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만에 재회한

첫사랑 이야기

by 장서율

나에게는 나름 사무친 사랑에 얽힌 사연이 있다.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설레었을 첫사랑에 관한 일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6년 동안 5번을 전학했던 나는, 그 시절에는 그게 머리카락이 빠질 정도로 힘든 일이라는 걸 몰랐다. 그랬기에 무덤덤한 척 공부하고 때로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그 시절을 버텼던 것 같다. 나라는 인간이 그렇듯,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누구라도' 견디기 힘든 시련임을 알게 되었다. 우연히 해외에서 만나 잠시 또래들보다 더 서로를 의지했던 사춘기 소년 소녀가 또 예기치 않게 헤어진 일도 그 안에는, 있었다.


태어나서 최초의 관계를 맺는다는 건 살아가면서 비슷한 관계 속에서의 자신을 포지셔닝해 가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뼈저리게 겪었던 관계 속 마찰들 가운데 내가 가장 오래 힘들어했던 건, '사랑'이었다. 그 최초의 사랑, 이라고 이름 지어도 좋을 그와의 만남은 열여섯 살 언저리였던 것 같다. 내성적이었지만 공부하고 책 읽고 글 쓰는 것도 좋아했고, 또 그만큼이나 사람이 좋아서 또래와 어울리는 걸 좋아했던 내게 단 하나의 결핍은 '엄마와의 대화' 였달까? 나는 자라면서 그녀와의 대화만큼 힘들고 막혔던 적이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아주 많이 내향적이었던 나와, 아주 많이 외향적이었던 그녀는 그냥 서로 너무도 달라서, 나는 언젠가부터 그녀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는 걸 멈추었던 것 같고, 그건 열 살이 되기 전에 일이었다.


안경 쓴 단발머리 소녀 나는, 잘생긴 배우나 만화 캐릭터에 짝사랑은 잘했지만, 실제로는 어떻게 또래 남자애들과 어울려야 할지 몰랐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 귀 쫑긋 세우고 집중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러워했던 그냥 그런 나는, 언젠가부터 친한 반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야 너, 잘생긴 H가 좋다더니 왜 J가 와서 말 시키면 그렇게 행복하게 웃어? 되게 기분 좋아 보이더라'

'음.. 그런가? 그냥 걔가 나 좋아하는 과자 줘서 그런 건데?'

'야... 너 바보냐? 돼지냐? 하하하'


그런 실없는 농담을 하던 나의 25년 지기 친구는 지금도 내게 가끔씩 그때의 순진무구했던 내 모습을 상기시켜 주곤 한다. 나는 그녀가 내게 그런 말을 해 줄 때까지, J에 대한 내 감정이 무엇인지 가닥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어 달인가 지났을 무렵, 내 인생에 하나의 큰 사건을 스스로 만들고 마는데, 그건 J에게 난 너를 좋아하니 사귀자고 선포해 버린 거였다. 그때도 나는 꽤나 내향성으로 뭉쳐 있으면서도 주도적인 인간이었던 것 같다. 그는 내게 말했다.


'너 H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날 좋아하다니 신기한데?'


나는 그때 사실 내 마음이 어떤지 잘 몰랐던 게 맞다. 하지만 그와 만나고 더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또 학교 밖에서 함께 보내다 보니 이윽고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그에게 나의 모든 것들을,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말하고 싶어 진다는 거. 그에게 나를 이해받고 싶다는 거. 엄마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그 애 앞에서는 아무런 거리낌도 걱정도 없이 술술 나온다는 거. 나는 그에게 서서히 스며들듯 폭 빠진 것 같다. 그 애는 뭐랄까. 대놓고 그런 것 같진 않지만 섬세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억했다가, 하나씩 해 주는 고마운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노란색을 좋아한다고 해서, 자기한테는 어울리지도 않는 노란색 옷을 입었고, 내가 좋아하는 남자 향수를 옷에 뿌려달라고 하면, 그렇게 했고,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를 물고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리버 피닉스를 따라 해 보기도 했었다. 그 애는 알까. 내가 그런 모습들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배시시 웃으며 바라보고, 오래도록 설레 했던 순간들을. 첫 키스를 했던 날 밤의 나는, 내 기억 속에서 멀지 않은데.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굳이 학생 할인으로 봐야 한다며 수업을 째자던 나의 도발에, 아파서 조퇴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전날 일부러 잠도 안 자고 진짜 감기에 걸려버렸던 너를. 나는 진짜로 좋아했었다. 헤어져야만 하는 순간에도, 어쩔 줄 모르던 우리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나는 아직도 앨범 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이별에 대처하는 내 자세는 참 비겁했다. 나는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한국에 들어와서도, 틈만 나면 그리운 그 애에게 긴 긴 편지를 썼다. 부치지도 못할 편지들을 쓰고 또 썼다. 하지만 국제전화를 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나는, 가끔 아직 해외에 남아있는 친구들에게 그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몇 달 뒤에, 흔한 사춘기 소년 소녀들이 그러했듯, 그는 또 다른 내 친구와 사귄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는 그 애보다도, 그 애와 사귄다는 내 친구가 더 미웠다. 흔한 시기 질투가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베이스가 되는 첫사랑에게 버림받았다, 는 느낌이 더 강했다. 더 나아가서 그와 내 관계에서 나는 '잊힌 사람' 혹은 '부정당한 존재'라는 굴레를 스스로에게 씌우고 나자, 그 이후로의 삶이 참 퍽퍽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해서도, 대학교에 가서도, 동성과의 관계는 별 문제없었지만 이성과의 관계에서는 뭐랄까, 늘 도망칠 구석을 먼저 만들어 놓고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회전문 연애'만 반복했던 건 아닐지. 그래서 나는 그 핑계로 J를 참 많이 미워했었다. 그리워하기도 했고, 궁금해하기도 했고, 저주하기도 했고, 상상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사실 용기를 내었다면, 그와 오해를 풀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그가 귀국한 어느 해, 고등학생일 때 한 번 마주친 적이 있고, 나는 그 순간의 어색함을 지금도 기억한다. 나는 분명히 그를 쏘아봤을 것이고, 거기에는 어느 정도의 원망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헤어졌다. 그 이후로 나는 괜찮은 척 살았지만, 내 마음 한편에는 그리움, 미안함, 원망, 궁금함 같은 온갖 감정들이 뭉쳐져서 하나의 고름처럼 남아 있었던 것도 있다. 완벽한 회피였다. 진짜 그에게 나란 존재가 한순간도 소중하지 않았다면 어쩌지,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나에게는 소중했던 것들이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면 어쩌지, 하는 것에 대한 공포심.


그것들이 사랑 속에서 늘 패배자인, 늘 내 안에서 원인을 찾는, 나라는 '괴물'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그는 내 sns 방명록에 찾아와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잘 지내냐고. 그때라도 솔직하게 그에게 잘 지내냐는 안부 한 번만 물었어도 지금의 우리 사이는 달라졌을까?


나는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말들을 너무도 많이 해 버렸다. 돌이켜보면 열일곱의 그 나날들에 나는 그와 사귄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아직도 살아야 할 날들이 너무 많은데, 경험할 것들도 너무 많은데, 그와 덜컥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내가. 좀 더 늦게 만났다면 좋았을 걸, 그랬다면 결혼하기 더 수월하지 않을까.. 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나는 그와 한 시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다. 우습다면 우스운 강박, 집착, 혹은, 순진무구함의 극치인 그런 첫사랑을, 나는 했었다.


그리고 다시 10여 년이 지나, 이번 여행에서 나는 우연히 그와 다시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그 시절의 친구가, 조만간 J를 만날 거라면서 혹시 같이 만나볼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아주 많은 세월이 흘렀고, 많은 경험이 쌓였기에 나는 이제는 얼굴을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그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약속 당일이 되자 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심호흡을 하면서 자리에 나갔다. 한 번은 만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를 다시 만난다는 건 나의 회피 성향을 깨부수는 일이기도 했기에, 내게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정말로 많은 시간을 뛰어넘어서 그의 앞에 앉았을 때, 그는 내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애써 담담한 척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마흔이 넘은 내가 아니라, 열일곱 그때의 내가 잠시 앉았다 간 것 같다. 그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숨 막히는 침묵의 순간을. 애써 그를 무시했던 내 모습을. 그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에게 상처를 주려했던 내 의도대로 그는 상처받았을 것이다. 내가 상처 속에서 웅크리고 살았던 동안, 그도 그렇게라도 나를 기억해 주기를, 나는 바랬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기뻤다. 기뻤다고 드러내어 이야기할 순 없지만, 그가 그런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게 기뻤다. 나에게도 그에게도, 서로가 소중한 존재였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 기뻤다. 그는 식사 시간 내내 나름의 배려를 했고, 나도 그렇게 했다. 스스럼없이 사는 이야기를 하고는 있었지만, 다시 만난 것이 반가웠고, 그리고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남의 사람이 된 그의 아이들 사진을 보며 귀엽다는 이야기를 하는 내 말들이 진심이었을까도 싶지만. 이렇게 세월이 흐르고 흘러 하나의 귀결점을 맞게 된 것에 놀랍기도 했고 반갑기도 했다. 그리고 그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던 나도 있었다. 회피의 순간에, 상처를 주었던 순간에, 나의 불행에 그의 탓을 했던 나에게, 미안했다고 사과하고 싶었지만 그런 공간과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뜻뜨미지근한 재회였다. 20여 년을 기억하고 살았지만, 허락된 단 한 시간의 만남.


우리는 그렇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감정적으로 하고 싶은 말들은 너무도 많았지만, 이제는 어른답게 자연스레 그것들을 포장해서 이야기를 했던 나를 다독이며, 마음속 하나의 산을 넘은 마음을 추스르려 오랫동안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다 들어와 일주일 동안은 계속 그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런 인연도 있구나. 스쳐 지나가지만 아주 많은 강렬함을 주었던 인연이 존재하는구나. 강렬했지만 지나고 나면 재조 차 남지 않은 인연도 있는데. 삶은 신기하고 설레는 것이구나. 그래서 아직, 살만할 가치가 있구나. 아직 어떤 인연을 만날지 모르니, 충분히 설레는 5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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