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의 출국.
Day 01
나는 지금 별에 둘러 쌓인 채 글을 쓰고 있다.
밤이 되어 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창 밖으로 도시의 불빛을 보여주며 ‘감탄해봐’라고 하는 것 같더니 이내 깜깜한 바다 위로 올라가 그저 먹먹한 어둠만을 보게 하며 ‘쇼’를 끝냈다.
아니, 끝났다고 생각한 건 나였을지 모른다. 진짜 쇼는 지금부터인걸.
조그만 창 옆에 앉았다. 10시간이 넘는 비행이 3년 만이기도 했고, 국제선을 타면서 창가 자리를 나의 선택으로 앉은 것은 처음이다. 이동의 자유, 다리에게 쉼을 줄 수 있는 복도 자리를 마다한 이유는, 캐나다로 넘어가면서 아름다운 설산을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한 가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뭐라고 나는 전날부터 긴장했다. 혹시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어 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최악의 상상만 하며, 그렇게 긴장으로 오히려 더 아파진 배를 참으며 국제선 밤 비행기의 window seat에 앉았다.
뭐든 첫 경험은 떨리나 보다.
국내선의 창가 자리는 수시로 앉아 보았지만, 국제선 창가는 조금 달랐다.
서울-제주를 오가며 나는 비행기 창가 자리에 앉아서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나는 지금 어디를 지나가고 있는 걸까, 열심히 랜드마크를 눈으로 찾으며 나름의 퀴즈- ‘지금 내가 떠 있는 곳은?’ -를 풀었다. 그러다 골프장으로 전락해버려 윗둥이 깎인 산을 눈으로 애도했고, 귀여운 구름 모양을 발견하면 마치 강아지 같다며 사진으로 남겼다. 밤에도 밝은 대한민국 땅은 몇 분 정도보다 보면 다 똑같은 모습으로 보였는데, 그래서 제주도에 가까워질 때면 바다에 떠 있는 별처럼 한치잡이 배들의 불빛이 반가웠다.
아래로 향했던 내 시선. 위를 바라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국제선 노선의 비행기는 더 높이 떠오르는 걸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창밖으로 빛이 보였다. 깜깜한 밤이기 때문에 경험으로 미뤄 보자면 아무것도 볼 게 없어야 한다. 도시의 불빛도 없고 아쉽게도 태평양 바다에는 한치잡이 배의 불빛도 없으니까.
그런데 빛이 보였다. 어? 한 두 개 정도의 빛이 아니었다. 비행기 날개 끝에 달려 깜빡깜빡하는 노란 조명도 아니었다. 하얀색으로 점점이 박혀 있는 것들은 바로 진짜 별이었다.
고개를 90도나 뒤로 꺾어야 온전히 감상할 수 있었던, (그마저도 맑은 날 제주도 정도 빛 공해가 없는 곳에서나 볼 수 있었던) 북두칠성이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시야를 아래로 떨구지 않아도, 정면으로 보이는 선명한 북두칠성. 그제야 난 창문에 딱 붙어 시선을 정면에서부터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와, 아니.. 이게 뭐지? 이게 다 별인가? 별이다!!! 와..!!!
내 몸이 별의 높이만큼 떠 있는 것 같았다. 내 몸을 구겨 넣은 이코노미석 좁은 창가 자리에 앉아있지만, 지금 내 머리 위로 별이 얼마나 많은지, 내 눈이 닿는 정면으로 은하수가 그대로 보이는 것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별똥별이 떨어진다. 어떤 건 수직으로 떨어지고, 어떤 건 조금 각도를 틀어 4시 방향으로 휙 꼬리를 남기며 떨어진다. 얼떨떨할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제주도의 오름과 숲길에서 삼나무에 둘러싸였을 때 느꼈던 어떠한 포근함, 안전함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공상과학 같은 지금. 나는 별을 벗 삼아 글을 쓰고 있다.
별 감상이 실컷 끝나고, 하나둘씩 별이 희미해질 때 나는 다시 시선을 옮겼다. 비행기 앞 쪽으로 아침이 오고 있었다. 밤과 낮이 바뀌는 경계를 지나고 있다. 해가 뜨는 앞 쪽 하늘의 푸르스름한 빛은 뒤쪽으로 펼쳐진 별빛 쇼의 엔딩이었다.
조그마한 창문 하나로도 별과 함께 떠 있는 느낌이었는데 조종석에 앉아 있으면 어떤 느낌일까? 정면으로 떠오르는 해를 향해 날아가는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100여 년 전 누군가의 상상으로 시작되어 만들어진 비행기에 올라타서, 별과 하늘과 구름과 해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