 하는 노후가 그려지지 않게 된 시기는 대충 2016년쯤 이었던 것 같다. 셋째를 낳은 직후 피곤에 쩔어서 업무용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보며

- 넌 너무 억척스러워.

라고 무심하고도 차갑게 말하는 남편에게서 저 사람은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저 사람이 도대체 뭐가 싫은 걸까, 어떤 게 힘들고 불편할까 한참을 고민했었는데 딱 그 한 문장으로 나의 모든 걱정과 고민이 정리가 되었다.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고 있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미련해 보이고 바보 같아 보였을 수도 있겠다. 따박따박 생활비를 주는 것도 아니고, 다정한 사람도 아닌 데다가 가족보다 친구와 동료가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과 왜 결혼하고 왜 살았나 생각해 보면 난 정말 사랑 하나였다. 그것 말고 다른 이유는 없었다. 함께 있으면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 결과가 어찌 됐든 날 위해 온 삶을 노력해 주리라 믿었던 사람. 딱 들어맞지 않는 성격도 적당히 투닥투닥 맞춰가며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억척스럽다>라는 말로 나를 규정지었다.


그때로부터 이혼을 하게 된 2019년까지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내 일상은 온통 '돈벌이'에 집중되어 있었다. 내가 양육권을 가져와야겠다고 마음먹었으니, 혼자서 삼형제를 키우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애초에 사무직을 해본 적이 없으니 회사원이 될 엄두도 나질 않았다. 자본이 없었고 100%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도대체 무얼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무자본 혹은 소자본으로 시작해 볼 수 있는취미로 하던 손뜨개를 바탕으로 사업아이템을 찾았다. 다른 사람의 블로그와 유튜브 등을 참고하며 네이버에 스토어도 만들었다. 상품사진을 찍고 그 상세 페이지를 만드는 것도 공부했다. 유명한 쇼핑몰을 찾아보면서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하고 어떤 작업을 배워야 하는지 공부했다. 내가 시작했고 함께 으쌰으쌰 할 사람이 없어 제작, 홍보, 운영, 관리 모든 부분을 혼자서 감당하고 끊임없이 공부했다.

이 손뜨개 쇼핑몰은 2021년 가을까지 운영했다. 아이템이 일상적인 것은 아니어서 큰돈을 벌진 못 했지만 당시 제대로 된 생활비를 못 받았던 때라 그 작은 매출도 나는 참 소중했고 감사했다.


말한 것처럼 쇼핑몰은 큰돈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업이나 직업의 영역을 확장해야 했다. 그 무렵 전남편의 친구와 스튜디오 사업을 하다가 정리를 했었는데 프리랜서로 작업하는 작업자들에게 지불하는 페이가 상당했다. 집에서 일할 수 있고, 애들이 자는 밤에도 일 할 수 있으니 나에게는 꿈같은 직업이었다. 그렇게  <포토샵, 일러스트, 프리미어프로> 우스갯소리로 어도비 삼총사 프로그램 공부를 시작했다. 포토샵의 기본 개념은 쇼핑몰을 운영하며 전남편 어깨너머로 배워서 알고 있었으니 어려운 접근은 아니었다. 틈틈이 영상을 찾아 공부하고 프로그램을 만지작 거리며 이것저것 예쁜 쓰레기들을 만들어 냈고 그런 나를 보면서 전남편은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혀를 찼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는 꼭 써먹을 날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밤잠을 줄여 공부했다. 손뜨개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보기도 하고, sns 활동을 열정적으로 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프리미어프로를 통한 취업을 하기에 난 너무 늙은이였고 난 창작에 소질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포기했지만 저 세 개의 프로그램 공부는 지금까지 두루두루 유용하게, 여러모로 잘 써먹고 있다.


손가락이 부어서 바늘이 쥐어지지 않을때까지 작업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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