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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루틴 Nov 23. 2020

결혼 8년차, 남친이 생겼다

발상의 전환이 쏘아올린 작은 공


결혼 8년차에 아이가 둘.


큰 애는 곧 다섯살 작은 애는 이제 곧 돌을 앞두고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듯 이쁘고, 매일 보면서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저장해서 또보고,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꽉 껴안고 물고 빨고 별 난리 쌩쇼를 해도 내 사랑을 다 표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아이들을 얻은 댓가는 혹독했다.


사랑과 배려의 실종


그것이 우리 부부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둘째는 만 한살이 다되도록 좀처럼 통잠을 잘 기세가 없고 여전히 새벽에도 세시간에 한번씩 밤수(밤중 수유)를, 그리고 한두시간에 한번씩 공갈셔틀을 요구하는, 역대급 초예민보스이다.


만 일년, 엄마인 나도 함께 통잠을 못자고 

유례없는 전염병 여파로 첫째까지 등원을 못하는 날이 많았던 애증의 2020년.


난 지칠대로 지쳤고 내 머리와 마음에 여유란 없었다.


어느 주말 아점, 평소처럼 아이들 끼니를 챙겨주고 나는 커피와 빵으로 대충 배를 채웠다.

남편은 매주 똑같은 패턴으로, 라면을 달걀 하나를 꺼내서 끓이려는 채비를 하고 있길래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건낸 것이 화근이었다.


"오빤 참 라면 좋아해~ 맨날 먹어도 안질리나봐"



"나 라면 좋아서 먹는거 아니야"(정색정색 ㄱ정색)


두둥.

그날로 1주일 동안 남편도 나도 서로 대화를 하지 않았다.


'애가 둘인데 내가 어떻게 자기까지 챙겨줘'


그러다 갑자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맞다. 애들 아빠이기 훨씬 전에는 내 남친이었지.

집에서 퍼질러 있다가도 만나기 전엔 예쁘게 단장하고, 섭섭해서 눈물을 보일지언정 소리지르고 화내고 (욕하고) 그런 사이 아니었잖아.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만

갑자기 그런 발상의 전환이 "된('한' 아님)" 순간부터 사랑이 생기고 설레고 남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남친이 퇴근하기 전 아이들과 잠자리에 들게되면 남친 자라고 작은방에 이불도 펴주고 난방도 올려주고.

저녁먹고왔는지 물어봐주고 안먹었다고 하면 있는 반찬이라도 꺼내서 차려주고.


조금은 남처럼, 일주일간 냉전하며 거리두기를 실천하니 남친이 생긴 것이다.


어느새 가족이 된 남친이 너무나 익숙해서

사랑했던 과거를 잊고 살았다.

마치 직장 동료(중에서도 진짜 안친한) 처럼, 가끔 싸울땐 피를 나눈 친형제가 싸우듯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이겨먹으려고 애썼던것 같다.


아 내가 왜 그랬지. . .


아무튼 남친이 생겼고, 남친처럼 대하니 남친도 나를 여친대하듯 배려해주는게 느껴졌다.

누가 먼저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끝에 어떤 모습인지가 더 중요한 거였는데.


남친에게 챙겨주는 빼빼로


이제라도 느꼈으니 잊지않고 살기 위해 오늘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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