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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고 있습니까?

Life is what you make it

by 와사비맛 찹쌀떡


오랜만에 소식이 들려온 친척들의 근황.

어디에 취직을 했고, 승진을 했고, 아파트를 샀고 …

아이고 최고의 효도를 했네.

명절은 명절이었다.


정작 당신의 자식에 대해서는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딸인 나는 사실 아주 행복하게 지내며 치열하게 미래를 고민하며 살고 있는데, 정년이 정해진 공무원이 되고 때가 되어 진급을 하고 또래보다 일찍 아파트를 구입해서 사는 조카들의 삶을 더 효도하는 삶으로 생각하신다니.

현재에 대한 행복감과 미래를 위한 고민이라는 나의 삶의 가치는 여전히 인정하지 않으시는가 보다.


인정받기 위해 살았더라면 시작부터 다른 길로 갔을 것 같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줄 알았다. 하다 보니 성적이 잘 나왔다. 반에서, 전교에서 늘 상위권에 있었다.

그렇지만 그림 그리는 것과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던 내가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사진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의사가 되라고 하셨지만, 나에게는 문과로 진학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의사의 길과 멀어졌다.

문과로 간 이상 약사가 되라고 하셨지만, 생각만 해도 … 너무 답답했다.

약사를 거부하니 선생님이나 공무원이 되라고 하셨다.


도대체 딸이 뭘 원하는지 아시는 건지?


이제는 조금 화를 냈다. 싫다고.

한 나라에서, 한 곳에서 평생 매여있어야 하는 직업은 싫다고.


어느 날은 정치외교학과를 가겠다고 했더니 술을 드시고 집에 돌아오셔서 정치외교학과에 가면 얼마나 취업이 힘든지 토로하셨다. 3일 연속으로.

결국 영어 전공으로 합의(?)를 보게 되었다.

영어를 전공하겠다고 결정하고 나서도 사실 ‘영어는 수단’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영어를 잘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거야- 라며 내 미래를 열어두었다.





난 여전히 미래를 열어두고 지낸다.

영어 전공으로 졸업을 한 이후 현재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졌고 다양한 직장을 경험했다.

한 나라에서 한 직장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며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내 성향에도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불안한 미래지만 내가 만들어갈 수 있는 미래가 있다는 것이 더 매력적으로 여겨졌다.

내가 사는 방식이 남과 같지 않다는 것, 그것이 날 빛나게 만든다고 믿고 있다.


단지, 아빠의 인정을 받지 못할 뿐. 그뿐이다.


인정을 받으려고 살지 않았지만, 내가 지향하는 삶 -가치를 쫓는 삶-에 대해 언제쯤이면 스스로 당당해질까.


좋아하는 것을 찾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느라 결혼이 늦어지고, 삶에 변화가 자주 오다 보니 큰돈도 모으지 못했다.


나의 삶을 두고 ‘최고의 효도’를 한다는 칭찬과 인정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내 삶이 좋다.

내가 선택한 삶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 선택을 만들어 가고 있다.


Life is what you make it.


최근에 본 yosigo 전시회에서 그의 사진 작품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Yosigo를 응원하고 지지해줬던 그의 아버지.


"어떤 일의 결과가 생각대로 이뤄지지 않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본능을 믿고 따라야 한다"


그리고 사진과 사진가라는 직업에 대한 그 스스로의 태도.


“돈을 생각하지 않고 일해야 돈이 들어오는 법이라 항상 마음을 굳건히 먹어야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밀고 나가며, 멈추지 않는 것이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다만 중요한 건 정말 사진을 사랑해야 한다는 겁니다.”



유퀴즈에 출연한 수영 국가대표 황선우 선수도 수영을 정말 사랑하니까 24년 파리올림픽 대회를 위해 하고 싶은 것을 다 참고 있다고 말하더라. 20살이 되어 얼마나 하고 싶은 것이 많을지, 그럼에도 제일 사랑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수영을 위해 20살로써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미루는 선택을 했더라.



내 삶이 아직 yosigo나 황선우 선수처럼 세상의 이목을 끌지 못했지만,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이어나가다 보면 열매가 맺히리라.

그 과정에서 아빠가 답답해하실 건 죄송하지만, 열매가 나면 아빠에게 제일 먼저 자랑할 거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덧. 취직이 어려운 시대에 공무원이 된 건 대단한 일이다. 조카야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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