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원하는 것에 다가갈 수 있다
몸이 으슬거려 냉장고를 뒤져 보았더니 이사 올 때 한 움큼 사가지고 들어온 팥이 한 되 정도 남아 있었다. 내일모레가 동지라고 해서 팥죽 쑤는 방법을 물어보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얼마 전 건강 검진 결과가 깨끗했다며 신나서 말씀하셨다. 다행이다.
생각해 보면 한 해가 가는 속도가 참 빠르다. 해외에 산다는 핑계로 한 해에 엄마를 만나는 건 이 주 정도밖에 안 된다. 이율배반적이지만 아직 건강하게 계셔주는 엄마가 고맙다. 한 해의 나이를 먹는 걸까, 혼자임을 되새김질하는 걸까. 12월은 좋은 일도 가득하지만 아직 나는 우울함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니, 계절 감기처럼 돌아오는, 호르몬이 날뛰는 것 같은 우울한 기분 때문에 해야 할 일의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있어 답답하다.
일도 취미도 공부도 대인관계도, 물 흐르듯 순항 중인 오늘이 감사하다. 내려놓을 줄 알고 평범한 나날들에 안도감을 느끼지만, 불현듯 고개를 드는 우울감과 불면증은 약으로는 여전히 해결이 안 된다. 마음의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을까. 괜찮은 줄 알았었는데 오늘은 왠지 울음이 터져 나온다.
살다 보면 외로울 때도 있지.
그럴 때도 있지.
토닥토닥 소리를 내며
팥이 익어간다.
내 마음도 단단한 팥처럼 여물어가는
세밑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