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과목명: 어른의 기술
보통만 하자. 중간만 하자. 우리는 욕심나는 몇 가지를 제외하고 남은 대부분에서 보통과 중간을 추구한다. ‘보통’이라는 단어의 뜻처럼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함이라기엔, 이제 보통이라는 울타리에 들어가기가 너무 어려워져 버렸다. 평범한 회사원, 평범한 내 집 마련과 같은 경제적인 부분부터 평범한 일상까지. 보통의 하루도 쉽게 보장받을 수 없는 세상이다.
너무 빠르게 움직이고 바뀐다. 오늘의 유행이 내일의 촌스러움이 되고, 이것 또한 정상 속도라 할 수 없다. 우리는 어디까지 쫓아가야 하고, 또 어디까지 남들 눈치를 봐야 하는 걸까. ‘보통’은 결국 남들이 다 하는 것, 남들이 다 원하는 것, 남들이 다 가진 것일까?
나에게는 해외에 살고 있는 누나가 있다. 20대부터 해외에서 거주하며 지내는 누나는 얼마 전 귀국해 나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있다. “아니, 여긴 왜 이렇게 유행이 많아?” 나도 모르게 요즘 한국의 근황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누나에게 “이게 유행이래, 저런 게 유행이래”라고 말버릇처럼 이야기했나 보다.
내가 말한 국내 여러 유행 중 상당수는 한국에만, 서울에만, 특히 2030 세대에만 유행인 것들이었다. 한국에 살지 않는 누나의 시선으로는 비상식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한 것들 투성이었다. 나도 평소 굳이 유행을 좇지 않기에 그런 흐름들에 대해 꽤나 날 선 시선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국 그것도 서울에 산다는 게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럼에도 우리는 보통, 평범, 유행으로 불리는 것들을 ‘상식’이라는 칼로 잘라 속을 들여다보고, 별다른 생각 없이 남들이 좋다고 해 관심 가는 것들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중고등학교 시절, 지금 돈으로도 엄두가 안 날 만큼 비싸고 실제 국내 기후에 맞지도 않는 히말라야 등반용 노스페이스 패딩을 누구나 입던 모습부터, 자영업 유행의 상징인 대만 카스테라를 거쳐 탕후루와 두바이 초콜릿까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우리 대한민국은 더 큰 병을 앓고 있다.
한국의 그런 모습들이 누나를 지치게 하고 질리게 했다. 외국에선 남들 시선을 신경 안 써도 된단다. 내가 무슨 직업을 가졌든, 무엇을 입든, 내가 스스로 판단해 좋다고 느끼는 것들을 하면 된단다.
취미에도 유행이 있다. 정말 징글징글하고 아이러니하다. 테니스가 유행할 땐 우후죽순 실내 테니스장이 생겼다. 공 날려주는 기계와 코인 노래방처럼 시간을 제한해 연습한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엔 몇 개월을 레슨 받았지만 제대로 게임 한번 못 쳐본 사람도 꽤 있다. 다른 취미들보다 유난히 운동 관련 취미는 유행이 빠르게 움직이는 듯하다. 피트니스가 유행의 정점일 때 5층 이상 큰 건물이라면 곧장 헬스장이 들어왔고, 이후 필라테스를 거쳐 발레까지 와버렸다.
물론 이런 선택지가 없는 것보다 다양한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행동들의 시작이 그저 SNS를 통해 시작된다는 사실을 고민해 봄 직하다. ‘오운완’ 해시태그와 테니스 라켓을 구입할 때, 유행인 대열에 합류했다는 안도감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 소란스러운 유행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나서 남는 건 당근마켓 온도뿐이다.
물론 이런 시도들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찌 됐든 우리가 취미와 운동을 일상에 들여 조금이라도 건강해질 수 있다면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은 이런 취미들에 손을 댈 때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남들의 속도에 맞추려다 보면 금세 숨이 차고 질리기 마련이다. 이제 우리는 유행의 대열에 합류했다는 안도감 대신, 자신이 선택한 고요한 궤도를 묵묵히 도는 지루함을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또 한 가지 큰 병은 직업을 선택할 때 온다. 레슨을 하면서 수강생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선생님은 좋겠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잖아요”라는 말인데, 이 말은 내가 행복해 보인다는 칭찬과 동시에 자신은 직업적인 만족도가 낮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나이가 많든 적든, 나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수강생에겐 꼭 귀찮고 힘든 길이겠지만 부단히 노력해서 최대한 재미와 보람을 느끼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적극 권한다.
일에 미친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일에 미친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타인이 보기엔 일을 좋아해서 미친 건지, 일에 치여 빠져 버린 것인지 알 수 없으니 이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나도 오랜 기간 일에 미쳐서 살았던 적이 있는데,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이틀에 한 번씩 잠을 자고 하루에 14시간씩 악기 연습을 하며 지냈다. 약간의 강박이 있긴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시간 안에서는 마치 ‘진공상태’처럼 몰두한다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남들이 봤을 땐 성공에 미쳐서 잠도 안 자고 저렇게 산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그 시간들이 값지고 스스로가 재밌어서 정말 좋았다. 나이가 들어 만난 여러 사람 중 자신의 분야에 나름 자리를 잡았다는 이들을 만나 이야기해 보면 공통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어떤 성향과 느낌이 있는데, 나는 이 느낌이 저런 몰두를 통해 결과를 만들어내 본 사람들의 공통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유한한 시간을 부여받고 하루의 3분의 1은 잠을 자야 하며, 거의 모든 사람이 경제활동을 하루의 3분의 1만큼 해야 한다. 나머지 3분의 1 중 일정 시간은 이동, 세면, 식사 등에 쓰다 보면 하루 24시간 중 내가 온전히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적다. 그렇기에 일하는 시간도 최대한 행복에 가깝게 다가가야 마음의 병이 없고, 꽤 행복하고 꽤 평범한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직업이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 위상이 높은 지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진정으로 잘할 수 있고 즐거울 수 있는 곳, 내 쓰임이 정말 이로운 곳. 그런 곳이라면 어쩌면 돈이나 명예보다 최소한 나에게는 더 이상적이고 상식적인 방향 아닐까?
요즘 유행인 애니메이션 <체인소 맨>을 보면, 주인공이 사람처럼 못 살던 시기를 지나 보통 사람들처럼 지붕 있는 집 침대에 누워 자고, 아침에 일어나 빵에 잼을 발라 먹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느끼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 각자의 행복은 같은 그릇도, 같은 위치도, 같은 양도 아니다. 굳이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해 스스로를 좀먹을 필요도 없다. 모든 사람은 각자 맡은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고 있으며, 하찮고 별거 아니라 생각되는 삶 안에서도 누구나 충분히 행복감을 느낄 권리가 있다.
유행이라는 흐름에 몸을 맡기면 당장은 머릿속이 편안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흐름 끝에 도착하게 되는 곳은 결국 내가 아닌 타인의 취향뿐이다. 상식이라는 칼로 유행을 잘라 그 속을 들여다보는 일은, 어쩌면 나를 좀 더 알아가는 과정일지 모르겠다. 탕후루의 달콤함이나 유행 패딩의 안온함보다 더 중요한 건, '나는 정말 이것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는 단단함이다.
의사가 된 전교 1등 친구와 공부를 못해 의대를 못 간 친구, 아버지 장사를 물려받아 횟집을 하는 친구와 비인기 종목 선수가 되어 열심히 땀을 흘리는 친구. 우리는 서울이라는 이 화려한 병동에서, 각자 나만의 건강한 고립을 꿈꿔야 하고 또 스스로를 인정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