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와 작별하는 방법

한강 작가 인터뷰 중에서

by 고희수

딸기의 계절이 끝나가는 3월 말. 떨이로 나온 풋풋한 맛이 나는 딸기를 1kg 샀다. 생긴 건 예쁜 게 맛은 하나도 안 들어서 딸기잼을 만들기 딱이다. 딸기 1kg, 설탕 300g, 레몬즙 크게 2스푼, 단맛이 강해지라고 소금 조금.


설탕에 빠진 딸기가 끓으며 온 집안은 달달한 딸기 냄새가 진동한다. 잼이야 마트에서 한통 사다먹으면 그만이지만, 하루종일 집안을 휘감는 이 달큰한 냄새가 기분이 좋아서 잼을 만드는 것 같다.


예전엔 엄마가 철마다 청을 담그고, 잼을 만들 땐 참 번거롭단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제철의 과일로 향을 풍기는 일이 나름 그 계절을 기억하는 좋은 방법인 것 같아 어느새 나도 따라하고 있다.


예전에 한강 작가의 인터뷰로, 아이를 낳게 된 계기를 이야기 한 게 생각났다. 사람과 세상의 고통에 이토록 민감한 작가이기에 이 세상에 아이를 남기는게 무책임하단 생각을 할만했다 싶다. 그런 그녀의 생각을 달라지게 한 건 남편이 한 말이다.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아. 여름엔 수박도 달고,
봄에는 참외도 있고, 목마를 땐 물도 달지 않나.
그런 것 다 맛보게 해주고 싶지 않아?
빗소리도 듣게 하고, 눈 오는 것도 보게 해주고 싶지 않아?

언젠가 아이를 낳지 않을까 하는 막연함만 가지고 그 숙제를 계속 미루고 있다. 오늘 내 하루가 그다지 안온하지 않고, 멀지 않은 미래는 너무 암담해 보였기 때문에.


한강 작가의 남편은 2세를 위해 한 말이지만, 계절에 따라 찾아오는 맛과 향, 그 맛과 향을 다시 만날 거란 그리움이 우리를 조금 더 이 세상을 살게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딸기잼을 빵에 발라 먹으며, 제철 딸기가 돌아올 봄을 기다리고, 수박을 먹으며 여름의 더위를 한껏 껴안고, 그러다 보면 넘기 힘들어 보이는 지금 이 시간도 어느새 지나가 있을 것이다. 길게 살아보진 않았지만, 모든 어려움은 시간이 지나면 된다. 다 지나간다. 딸기잼을 끓이며 오늘의 나는 향긋하게 스쳐간다. 내년의 딸기를 다시 만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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