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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씨 Apr 07. 2023

경단녀의 재취업 스토리 ③

간사한 일개미로 살고 있습니다.  <완>

다시 취업시장에 뛰어든 나는 예전의 기억을 살려 집과 가까운 회사에 지원을 했고 조건이 나쁘지 않았던 회사의 사장이 전화가 왔다.

그 사장이라는 아저씨는 놀랍게도 내 이력서를 보며

- 고구마씨 맞죠? 결혼은.. 하셨고, 애가 있네?

그럼 애는 누가 키워요?

이후 이어지는 그의 말은 내가 얼마나 차가운 세상에 내던져진 건지 알 수 있었다.

9-6시의 근무 요건이었지만 자기네 직원들은 8:30에 출근해서 6:30분에 퇴근을 한다고, 물론 추가 수당 따위는 없고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두들 그렇게 한다고 한다. 그럼 월급 말고 최저임금으로 10-5 파트타이머로 바꿔주시는 건 어떠냐 하니 그건 근무시간을 바꾸는 거라 4대 보험을 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개똥만도 못한 말을 쏟아내는 사장의 말을 들으며 내가 지금 왜 이 꼴을 당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처음으로 사회가, 세상 사람들이 이혼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 아무래도 다른 사람을 뽑으시는 게 좋겠네요.

라고 적당히 끊으려 했더니 요즘 시기에 자기네 회사 말곤 아무 데서도 애 키우는 아줌마를 환영하지 않을 거라며 악담을 퍼붓고 전화를 끊었다. 개똥만도 못한 말들을 들으며 야무지게 한방 따지지도 못한 나의 소심함을 자책했으나 <세상 참 별인간도 다 있다> 하며 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내 멘탈이 좀 회복되었을 때 개똥사장이 공손한 문자를 보냈다.

"고구마님 10-5시 근무 정규직으로 근무조건 맞춰드릴 수 있으니 전화 한번 주시겠어요?"

아니요.


개똥 회사의 면접 후엔 생각을 바꿔 TM 직종으로의 이직을 노렸다. 근무시간도 일정하고, 집에서도 가까운 회사가 많았다는 평범한 이유 말고 사실은 아줌마들한테 우호적인 업종을 생각하다 보니 선택한 직업이었다.


이력서를 냈고 첫 면접을 본 후 면접관에게 전화가 왔다.

- 인상적인 면접이었다. 우리 회사에 참 어울리는 인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함께 면접을 본 다른 분이 이번 직무에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TO가 한정되어 있어 아쉽지만 이번 채용은 어려울 것 같고 곧 다른 파트의 TM채용 면접이 있는데 다시 한번 지원해 보면 좋겠다.


아니 뭐여 이게, 그냥 떨어트릴 거면 떨어트리지.. 이게 뭐람. 그래도 선택지가 없었다. 자존심은 상했으나 자존심을 세울 상황이 아니었으니 인터넷을 뒤져서 면접 잘 보는 방법 따위를 검색해 가며 다음 주쯤 있다는 면접을 보기로 했다.

이때쯤 난 온 세상이 내 취업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39살 하반기, 그저 그런 9년 차 경단녀에게 현실은 냉혹하고 막막했다.


그날도 틈틈이 구직 사이트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오랜만에 반가운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라는 공통분모로 어린이집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맘이 참 잘 맞는 사람이었다.

까불기 좋아하는 내 장난과 짖꿎은 농담 따위를 늘 즐겁게 받아주는 유쾌한 사람.

- 구마~ 요즘 뭐해요?

- 저 요즘 놀아요 ㅋㅋㅋㅋㅋ 취업준비를 하고 있긴 한데 쉽지 않네요.

- 혹시 우리 회사에 와서 일해볼래요? 마침 사람이 필요해요. 구마만 괜찮으면 함께 일하면 어떨까

?????????????????????????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당장 월세를 내야 했고, 삼형제의 학원비가 나가야 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아닌가에 대한 고민 자체가 사치였다. 두 달간의 약속을 시작으로 그렇게 느닷없이 생전 처음으로 회사원이 되었다.

생소한 분야에 처음 하는 일 천지라 알아듣는 말보다 못 알아듣는 말이 많았고 회의가 끝나면 네이버에 각종 단어들을 검색했다. 문서툴은 써 본 지 15년은 족히 지난지라 유튜브를 보며 기본 기능들을 하나하나 공부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재촉하지 않았지만 혼자서 하루종일 동동 거리다가 퇴근시간이 되면 녹초가 되어 나자빠졌다. 사실 대충 하려면 할 수 있었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되고 싶진 않았다. 적어도 일이 진행됨에 있어 도움 되는 손은 못되더라도 방해하는 손이 되고 싶지 않았다. 특히 나의 어떤 부분을 보고 전화를 걸었을 지인에게 누가 되고 싶지 않았고, 나를 생각해 두고 전화를 해준 마음이 너무 고마워 그 마음에 부정적인 결말을 얹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따지고 보면 낙하산 아닌가!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 말고 '아 데려올만했네~' 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는 마음이 컸다. 그렇게 하늘에서 내려준 튼튼한 동아줄 같던(아 이것이 낙하산 줄이었던 건가...) 회사에서  그보다 더 멋진 사람들과 일하는 3년 차 회사원이 되었다.


사람이 참 간사하지.

지원하는 회사마다 떨어지고 면접 인척 하는 그지 같은 인간들에게 별의별 소리를 다 들을 땐 세상에 나만큼 불행한 사람도 없다 싶어서 아침저녁으로 하느님은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냐며, <내가 어릴 때 묵주기도도 열심히 하고 미사도 열심히 드렸는데 이제 와서 나한테 이러기 있습니까!>라고 매일밤 궁시렁 거리다 잠들었었다. 날 위해 기도해 준다는 언니의 말에도 <난 안 할 거야, 하느님이 날 위해 애써주실 맘이 있었다면 이럴 수 없지, 그러니까 난 기도 안 해. 아마 내가 기도 안 하고 씅질부려도 하느님은 할 말 없을걸>이라며 포악을 떨었다. 포악을 떨었던 게 효과가 있었던 건지, 심성 고운 우리 가족들의 기도에 하느님의 마음이 동하신 건지 모르겠지만 나의 현재는 많이 안정되었다. 이렇게나 간사한 나는 세상에 나처럼 복 받은 사람이 또 있을까, 역시 하느님은 나를 위해 모든 걸 준비해 두신 게 틀림없다며 매일 밤 <오늘도 무사히, 건강히, 아무 일 없이 마무리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를 하다 잠든다.

이쯤 되면 하느님도 내가 얄미워 내가 날리는 화살기도 따위 살포시 차단버튼을 누르셔도 난 할 말이 없다.


난 간사한 일개미가 되었다.


회사 단톡방 배경사진. 처음 입사했을때 절대 실수하지 않겠다며 바꿔뒀다. 친구들이 볼때마다 북괴무리같다고 놀림받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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