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함께 상처 핥기

천서란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중에서

by 고희수

퇴근길 수많은 사람들이 한 곳을 향해 간다. 몸을 지하철에 싣는다. 그 안에서 나는 붐비는 사람들 틈에서 어떻게든 몸을 웅크린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체온, 기침소리, 스치는 눈빛. 하나하나가 나에게 닿을 때마다 움찔하게 된다. 직접적으로 누군가가 나를 공격하지 않아도, 내가 그 안에서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건 아마도 나의 본능이 그 상황에 놓인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입 한 입 먹히듯 내 모든 걸 떼어가려는 듯. 초식동물이 몸을 숨기듯.


집에 도착하면 고됐던 나는 쓰러진다. 그러면 고양이가 다가와 나의 냄새를 맡는다. 발부터 옷가지 가방까지 꼼꼼하게 나는 그런 고양이의 머리와 등을 쓸어준다. 그럼 골골골 소리가 울려 퍼진다. 고양이는 이내 내가 쓸어준 곳을 핥는다. 내가 묻힌 다른 냄새와 기운을 몸에서 훑어내려고 열심히 핥는다.


고양이가 내 손을 핥는다. 내 손에 뭐가 묻었는지도 모르면서. 오전에 발랐던 핸드크림도 생각나고, 지하철에서 백 명쯤 붙잡았을 손잡이도 생각난다. 그럼 난 고양이가 내 오염까지 핥아서 소화시킬까 봐 그만 핥으라고 떠민다. 고양이는 그게 뻘쭘했는지 아닌 척하며 다시 자기 손을 핥는다.


나의 고양이는 신장염을 앓고 있다. 대부분의 나이 든 고양이들이 가지고 있는 흔한 질병이다. 그런데 나는 고양이가 왜 신장이 아파졌는지 알 것만 같다. 고양이는 하루 종일 자신을 핥는다. 손을 핥고, 그 손으로 머리를 두 번 쓸고, 손을 다시 핥는다. 다리를 핥고 발바닥을 핥고 똥구멍도 핥는다. 집에서 묻어낸 모든 오염을 핥고 핥아서 위로 넘긴다. 오염은 소화돼서 몸속을 떠돌다 신장에 고인다. 그래서 고양이는 아파지는 것 같다. 자꾸만 오염을 먹고 속에 넣고 소화할 수 없는 걸 소화시키려고 해서.


나는 옷가지도 벗지 않은 채 현관에 누워. 나에게 묻은 오염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걸 꿀떡꿀떡 삼켜서 위에 넣고 소화시킨다. 어딘가로 사라지길 간절히 바라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내 안에 넣는 수밖에 없다. 그럼 또 오늘의 불안과 걱정과 슬픔과 외로움 모두 내 몸속을 떠돌다 어딘가에 고일 것이다.


고인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 안에 고여 염증이 되거나 흉터로 남겠지. 나는 그런 상처들이 모여 내가 된다는 사실이 가장 두려웠다. 그 두려운 사실을 마주했을 때는 절망했다. 아름답고 건강한 것들이 모여 내가 되길 바랐던 날들은 더 그랬다. 흉터로 완성된 나는 실패 같았다.


신장염을 앓는 고양이를 돌보며, 살아남고 살아가는 동안 어쩔 수없이 내 몸에는 흉터가 쌓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했다. 세상에 정말 무결한 무균실 같은 인생은 없다. 작은 돌멩이에도 걸려 넘어져버린 오늘을 그저 똑같은 하루로 흘려보낸다.


밑동이 휘어진 나무는 그대로 휘어진 채 자란다. 기둥에 파인 흉터는 회복되지 않고 덮어버리는 방식으로 흉터 위에 벽을 세운다. 그건 새살이 돋아 상처가 아물어 사라지는 회복과는 다르다. 그래서 상처 입은 나무를 자르면 나이테에 흉터 자국이 혹처럼 남아 있다. 어느 시절에 받은 상처인지 보인다. 상처를 평생 품고 산다. 아물지 않은 채로.
천서란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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