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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씨 Apr 01. 2023

나의 이혼이 당신은 불편한가요?

21세기를 살아가는 씩씩한 이혼녀 박씨

함께 일을 하며 만난 사람이 있다.

늘 다정하게 업무 내용을 공유해 주고, 물어보는 것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는 따뜻하고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풀재택을 하는 우리는 자주 없는 오프라인에서의 일이 끝나고 저녁을 먹으면서 처음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아들을 키운다는 이야기와 퇴근후 하는 소소한 취미들 뭐 그런 시시껄렁한 이야기. 맛있게 밥을 먹으며 이야기하다가 자연스럽고 우연하게 남편 직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무심코

- 아 사실 전 이혼했어요, 남편이 전문직이긴 한데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나에게 이혼이라는 키워드는 어려운 키워드가 아니다. 부끄럽지도 불편하지도 어렵지도 않기에 편하게 얘기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붙잡고 <저는 세상 가련한 아들 셋 키우는 이혼녀랍니다~오호호홍>이라고 하진 않지만 이야기를 해야 하는 순간에 의식적으로 피하진 않는다. 피하고 가릴 이유가 없다.

이혼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게 된다. 대부분 <아 그렇구나> 라거나 가끔은 < 대단하다~> 하고 넘어가지만 더러 불편함과 당혹스러움이 섞인 표정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그랬다. 그때는 그저 직장 동료의 사생활을 듣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가 보다. 그렇지 퇴근 후 저녁식사를 하며 나눌 수 있는 즐거운 주제는 아니니까 라며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는데 집에 오는 길 장문의 카톡을 받았다.


<앞으로 일을 하면서 본인에게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를 그렇게 하는 건 좋지 않은 거 같다.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고구마씨가 사회생활을 많이 안 해보신 것 같아 카톡으로 보낸다. 기분 나빠하시진 말았으면 좋겠다, 나쁜 의도가 아니라 걱정되어하는 말이다. >


당황스러웠다. 그 사람에게 나의 이혼은 약점으로 책잡아 지적할 수 있는 거였나 보다. 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선택한 나의 이혼이 그 사람의 눈에는 나를 흔들 수 있는 약점으로 보였다 보다. 약점이라는 단어와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것 같다는 말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차라리 오늘 오프라인 미팅에서의 태도를 지적했다면 고치려고 노력했을 텐데. 그 사람은 날 그렇게 봤구나. 와.. 나 노력해야겠다..

그럼 그동안 나의 이혼 이야기를 들어주며 공감하고 위로하고 응원해 주던 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저 사람은 나의 이 당혹스러움을 알고 있을까? 아마도 나에게 아주 좋은 조언을 했다면서 스스로를 칭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래 볼 사이가 아니었으니 그저 짧은 답장으로 내 마음을 전했다.

- 하기 어려운 얘긴데 마음 써서 이야기해 주어 감사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내 답장을 본 그 사람이 본인의 센스와 마음씀에 도취되어 아무한테나 아무 말이나 하다가 큰코다쳐보길, 그렇게 사회의 쓴맛을 한 번쯤은 느껴봤으면 하는 나쁜 마음은 귀여운 이모티콘에 숨겨 보냈다.


나의 신선한 약점을 일깨워준 그 사람과 함께 일한 후 난 약속했던 계약기간이 끝났고, 몇 달 후 정식으로 다시 일하게 되면서 오랜만에 그 사람을 만났는데

- 어! 아직도 일해요?

- 그러게요 아직 일을 하네요^__________^

그냥 내가 참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혼녀 박씨는 소심하고 꽁하지만 직장인 박씨는 마음이 넓고 웃음이 헤프니까.


22년 이혼 건수는 9만3천 건이라고 한다. 그 9만 3천 명 중 한 명의 이야기를 여러분은 듣고 있다. 특별할 것도 어려울 것도 없는 사는 이야기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2023년도 연말엔 내가 쓴 책 한 권을 꼭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글쓰기다. 40년의 삶 중 꿈에서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시간을 무사히 보내고 일상 속 행복을 되찾은 나의 이야기를 나중의 나를 위해 글로 정리해 남겨보고 싶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괜찮아 라는 마음으로 뼈대를 구상하고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한 지 4개월, 우연히 접한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 작가라는 직업을 경험해 보고 있다.

내가 이곳에 남기는 길지만 짧고, 평범하지만 특별한 나의 이야기를 여러분들은 불편하지 않게 들어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만약 나의 약점을 찾고 싶은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진부한 이혼녀 말고 능력 없는 일러스트 디자이너, 노잼 영상편집자, 영어 못하는 영알못과 욱하는 아들엄마, 맞춤법 모르는 작가지망생 등등 내가 납득 가능한 것으로 약점을 잡아주시길 바란다. 그럼 난 약점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생겨 어제보다 멋진 내가 될 것이다.


나도 깜짝 놀란 40년 대한민국 토박이의 맞춤법 검토 결과, 이정도면 킹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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