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를 설레게 하는 장래희망
장사꾼이 되고 싶었던 시절이 있다. 해외 유명 어떤 브랜드처럼 내 이름이 들어간 브랜드를 론칭하고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말 그대로 장사꾼이 되고 싶었다.
손재주가 좋으셨던 엄마를 보며 물건을 만들고 판매한 후 수익을 낸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중2병이 고등학생 때 왔는지 느닷없이 악기소리에 홀려 연주자가 되고 싶어 지기 전까지 나는 한결같이 <거상>의 꿈을 꾸었다.
남들보다 악기를 늦게 시작했지만 나는 당연히 내가 음악가가 될 줄 알았다. 온 집안, 온 가문(?)의 구성원들이 반대하는 악기를 전공하면서
- 내가 언젠간 대단한 음악가가 되어 저 인간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줘야지!!!
라는 생각을 가졌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난 재능이 없었다. 음악인이 되기 위한 재능이 단 한 가지도 없었다. 탁월한 귀를 타고나지도 못했고, 타고나지 못한 능력을 커버해 줄 집안의 재력 또한 부재했다.
그저 잘하고 싶어서 허우적거리는 나만 있었는데, 그 나는 그렇게 멘탈이 센 사람이 아니었다.
어영부영 음악인으로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중에 우연히 TV에서 중계된 뉴욕필하모닉의 평양 연주회 실황을 보게 되었다.
번쩍이는 금관악기의 연주자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이 연주하는 흔해빠진 심포니를 들으며 그냥 생각이 들었다.
-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그만해야겠다.
재능의 차이, 타고난 능력의 차이, 피지컬의 차이, 환경과 문화의 차이. 그 모든 것이 한 번에 이해가 되었다. 누군가는 그런 걸 보면 더 멋지게 해내고 싶어 진다고 하던데. 나와 너무 다른 그들의 압도적인 능력치에 내 실력의 한계가 피부에 와닿았다. 느닷없는 삼천포지만 같은 이유로 난 <1만 시간의 법칙>을 믿지 않는다.
그렇게 음악인으로서의 꿈을 내려놓고 난 다시 장사꾼을 꿈꿨다. 난 지금도 오롯이 나의 꿈을 위해 존재하는 작은 가게에서 맛있는 커피와 빵을 파는 꿈을 꾸고 있다.
하지만 고등학생 시절 호기롭게 시작했던 악기처럼 냅다 지를 용기는 없다. 나이와 용기는 반비례하는 게 분명하다. 그래서 가만히 단 한 번뿐일 기회와 때를 기다리고 있다. 악기를 그만둔 후 내가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것처럼 분명 실패 후엔 또 한 번의 기회는 없을 거라는 걸 이제는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치 사냥감을 눈앞에 둔 호랑이의 마음으로 숨죽여 기회를 노려본다. 어흥!
가끔씩 안부를 묻고 지내던 지인이 연락이 오곤 한다. 카페를 차리려고 하는데 도움을 받고 싶다고. 그럴 때면 속 없이 밤잠을 줄여가며 달려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잠시나마 키보드와 마우스에 치이는 일상을 잊고 내가 사장이 된 것 같은 기분을 한껏 느끼고 오곤 한다.
지금은 비론 현실에 치여 하루하루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지내고 있지만 난 여전히 장래희망을 가지고 살고 있다. 나이 40과 장래희망이라는 단어가 썩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지만, 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누군가는 철없는 소리, 속없는 소리라며 잔소리할 수도 있지만 난 여전히 꿈을 꾸는 사람이다.
언젠가는 내가 만든 커피와 빵으로 메뉴판을 가득 채울 수 있게 되는 날을 꿈꾸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