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집으로 가는 길
처음 인도땅을 밟았을 때 늦은 밤의 어두움과 더러운 거리, 낯선 언어는 공포였다. 그 적응의 시간을 지나 인도의 관광지를 떠돌며 호객꾼들에게 시달리며 이곳이 과연 영혼의 쉼터라고 불리는 인도가 맞나 혼란스러워하기도 했다. 요가와 명상, 석가모니, 성인과 성자, 철학자들이 넘쳐나는 인도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시끄러운 경적소리와 끊임없는 호객행위와 구걸하는 아이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북적대는 관광지 루트 북인도를 지나 콜카타 마더하우스에서의 자원봉사 할 때, 다양한 가치관과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많이 배우고 느끼고 동경하게 되었다.
자원봉사를 마치고 여행한 인도 남부는 북인도와는 전혀 다른 나라였다. 남부는 북부와는 달리 인도 부촌 지역이라 도시 전체가 깨끗하고 안전했다. 유명 관광지가 없어서 관광객이 드물었고 관광객이 없어 호객꾼과 구걸하는 아이도 없는 것 같았다. 결국 지긋지긋했던 호객꾼은 관광객들이 바로 내가 만들어낸 거였다.
남인도를 여행하는 사람이 드물어 여행자들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남인도 여행 중 단 한 명의 한국인도 만나지 못했고 가끔씩 마주치는 여행자 역시 요가나 명상을 위해 온 장기체류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넘쳐 흐르는 시간 앞에 나와의 대화를 많이 할 수밖에 없었고 그동안 보지 못한 나의 다른 색깔을 볼 수 있었다.
로마에서 로마법을 따르듯 인도에서 인도의 방식을 따르러 애썼다. 아침이면 모닝커피 대신 짜이를 마시고 맨손으로 밥을 먹었고 인도 전통 의상을 입고 인도 관광지를 누비며 길거리에서 만난 현지인과 사소한 대화를 나눴다. 물론 나는 인도 사람이 아니기에 맨손으로 밥을 계속 먹기엔 밥과 카레가 너무 뜨겁고 손가락에 냄새가 오래 남았다. 펄펄 날아다니는 밥알은 잘 집어지지도 않았고 곳곳에 흘리고 묻혔다. 하지만 그런 나의 노력에 인도 현지인들은 반겼고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 주었다.
여성으로 인도를 여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나에게 물건을 팔던 장사치가 갑자기 구애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있었고 한국에서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바이크 히치하이킹을 겁도 없이 했을 때 원나잇을 하자는 말에 줄행랑을 치기도 했다. 강매가 제대로 되지 않자 느닷없이 욕을 해대는 상인에 황당하기도 했다. 그들의 호의가 언제 돌변할지 몰라 불안했고 늘 조심하고 의심했다. 성희롱과 성추행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고 친절을 가장한 사기 행위들이 즐비했다.
인도여행이 힘들었지만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황당무계, 어이없는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곳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만남 속에서 새로운 경험과 다양한 삶의 방법을 배우기도, 마음의 평온을 얻기도 했다. 가장 큰 복병이었던 인도 열차 타기와 화장실 가기도 어찌어찌 견뎌냈다. 사실 닥치면 어떻게 서든 하게 되었다.
인도 모험담은 넘치고 넘쳤고 풀어도 풀어도 계속 나올 만큼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인도 오기 전과는 다른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안녕, 나의 신기루 같던 인도여.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었던 나의 특별한 인도 여행을 마친다.
인도를 향한 나의 여행은, 사실 현실 도피였다.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마주하기보다,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 떠났다. 그저 멀리 도망치고 싶었고, 어디든 지금 이곳이 아닌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여행을 계속하다 보니, 나의 여행은 당당히 현실을 마주하기 위한, 다시 돌아오기 위한 여정이었다.
여행은 내 안에 숨겨진 색을 끄집어냈고 생각과 경험을 타인과 나눌 수 있었다. 만남과 나눔을 통해 나는 조금은 달라지고, 조금은 더 넓어졌다.
떠나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것들, 멀어져야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거리를 둬야 들리는 속마음이 있었고, 낯선 곳에서야 더욱 선명해지는 ‘나’라는 중심이 있었다.
떠남은 결국 돌아옴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다시 돌아왔을 때, 그곳도 나도 이전과는 같지 않기에, 그 여정은 비로소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