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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웰제이드 Sep 24. 2024

유럽여행을 다녀오다.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그래서 그동안 글을 업로드하지 못했다.)


  남편과 가정법원에 다녀온 후, 그리고 남편이 숙려기간 끝나기 전 다시 잘해보고 싶다고 말하기 전, 그 사이 언젠가, 유럽여행을 떠나기 위한 비행기표를 샀다. 사회초년생 때부터 항상 회사 일이 바빴고, 연차를 많이 쓰기 어려운 환경이었기에, 유럽여행은 퇴사하고나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추석연휴도 있고, 추석에 가야 할 친정이나 시가가 없어졌으니, 온전히 나를 위해 쓰기로 했다. 연차를 끌어모아 약 2주간의 시간을 만들었다. 심지어, 돈도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게 되었다. 야호!


  혼자 떠나는 유럽 여행이라니, 오랜만에 홀로서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비행기표를 사고, 숙소를 한창 예약하던 그 당시에는 싱글라이프도 준비하고 있었기에, 여행은 싱글로서의 삶의 좋은 출발이 되어줄 것 같았다.

  내 예상과 달리, 결과적으로, 싱글라이프의 출발이 아니라, 남편과의 관계회복 중 쉼표가 되어주긴 했다. (삶은 내 계획대로만 되는 건 정말로 없다. 하하.)


  반려견은 내가 해외에 떠나 있는 동안, 부모님과 동생들이 살고 있는 본가에서 지내도록 하기 위해, 사전에 부모님 집에 자주 들르며, 강아지와 나의 가족들이 친해지고 가까워질 수 있도록 했는데, 남편이 강아지 육아를 전담하게 되었고,

  공항까지는 자차로 이동하기 위해 공항터미널 주차장을 사전 예약해 두었는데, 남편이 공항까지 데려다 주어 주차 예약을 취소했다.

  여행지를 다니며, 남편에게 선물해 줄 기념품을 고민했고, 여행 중 혼자 생각 정리할 여유가 생기면, 아무래도 남편과의 관계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행 중 몇 번은 동행을 구해 여행 일정 일부를 함께했는데, '여자 동행만 구하고 있다'는 사람에게만 연락을 취했다.


  2주간의 유럽여행은, 직장인에게는 긴 시간일 수도 있지만, 내 인생을 통틀어보면 짧은 시간일 수도 있는데, 많은 생각과 감상, 느낌, 깨달음, 경험 등을 주었다. (여행이라는 경험이 준 깨달음은 나중에 모아 모아 따로 글을 써보기로 한다.) 관광이 아니라 여행을 하고 싶어, 일정을 여유롭게 짰는데도 매일 1만 5 천보는 걸은 탓에 튼튼해진 종아리 근육과, 피곤함으로 눈밑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은 덤으로 얻었다.


​  여행을 하며,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잠깐이나마 나눌 기회가 여러번 있었는데, 사람마다 여행을 하는 이유가 참 다르다.

​  20대 시절, 배낭여행을 했는데, 특정한 하나의 나라와 사랑에 빠지게 되어, 그 나라만 세 번째 여행 중이라는 사람,​  최근 남편과 이혼하고 위자료를 받아 여행을 왔다는 사람, ​  안정적인 직장에 매너리즘을 느끼고 더 성장하기 위해 근처 국가에 공부를 하러 왔다가 잠시 휴가를 보내러 온 사람, ​  다년간의 사회생활을 하다가, 도피하듯 워킹 홀리데이를 하러 왔다는 사람, ​  전문의가 되기까지 딱 1년의 수련기간이 남았는데, 사상초유의 전문의 사태로 의도치 않게 할 일이 없어져 여행을 왔다는 사람,


​  그리고 나, 이혼의 아픔을 이겨갈때쯤, 다시 싱글라이프로 돌아가기 전 홀로서기의 시작점으로 여행을 선택한 사람.


​  여행을 하며, 느낀점 중 하나는 '내가 좋은 것 많이 보고, 좋은 것 많이 먹으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데, 이것을 공유하고 나눌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이 참 중요하다'였다.


  딱히 외롭다는 감정이 들지는 않았기에, '혼자이기에 오는 외로움 때문에 남편의 소중함을 알았다' 같은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  그리고 내 곁에서 좋은 경험을 공유할 그 사람이, 반드시 애인이나 남편일 필요도 없다. 친구, 지인, 가족일 수도 있다.  ​  그렇기에 나는 결혼을 했고, 이혼은 번복되었고, 남편과의 관계를 위해 노력하기로 마음을 정했으니, 남편과 멀리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고급 레스토랑에 가지 않더라도, 집에서, 동네에서, 같은 경험을 함께 공유하며 좋은 추억들을 하나하나 다시 쌓아나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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