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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가 될 뻔한 통역사

일에서 정체성을 찾으시나요?

by 와사비맛 찹쌀떡


하루는 딸이 사는 자취방으로 오신 아빠가 같이 맥주를 마시자고 했다. 편의점에서 4개 10,000원짜리 맥주를 골라와서 한 캔, 두 캔을 마시더니 아빠가 웬일로 속마음을 말씀하신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지난 30여 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직장가입자로 연금을 냈는데, 은퇴하고 나서 지역가입자로 신분이 바뀌는 게 참 기분이 이상하더라. 어떻게 노는지도 모르겠고. 아침마다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게 참 감사한 거였지…


아마 지독히 한국적인 것이라 본다. 우리는 우리가 다니는 직장, 하는 일에 대해서 우리 자신을 진심으로 대입할 때가 많다. 마치 일을 통해서 내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나이에 대한 질문을 제외하고는 ‘어디 다니고 무슨 일 하세요?’가 아마 가장 첫 질문일 테고,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심지어 가족의 직업도 궁금해한다. 직업을 통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관념에서 비롯된 것일까.


나도 마찬가지로 직업과 직장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이었다. 더 나은 직장, 남들이 부러워하는 곳으로 가고 싶었고, 그럴싸해 보이는 일을 할 수 만 있다면 어디든 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직을 잘할 수 있다면 당장에 나라를 떠날 수도 있고, 나의 직장 profile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새로운 학위도 딸 마음이었다.


마음도 먹은 상태였는데 운 좋게 기회도 주어져 나는 실제로 원하던 직장으로 옮겨 원하던 일을 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는 정부대표단과 함께 해외의 저명한 고위급 인사들을 만나고 또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곳에서 근무했고, 해외에서는 프랑스 파리의 국제기구에 진출할 수 있었다.


설레던 첫 출근길


꿈에만 그리던 국제기구, 게다가 프랑스 파리라니. 영어로 일하고 월급을 달러(유로)로 받는다니. 마치 나는 이제 선진국에서, 국제기구에서, 국제사회의 목표를 위해 일하는 소위 말하는 ‘멋진’ 여성이 된 것 같았다. 그게 바로 내 identity, 정체성이라고 믿고 싶었다.



일이 곧 자신이라 여기면서도 건강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분명 많을 테지만, 나의 경우, 내가 일에 투영되는 것이 아니라 일이 나에게 대입되었다. 일은 그저 일일 뿐이라는 거,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사실 지난 설 연휴에 이런 얘기를 들었다. 미술에 재능이 있었던 내가 어릴 때 영어학원을 다니지 않았더라면, 영어에 흥미를 느끼는 날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 내가 미술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했을 거라는 아빠의 말.


고등학생 때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했던 내가 미대를 갈 수 있도록 지원해 줄 수 없다고 하셨는데, 그저 내가 영어를 계속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셨던 말이었던 건지. 어쩌면 내가 정말 디자이너가 될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결과적으로 미대는 가지 못하고 영어를 전공하여 통번역대학원을 나온 통역사가 되었지만, 내 정체성은 국제기구에서 영어로 일하며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는 통역사일 수도, 혹은 미대를 나온 자동차 디자이너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만약 내가 일을 통해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다면, 그 일은 단순하게 ‘what-직장에서 맡은 내 직책’이 아니라 ‘how-어떤 일’이라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의 일을 통해서 어떤 선한 영향력이 있고, 사회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주변 이웃을 품을 수 있는지 말할 수 있다면, 그 일은 자랑스러운 내 identity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겠지.


나에게만 ‘더 좋은, 더 나은 일’을 찾기보다는 꾸준히 지속하여 그 선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선한 일’을 감당하는 내가 되고 싶다.


우리의 직장, 직업이 삶의 전부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은 직장, 직업을 훨씬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 인턴 친구들과 함께 á Paris en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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