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5]센스있다의 이해-지능적 배려&최후의 포션

I. 과목명: 어른의 기술

by 고임

<인간관계에서의 센스>

센스 있다는 말은 감각, 의식, 눈치 등을 이야기하며, 이는 선천적인 탤런트가 아니다. 센스는 물잔이 비지 않게 채워주는 배려이고, 올 블랙 양복에 매치한 올해의 유행 컬러인 체리 레드 립이며, 예전에 흘리듯 말한 아주 작은 것을 기억해 내 기분이 살짝 다운될 때 꺼내어 내미는 상대방의 관심이다. 또한 우회전하려는 뒷차를 위해 살짝 비켜주는 여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센스의 영역은 너무나 광범위하지만, 사람 사는 사회에는 꼭 필요하다.


나는 지금 치앙마이행 비행기 안에 있으며, 내 앞뒤 좌석에는 중년 남성 둘이 앉아 있다. 출발한 지 얼마 안 된 비행기에서 그 누구도 시트를 뒤로 젖히지 않았지만, 하필 내 앞자리의 남성은 시트를 끝까지 젖혀버렸다. 게다가 뒷자리 남성은 치앙마이까지 5시간 반 정도 걸리는 여정임에도 기내식에 맥주를 연거푸 마시며 벌써 화장실을 세 번째 다녀왔다. 시트에서 일어날 때마다 앞 좌석을 손으로 잡아당기는 통에, 내 옆자리에서 안대를 껴 각 잡고 잠을 청하려던 승객은 도통 잠들지 못한다.


'내 돈 내고 내가 먹고 움직이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행동에서 이미 그 태도를 읽을 수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사회에서 더는 이런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꾸짖어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한편으로 씁쓸하면서도, 혹시나 미래의 내 모습이 될까 봐 마음이 영 불편하다.


배려라는 것은 내가 당했을 때 불편할 일들을 뒤집어 생각하여 타인에게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꽤 높은 지능과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몸에 배어 나올 수 있다면 토익 만점이나 수능 1등급보다 훨씬 더 내 삶에(정확히는 내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 보증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타인에게 인정받고 호감을 사야 잘 살 수 있는 구조이기에, 배려는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잘 살기 위한 필수 덕목'으로 익히고 또 익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익힐 수 있을까? 내가 살면서 겪게 되는 불편함을 잘 모아두었다가, 어떻게 하면 그 불편함을 없앨 수 있을지 고민하는 마음가짐에서 시작해보면 어떨까. "내가 왜 타인을 위해 이런 수고를 해야 하는가"라는 회의감이 들지 않을 만큼 배려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아니,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이 사회에서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성과를 이루고 행복한 인간이 되려면 '필수' 조건에 가깝다.


단, 내가 엄청난 수고를 들여 남을 돕는 것만을 센스라고 하지는 않는다. 글 초입에 말한 예시들은 나에게는 단 1~2초의 찰나일 뿐이지만, 그것을 통해 상대방은 훨씬 많은 시간과 품을 아끼게 된다. 센스는 이렇듯 나에게는 별거 아니어야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센스 있다고 불리는 사람들은 매 순간 스스로와 타인에게 이로운 영향을 주며 살아가는 것이다.




<일에서의 센스>

또 다른 의미에서의 센스는 일에서의 센스다. 이것의 유무는 미래 산업의 발전으로 많은 직업이 사라졌을 때, 끝까지 살아남을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일에서의 센스에는 앞서 말한 인간관계의 센스(빠릿빠릿함이나 배려 등)도 포함되지만, 여기서는 조금 다른 의미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모든 사람이 같은 시간을 들여 같은 결과를 낼 수는 없다. 같은 수업을 들어도 이해도가 다르고, 한 배에서 태어나 같은 교육을 받아도 인성은 천차만별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두 번째 센스는 다른 단어로 표현하자면 '싹수'다. 이는 앞서 말한 센스와 달리 어떤 분야에서는 아예 제로(0)이기도 하고, 어떤 분야에서는 정점일 수도 있다. 인간 세상을 더 다양하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큰 시련을 주기도 한다.


남들과 다른 이 '한 방울'이 나를 모차르트로 만들 수도, 살리에르로 만들 수도 있다. 내가 몸담은 예술계에서 보자면, 프로 뮤지션은 방대한 지식과 기본기를 탄탄히 갖추려 부단히 노력하고 인내하는 긴 기간을 거쳐 만들어진다. 현세대는 모두가 양질의 교육을 받지만, 오히려 교육 환경이 열악했던 이전 세대에 창의적인 아티스트가 더 많이 배출된 원인이기도 할 것 같다. 예전에는 빨리 두각을 보이지 못하면 예술 활동을 유지하기 어려웠기에, 메이저든 언더그라운드든 살아남은 아티스트들은 그만큼 더 매력적이어야만 했다.


내가 발라드 드럼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스윙 재즈의 그루브를 자연스럽게 연주하는 법을 아는 것처럼, 우리는 많은 시간을 들여 기능을 연마하지만 센스는 기능과는 차이가 있다. 기능을 무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과정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떤 기술로도 건너뛸 수 없는 필수적인 단계다.


하지만 이 과정에만 매몰되어 우리가 진짜 빛을 보기 위해 필요한 예술적 알파, 즉 '센스 한 방울'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이 센스는 머리를 싸맨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며,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앉아 있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다. 다른 말로는 영감이고, 번뜩이는 충격이다. 이것은 기존 생각들의 충돌과 새로운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며, 고차원적인 시대를 살게 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소스이자 성공을 위한 최후의 포션(Potion)일 것이다.


요즘 AI 음악 작곡 프로그램을 구독하며, 내가 20대 시절 10년을 바쳐 공부한 학문이 수증기처럼 날아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작업 시간은 50분의 1로 줄었고, 결과물의 보편적 퀄리티는 상상을 초월한다. 개발자로 일하는 친구,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친구가 전하는 시장과 경제의 변화, 그리고 내가 체감하는 음악계의 혁신은 모든 산업에서 동일하게 일어날 현상이다.


이제는 어떤 사람이 더 좋은 취향과 센스를 갖느냐가 곧 경쟁력이 될 것이며, 새로운 경험을 꺼리지 말고 가능한 한 최대한 늦은 나이까지 모든 가능성과 사고력을 열어두어야 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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