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방학 <취미는 사랑> 중에서
인스타 피드를 계속 돌려본다. 연예인의 부고나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뚫었다거나 그런 소식들이 널려있다. 마트에 가면 계란이 쌓여있듯 그런 게시물은 으레 놓여있다. 계란을 살 건 아니지만 오늘은 가격이 얼마나 올랐을지 확인하는 마음처럼. 주식은 안 하지만 코스피가 얼마고, 이름도 얼굴도 초면인 연예인의 부고에 올라온 사진을 유심히 바라본다. 손가락을 넘기면 사라질 그런 뉴스들.
그러다 아는 사람이 게시물을 올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답지 않게 기르는 개나 아이 사진을 연달아 올리는 사람은 대충 넘긴다. 그러다가 연락은 뜸해졌지만 소식은 겨우 닿아있는 사람의 게시물이 올라오면 유심히 본다.
그 사람과 내가 친하게 지내던 대학생 시절에는 자산의 정도를 대놓고 티 내는 게 천박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입은 옷의 브랜드나, 알바를 하는지 안 하는지 정도로 대충 유추하곤 했다. 30대가 넘어선 지금은 자산의 정도를 티 내지 못함이 자격 미달이 되어버린 것 같다. 특별한 날에는 호텔에서 식사도 하고, 가끔은 명품도 사주고 이런 것들 말이다. 인스타에 남겨서 나의 괜찮음을 증명하는 그런 일들 말이다.
인스타를 통해 곁눈질로 그의 일상을 훔쳐본다. 오랜만에 양평으로 드라이브라는 글이 대형 카페 앞 차와 함께 찍은 사진과 올라와 있다. 차는 SUV를 모나 보다. 나는 아직 차가 없다. 매일 아침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사람들에 끼어서 겨우 출근한다는 건 굳이 티 내지 않는 사실이다. 굳이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에 올리지 않을 일이다.
한참 피드를 넘기다가 오랜만에 댓글을 남겨봤다. 역시 오랫동안 연락은 하지 않았던 누군가다. 창업을 했다고 들었다. 사무실 한편에 명함을 붙여놓은 사진을 올려놨다. 게시글에는 내 힘으로 돈벌이를 해야 하는 불안함과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버텨본다는 희망 그런 것들이 명함처럼 붙어 있다.
퇴근길에 나도 잠시 했던 생각이었다. 불경기라는데 당장 이직은 어렵고, 회사를 나와서는 뭘 할 자신은 없다. 나는 자신이 없어 머물고, 그는 자신이 없지만 떠난 사람이다. 어쩌면 조금의 질투와 응원을 담아 하트를 눌렀는지도 모르겠다. 하트를 누르고도 여운이 남아 댓글을 달아본다. 구구절절 써봐야 서로 머쓱할 테니 쓸데없는 이야기를 붙인다. '새로 판 명함 귀엽다. 나중에 만나면 한 장 줘.' 우리가 언제 만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누군가에게 꺼내지 못한 소망과 절망과 우울과 기쁨이 피드 위로 흘러간다. 나 스스로 손으로 잡아넣지 못한 감정들에 나는 표적을 매기듯 하트를 붙여본다. 사실 나중에 내가 뭘 봤는지조차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SNS 게시물로 흘러가는 내 감정들 위에 뭐라도 감상을 남겨보려고 하트를 누른다. 댓글은 남기지 않는다. 나를 팔로우한 사람이 내가 누른 걸 볼 수 있으니까.
오늘 나의 소망은 현금 2억 있으면 살 수 있는 아파트 리스트와 자기 발가락이 신기해서 오므렸다 폈다 하는 걸 바라보는 고양이 영상에 두고 왔다.
주말에는 영화관을 찾지만
어딜 가든지 음악을 듣지만
조금 비싼 카메라도 있지만
그런 걸 취미라 할 수는 없을 것 같대
좋아하는 노래 속에서 맘에 드는 대사와 장면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 흐르는 온기를 느끼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면서 물을 준 화분처럼 웃어 보이네
가을방학 <취미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