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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냥이 Oct 19. 2023

인문학도, 밥벌이도 지겨울 때

카프카의 밥벌이를 떠올리다

가끔 참을 수 없이 일이 지겨울 때가 있다. 누군들 그러지 않겠느냐만은 한 가지 일을 오래 하지 못하는 성향인 나로서는 그 지겨움의 무게가 상당했다. 누구의 강요 없이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건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밥벌이의 지겨움은 어쩌지 못했다. 그럴 때는 책이고 강연이고 인문학과 관련된 모든 지겨웠다. 


어느 날은 상사를 찾아가 이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다른 일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사실 나는 인문학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고, 렇지 않고서야 이 일이 이렇게 지겨울 수는 없는 거라고. 일을 그만둬야 하는 이유 수십 개를 내세우며 사표를 던지곤 했다.(그렇다. 나는 사표를 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사표를 던질 때마다 나를 붙잡은 건 카프카였다. 프란츠 카프카는 평생 자신이 좋아하는 글쓰기에 몰두하길 바랐다. 하지만 세속적인 성공을 바랐던 아버지의 등살에 밀려 전업 작가의 길을 걷지 못했다. 대신 노동자산재보험공사에서 14년 동안 근무하며 글쓰기와 직장 생활을 병행했다. 


글쓰기를 방해하는 직장은 카프카에게 끔찍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는 늘 직장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꿨다. 종일 글만 쓸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친구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직장에 대한 카프카의 부정적인 묘사는 카프카의 상관과 동료들이 그를 매우 높게 평가한 사실과, 그 끔찍한 직장에서 몇 번의 승진을 거쳐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간 사실과 모순된다. 


또 여러 해에 걸쳐 남보다 유리한 조건의 병가를 얻어 질병 치료를 받을 만큼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사실과도 모순된다. 이러한 모순은 카프카가 밥벌이와 좋아하는 글쓰기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얼마나 애썼을지 짐작케 해 준다. 궁금해진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직장인이 아닌 작가가 되고 싶었던 카프카는. 진절 머리를 내면서도 승진을 거듭할 만큼 밥벌이에 매진하던 카프카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밥벌이가 지겨워질 때면 나는 위대한 거장조차 지겨운 밥벌이를 이어갔다는 사실에 철없는 위로를 받는다. 저 유명한『에티카』를 집필한 철학자 스피노자를 보라. 그 평생 렌즈를 깎는 일로 먹고살았다. 불후의 고전을 남긴 스피노자도, 카프카도 우리와 별 다를 바 없이 밥벌이에 뛰어들었다. '치열하게'라는 단어는 결코 과장된 수사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건강이 위협당할 만큼 생업에 뛰어들었다. 수십 년 간 직장 생활과 글쓰기를 병행한 카프카는 건강이 쇠약해져 결국 폐결핵을 얻었고, 스피노자 또한 렌즈를 갈면서 얻은 진폐증 때문에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했던 카프카와 스피노자를 보면 부쩍 마음이 겸허해진다. 그들이라고 어찌 밥벌이가 지겹지 않았겠는가.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밥벌이를 피하지도, 놓지도 않았다. 오히려 병을 얻을 만큼 치열하게 생업을 이어나갔다. 한데 나란 작자는 뭐 그리 대단해서 밥벌이의 지겨움을 피해 갈 수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슬그머니 사표를 다시 집어넣고 만다.  

  



국내 카프카 연구 최고 권위자인 P교수님을 모시고 강연을 진행한 적이 있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카프카의 작품을 어떻게 해석해 주실까, 기대를 안고 어렵게 섭외한 교수님이었다. P교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카프카는 해석을 거부하는 작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서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카프카를 이해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카프카 작품을 직접 읽는 것입니다. 교수인 제가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도 그저 하나의 의견일 뿐입니다. 타인의 해석이 아니라 여러분 각자가 이해하는 방식대로 카프카를 만나세요. 카프카는 그 목적을 위해 평생 글을 쓴 것이니까요. 저는 오늘 이 말을 하기 위해 왔습니다.”     


시종일관 강연 메시지는 단순했다. 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카프카를 직접 만나세요. 나는 청중석에서 소리 없는 박수를 치며 미소를 지었다. 인문학 강연에서 이런 분을 만나기 쉽지 않은 탓이다. 인문학자의 가장 큰 무기는 말이다. 인문학자는 대개 온갖 난해한 이론과 현란한 해석으로 무장한 말이라는 무기를 갖고 있다. 실제로 학계에서 권위 있는 연사를 섭외하다 보면 일반인은 이해하지도 못할 학술 이론을 줄줄 읊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주장에 힘을 주기 위해 무기를 쓰는 것이다. 이 강철무기를 내려놓는 일은 그래서 쉽지 않다. 자칫 실력이 없다고 비칠 수 있고 강연에 신뢰성이 없다는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란한 무기를 내려놓고서 이토록 겸손하게 청중 앞에 서는 강연자를 만날 때면 반갑기 그지없다. 이런 분은 강연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텍스트에 갇힌 거인의 생생한 목소리를 청중에게 닿게 하는 것. 이를 위해 자신의 목소리 볼륨을 줄이는 것. 청중 앞에서 한껏 목청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지라도.


이런 분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운 자리서 듣고 있노라면 나는 잠시 흐뭇해진다. 그 순간만큼은 일에 대한 회의감도, 지겨움도 제법 견딜만해진다. 얼마 되지 않은 강연료에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분이 계신데 나도 조금만 더 버텨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쯤 되면 카프카가 내 사표를 막은 일등 공신... 까진 아니더라도 이등 공신쯤은 되는 듯하다. 궁금해진다. 카프카는 언제까지 내 사표를 집어넣게 만들까. 언제까지 이 일의 지겨움을 견디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궁금해한 지 어느덧 7년이 지나고 있다. 사표를 던지고 싶을 때면 나는 여전히 카프카를 찾는다. 죽기 전까지 밥벌이를 놓지 않은 카프카에게 철없는 위로를 받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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