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삶의 방향성을 내 안에서 찾아야 할 때
코로나가 내게 가져온 변화들 가운데 좋았던 것은, 마흔 이전의 삶에서 받은 상처들을 돌아보고 글로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내가 하는 일의 특성상 코로나 재택근무 기간 동안에도 절대 일이 줄지는 않았지만 - 그리고 그것은 감사할 일이었지만 - 출퇴근 시간을 아끼며 고스란히 내게 남은 시간 동안 하루 한 시간은 산책을, 두 시간 정도는 글쓰기에 할애했었다. 코로나 이후의 삶으로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지금, 나는 그때 그 시간이 그립다.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었다면, 더 유용하고 값지게 썼을 자성의 시간이 그립고, 내 속에서 한가닥씩 실을 뽑아내듯 글을 쓸 때의 충만함도 그립다. 무엇보다도, 다 함께 처음 겪었던 시기였기에 서로 힘내라고 말해주던, 그 살가움이 그립다.
코로나가 엔데믹으로 마무리되고, 이제는 환자와 비환자 사이의 경계가 사라졌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전염병이 끝난 것은 아니나, 코로나로 인해 구멍 난 경제적인 것들을 메우기 위해서, 국경도 업장도 닫을 수가 없다는 걸. 락다운이 끝나고 세상이 다시 소통하면 모든 것이 다시 원위치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2020년 1분기 이전의 삶으로 가는 것은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기업들은 합병을 통해 덩치와 사업 구조를 줄여가고,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거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지갑 열기를 두려워하고, 집값은 오르거나 보합세이고, 슈퍼마켓에 가보면 세일하지 않는 상품은 사기가 꺼려진다. 외식도 취미생활도 줄여나가고 있는데 깜빡 잊고 하루 늦게 납부한 청구서에 미납세가 붙어서 짜증이 났다. 아직까지 잘 보이지는 않지만, 나에게는 느껴지는 온도. 사서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하나, 지금 내 상황만을 보면 나는 유리바닥을 하이힐 신고 걷는 기분이다. 일에서는 첨예하게 대립각이 생기고, 이상하게 내가 하는 말과 행동들은 외부에 부각이 된다. 영업의 설움일까. 내가 가진 마스크의 신뢰로움이 뒤에서 화살이 되어 꽂히는 기분이 들어 점점 말을 하기 꺼려진다. 그렇다면 내가 설 곳은 있을까? 내 직업은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로 일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무턱대고 악순환일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자가당착에 빠지지 않게 나의 마음과 정신을 바로 잡는 일이 중요하다. 나는 이미 , 외부의 사건들로 인해 송두리째 무너졌던 내 삶을 두 번이나 재건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아는 것은 힘이라던데, 그 힘듦을 겪고 나서 세 번째까지는 가고 싶지 않은 게 지금 나의 심정이라서, 예전에는 세상과 싸우기 위해 올라오던 회복 탄력성이라는 것이 영, 부서진 체력과 함께 희미하기만 하다. 눈을 감고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애써보다, 오대산 월정사에 이르러 발견했던 그 팻말의 문구가 생각이 났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지난 십이 년 정도는 어디로 가고 싶은지 모르고 버티기만 했다. 여기 이 땅에서 만 십 년, 이곳에 오기 전 이 삼 년, 어쩌면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었는지 잊었어도 내 몸이 기억을 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여기에 오고 싶다고 굳게 먹은 신념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던 듯하다. 주변이 어떠하건 간에 지금 내가 느끼는 위기는 무엇인가 바꾸고 싶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지 결정 내리지 못한 것에 있다. 그것은 또한 내가 무엇을 가장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모른다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최근 어떤 글에서도 썼듯이, 무엇을 제일 좋아하는지 모르기에 하나씩 견딜 수 없는 것들을 리스트에서 지워나갔던 나다.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사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현실적인 것들, 즉 의식주가 내 발목을 자꾸 잡는다. 혼자서여서 자유로운 것과, 혼자이기 때문에 더욱더 가지게 되는 위기의식. 마음에 드리운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것 또한 나의 마음 그 하나일 것인데.
'어디로 가야 하는가.'
생각만 하기에는 이제 너무 숨이 막혀온다. 일요일 밤은 제일 견디기 어려운 시간임이 틀림없다. 내일부터 펼쳐질 일에 대해서는 그저 맞닥트릴 수밖에 없는 직장인의 현실. 마음의 눈을 감고 일하다 보면 금세 또 다가오는 월급일과, 공과금 등 세를 내야 하는 날들. 이렇게 몇 개월만 반복하면 또 한 해가 간다. 하다못해 주말이라도 일에서 떠나 자유롭게 유영하고 싶다. 버텨보자고 다짐에 또 다짐을 하며 주말이 가는 지금. 힘을 내어보자. 지금 이 계절이 덥고 버거운 건 나 혼자만은 아니다. 목소리를 내지 않을 뿐 묵묵히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내 마음도 좀 헤아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