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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사비맛 찹쌀떡 Oct 31. 2022

몽롱한 사랑

Day 03


캐나다 캘거리에서 해가 뜨는 시간은 8시 15분.

그러나 정작 내 하루의 시작은 새벽 3시였다. 시차를 이기지 못하고 뜬 눈으로 해가 뜨기만을 바랬다. 한국과 15시간의 시차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15시간이란 숫자 만으로는 크게 체감되지 않았다. 


인천 공항에서부터 시작된 기다림. 일찍 공항에 도착한 것도 있는데 비행기가 지연된다더라. 오후 5시에 출발 예정인 비행기는 저녁 8시에 지상을 떠났고, 밤새 이동한 비행기 안에서도 나는 잠을 최대한 적게 잤다. 밴쿠버까지의 9시간 비행은 생각보다 금방 끝났지만, 캘거리로 이동하기 위한 국내선을 경유하며 1시간 30분을 더 이동했다. 몇 시간을 깨어있었는지, 피곤이 쏟아지는데 그래도 도착하자마자 바로 시차 적응을 할 수 있겠다 기대했다. 


그러나 정작 캐나다 도착 후 이틀 째인 오늘도 나는 몽롱하게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낮과 밤이 바뀐 현실, 내 몸은 변화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다. 

사람이 몽롱한 상태가 되면 어떤가?


우선 조금 화가 난다. 시차를 이기지 못하는 스스로가 ‘이거밖에 안됐어?’싶을 정도로 조금 보기 싫어진다. 젊음이 끝난 것이 증명된 것 같아 약간은 부정해 보기도 한다. 나 때는 말이야, 라며 시차도 없이 잘도 해외여행을 다니던 시절은 이제 없겠다는 증세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탓이다. 


그리고 나면 다시 조급해진다. 지금 잠을 자지 못할 경우 하루를 망칠 것 같다고 불안해한다. 눈을 감고 생각을 비워본다. 가만가만 숨을 고르고 누운 채 몸에 힘을 쫙 뺀다. 나는 지금 잠을 잔다…라고 최면을 걸려다가 그만 잡생각이 튀어나온다. 몸을 옆으로 돌려 누어 다시 시도한다. 에잇, 나도 모르게 핸드폰에 손이 가버렸다.


그리곤 체념한다. 차라리 커피라도 마셔서 몸을 일으켜볼까. 왠지 그렇게 오늘 하루만 버티면 내일부터는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희망한다.


눈은 뜨고 생각은 하지만 뭔가 뿌연 구름이 가득 끼어 판단이 느려진다. 어쩌면 평소 체력과 관련 있는 건 아닐까 짐작해본다. 하긴 내가 근래 한 두 달 운동을 좀 게을리 하긴 했지. 괜히 운동을 꾸준히 하지 않은 내 탓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60대 부모님을 유럽으로 모시고 여행하면서 힘들어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당신들의 고생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다. 내 탓이 맞는 것 같다. 잠도 안 오는데 문자라도 보내드려야겠다. 


해가 뜨면서 진짜 하루가 시작된 캘거리의 아침. 먼 곳에서 부모님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몽롱한 와중에도 나와 함께 여행하며 참고 같이 즐거워해 주던 부모님의 사랑은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분명히 보이는 것이더라. 



떠오르는 해에 반짝이는 다운타운의 고층 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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