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노력을 해보고 싶다고? 너 그게 얼마나 이기적인 말인지 알고 하는 말이야?"
이렇게 바로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일단은 삼키고 '왜? 왜 다시 노력을 해보고 싶은 거야?'라고 물었다. 말은 최대한 차분히 했지만 눈빛으로는 이미 그 사람을 쏘아붙이고 있었다.
그 일들을 저질러 놓고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에 대한 경멸과, 그 말 한마디로 쉽지 않았던 이혼 결정을 번복하려는 그의 의도에 대한 불신이 담긴 눈빛이었다.
그가 나에게 이혼을 통보하고, 정리할 것들이 많아 약 두 달 후 가정법원으로 향해 이혼 신청을 했고, 6주 간의 숙려기간이 다음 주면 끝나려던 참이었다. 단 일주일 후면, 협의이혼확정서를 받아 들고 곧장 구청으로 가 신고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초봄에 그는 이혼 통보를 했고, 이제 매미들이 왱왱 울어대는 여름 중반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들을 지금의 말 한마디로 번복하겠다니 괘씸했다.
남편은 본인만의 논리의 빠져 휘황찬란하게 말을 늘어놓을 때가 있는데, 이 날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진중했고 차분했다. 휘황찬란이란, '행동이 온당하지 못하고 못된 꾀가 많아서 야단스럽기만 하고 믿을 수 없음'이라는 뜻인데, 한 마디로 주둥이만 살았다는 뜻이다.
남편은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상담센터 간판이 눈에 들어왔는데 본인도 모르게 이끌리듯 상담센터 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당일 상담은 불가해 예약을 해두고 그곳에서 상담을 받았다고도 했다.
숙려기간 중에도 싸워댔는데, 그 당시 내가 남편에게 쏘아붙인 말들을 메모장에 적어 상담을 받았다고 했다.
"내가 우리를 위해 전문성 없어 바꾸자고 했던 그 상담사, 네가 그렇게 옹호했던 그 상담사는, 너에 대해 '남편은 남편만의 이상한 괘변이 있어요. 말은 잘하는 것처럼 들리나 사람과 소통하는 방식을 모르고 일방적이에요. TCI 등 검사결과를 보면, 사회성이 낮고 한마디로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기 힘든 사람이라 결혼상대로는 힘든 사람이 맞아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지왜곡이 있고요. 어린 시절 가정에서 배워야 하는 기본적인 가정교육이 안되어서 배우질 못해서 그래요'라고 나에게 말했어! 제발 너는 하나도 잘못이 없고 문제가 없다는 생각 좀 버리고 말을 해!"
나는 이혼이 결정되는 순간까지도 남편에게 이런 결정적인 비난은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원만한 이혼'이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마디로 '좋게 좋게,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생각을 했다. 남편이 요구하는 돈을 맞춰주고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이 지옥 같은 협의이혼 과정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의 정도를 넘어선 억지스러운 협의이혼 조건에 내가 동의하지 않자, 그는 '너는 요즘 개랑 시간을 많이 보내더니 네가 개 같이 됐니?'라며 '너는 남이고 나랑 이혼할 사람인데 내가 왜 너를 사람 취급하니?' 등등 정말 입에 담기에도 창피한 온갖 말들을 쏟아댔다. 참고로 그 '개'는 남편이 입양하고 싶어 했고, 그 끝에 가족이 된 우리의 '개'였다.
이때 알았다. '아, 저 사람은 나한테 눈곱만큼의 예의도 지키며 끝낼 생각이 없구나. 끝까지 자기 밥그릇에만 관심이 있구나. 한 때 결혼까지 했던 사람에 대한 존중 같은 건 지킬 줄 모르는 사람이구나.'
그때였다. 내가 폭주하기 시작했던 것이. 남편에게 하지 않았던 말들을 속 시원하게 했다.
인간관계에서 보통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다른 사람에게 안 좋은 말을 해대면, 마음이 헛헛해지고 후회만 남기 마련인데, 남편에게 할 말을 다 했던 이 때는 이상하게 속이 정말 시원하기만 했다.
결국은 이때 내가 폭주해서 했던 말들이 남편의 정곡을 찌른 것이다. 그제야 남편은 '나도 문제가 있나?'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씨앗이 커지고 커져, 남편을 상담센터로 이끌었다.
"사실 우리의 부부상담을 해줬던 그 상담사는, 나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고, 너한테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나에게 말을 했어. 그런데 뒤에서 너한테는 내 문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을 줄 몰랐어."
"..."
"결혼생활 동안 내가 자존심을 너무 많이 부린 것 같아. 그리고 돈에 너무 집착했던 것 같아. 너에게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했어. 나한테 문제가 있다면 꾸준히 개인상담을 받으면서 고쳐나가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