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때 남편의 진심 어린 사과, 그리고 다시 노력해 보겠다는 다짐과 의지를 들으니 황당하여 얼빠진 사람처럼 멍해졌다.
그의 용기와 진솔함은 높이 사지만, 두 팔 벌려 환영하며,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지금이라도 같이 노력해 보자.'라고 쉽게 말할 수가 없었다.
인생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다음 주면 정말 '끝'이 날 참이었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로켓발사 10초 전이었다.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고,
'10(십)'
'9(구)'
'8(팔)'
'7(칠)'
그리고 '6(유욱!)' 하는 순간, '잠깐! 잠깐만!'을 외친 것이다. 여기서 그대로 로켓 발사를 해야 할지, 아니면 그만둬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어렵다. 역시 인생은 예측불가한 일과, 그때마다 내 선택의 연속이다.
누구도 내 인생의 답을 대신 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생각에 빠졌다. 커뮤니티에 물어본다고, 의사나 상담사에게 물어본다고, 친구나 가족에게 물어본다고 될 일이 아니라 내 안에서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혔다.
로켓 발사를 그만뒀을 때, 그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브레이크를 걸었지만, '아니, 지금은 너무 늦었어. 나는 여기까지 와서 다시 돌아가는 건 못할 것 같아.'라고 손을 흔들며, 그와의 인연을 끝내고 내가 지금까지 준비해 온 돌싱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그대로 밀고 붙여 살아나갈지, 아니면 상대방을 한 번 더 믿고 나도 같이 이 사람과의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 뛰어들어 노력할지, 온전히 나의 선택이었다.
이혼 번복을 앞에 두자니, 여러 고민이 들었고, 그 고민들에 대해 답을 내리기도 어려웠다.
그는 몇 주간의 숙려기간 동안 그가 느낀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의 이야기에 경청을 하면서도, 나의 머릿속은 다음과 같은 생각들로 바빴다.
먼저
마음 맞는 인연을 만나 결혼까지 골인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이혼을 하는 건 정말이지 어렵다.
결혼과 이혼이라는 인생의 어려운 관문들을 겨우 넘었는데, ‘다시 돌아갈 결심’을 하는 것 역시 어려울 수밖에 없다.
'돌싱'이나 '이혼 협의'는 <돌싱글즈>나 <결혼지옥>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쉽게 접하고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이고, '요즘 이혼은 흠도 아니래'라고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정작 한 명의 인생을 놓고 보면, 아니 '내 인생'이라고 대입하고 생각해보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부부싸움을 했을때 많은 사람들이, '정말 이 사람하고는 못 살겠어', '이혼하고 싶어'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발을 땅에 붙인채 현실에서 실행으로 옮기는 일은 정말이지 어렵다.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 서로에게 안전기지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 모두가 이유는 다르겠지만, 각자의 이유에 부합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결혼을 결심하기 마련이다. 나 혼자만 이런 마음이어서 결혼이 이루어질 수 없기에, 상대방도 나와 같은 마음이어야 한다.
이렇게 어려운 일이 결혼이다.
그런데 결혼생활은 또 다른 일인데, 이 역시 마음이 맞아야 한다. 한쪽만 결혼생활을 유지해 보겠다고 노력하면 유지되지 않는다. 함께 해야 한다. 주파수도 맞춰야 하고 말이다.
안타깝지만 이혼도 함께 하는 일이다.
물론 일방적인 귀책사유로 소송을 통해 이혼이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혼이라는 결론에 함께 다다르고 서로가 동의를 하기 위해서 각자의 마음에는 폭풍이 몇 번이고 휘몰아친다.
이렇게 어려운 고비를 넘어왔는데, 다시 돌아가자는 말에 ‘그러자’는 말이 내 입에서 쉽게 나올 리가!
이에 이어서
‘과연 다시 노력한다고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과 비슷하다. 우리가 이혼의 문턱까지 왔다는 것은, 해 볼 수 있는 것을 다했고, 더 이상 노력을 하다가는 정말 죽어버릴 것 같이 깜깜하고, 우리의 신뢰는 바닥이 났으며, 부부간의 존중은커녕, 아예 모르는 길 가는 행인과의 관계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초반에 대화를 시도했고, 부부 관련 영상과 책을 보며 서로 속이야기를 터놓기도 했고, 갈등을 풀어가 보기도 하고, 각자의 시간을 가져보기도 하고, 남편의 각방 통보에 수긍해보기도 하고, 갖가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노력들을 했다.
임계점을 지났을 때는,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약도 처방받았고, 개인상담도 받고, 남편과 함께 부부상담도 받았으나, 결론은 헤어짐이었다.
이미 우리에게는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본인 잘못을 인정하지 않던 남편이 인정하고 노력을 해보겠다고 하는 변수가 생겼으니, 결말이 달라질지도 모른다고 여겨야 할까, 머리가 복잡했다.
덧붙여...
솔직히, 다시 상처받을까 두렵다.
남편이 무슨 이야기를 했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시시콜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 역시도 마냥 피해자이고, 결점 한 점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그와의 이혼이라는 목적 지점까지 가는 길은 장기간의 고통과 슬픔을 몇 개월로 압축한 것처럼 밀도 높게 다가왔었기에, 두려웠다.
나의 어디를 건드리면 아픈지 잘 아는 사람이 난도질하는 것은 타격이 크고,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할 만큼 소중했던 사람의 화살은 나를 더 깊게 후벼 파기 마련이다.
회사에서 빌런 상사가 해대는 말은 퇴근하고 시원하게 욕을 해대면 가시기도 하고, 어디선가 진상을 만나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더라도, 오히려 제삼자이기 때문에 별 타격 없이 넘어가기도 하지만, 신뢰가 높았던 만큼 배신감도 크고 상처도 더 깊은 법이다.
그리고 협의 과정은 유치하고 옹졸했다.
‘나는 매우 성숙한 이혼을 했다.’라고 꾸며볼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치졸하기 짝이 없었다. 돈을 나누는 과정에서, 그는 신혼여행에서 본인이 몇 십만 원 더 쓴 것 같다며 그것도 내놓으라고 하는 등의 레퍼토리가 줄을 이어, 변호사 두 명에게 상담을 받았고, 상담받은 내용을 알려주자 그제야 진정을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나에게 이혼 통보한 다음 날, 한때는 장인어른이었던 우리 부모님에게도 문자 몇 줄로 이혼을 통보했던 일 등은 약과에 속하기 때문에, 다시 상처받을까 두려웠다.
그에게 마음을 다시 열었다가, 다시 돌변하는 그를 또 마주치게 된다면, 나는 버텨낼 힘이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다시 노력해보고 싶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가는 남편의 마주편에 앉은 나는, 그의 말에 귀기울이면서도, 이런 생각들로 복잡했다.
남편에게 답변을 하기 전에, 나 자신에게 먼저 질문해야 할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이 끝났는지, 정적이 흘렀고, 나도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미안하다고 사과해줘서 고마워. 너의 마음들을 용기내서 이야기해준 것도 고맙고. 근데, 너무 멀리 온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