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나만의 여행을 한다.

by 고잉웰제이드


파주에는 특별한 장소가 있다. 바로 <라이브러리 스테이, 지지향>. 이곳은 '지혜의 숲' 도서관을 24시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숙소로, 나만의 시간, 나만의 속도로 여행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처음 이곳을 선택한 것은 한 해의 끝자락, 12월 31일이었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나는 조용히 지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올 해에 대한 기대감을 품으며 이곳을 찾았다. 평화로운 도서관에서 다른 이들과 한 공간을 공유하며, 각자 자신만의 책에 몰두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완벽한 여행이었다. 이렇게 나만의 취향과 성향에 맞는 여행을 몇 차례 경험하면서, 나는 내 여행 방식에 대해 확신을 가졌다. 이제 나는, 그저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여행을 떠나면 된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또 다른 한번은, 안성의 에어비앤비 여성 전용 숙소로 향했다. 숙소의 호스트는 간략한 자기소개를 남겨놓았다.

“안성에 살고 있는 58세 여성입니다. 주택 인테리어와 정원 가꾸기, 보태니컬 그림 그리기를 취미로 삼고 있습니다. 집이 크고 여유로운 방이 남아 에어비앤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삶이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집은 단독주택형 구조여서 여성 전용으로만 운영됩니다.”


12월 30일, 나는 이 숙소에서 2박 3일을 보내기로 예약하고 1월 1일 아침을 이곳에서 맞이할 계획이었다. 늦은 저녁에 도착했고, 호스트는 나를 맞아주었다. 그 숙소에서의 첫인상은 기대 이상이었다. 사진으로 본 숙소보다 실물이 훨씬 더 멋졌고, 그녀의 라이프 스타일, 취향, 가치관 등이 고스란히 드러난 공간이었다. 고풍스럽지만 촌스럽지 않은 가구들, 곳곳에 걸려 있는 직접 그린 보태니컬 그림들, 조명이 비추는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이 집에 대한 상상력이 발동됐고, 그녀가 어떤 사람일지도 자연스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내가 묵게 된 방은 집의 꼭대기 3층, 박공지붕 아래 있었다. 방은 깔끔하고 따뜻했으며, 어린 시절 할머니 집에 있던 흔들의자가 있었는데, 할머니 집에서 느꼈던 편안함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책장에는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고, 그 중 몇 권은 내가 읽고 싶었던 책들이었다.


거실과 부엌 등 공용공간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가니, 호스트는 ‘와인 한 잔 하면서, 영화 보고 있었는데 같이 볼래요?’라고 말을 건넸는데, 뜻밖의 제안이었지만 그 순간이 마음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생각했다. ‘이보다 더 잘 잘수는 없을 거야.’ 정말 편안한 숙면을 취한 후, 조식을 제공한다는 호스트의 말에 1층 식탁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나는 먼저 말을 꺼냈다.

“저 정말 잘 잤어요. 이보다 숙면을 취할 수는 없겠다 싶을 정도로요.”

호스트는 아무렴 그랬을거라는 듯이, 설명을 해주었다.

“온도와 습도를 맞추면 잠이 잘 와요. 아파트는 대부분 건조할 수밖에 없는데, 저는 온도를 춥지 않게 유지하면서 건조하지 않도록 해요.”

그러면서 벽에 걸려있는 온도습도계를 가르켰다. 그 말을 나는 기억해두었다가, 여행 이후, 집에 돌아가자마자 온도습도계를 샀다. 그리고는 그녀의 삶의 지혜를 따라하는 시도를 나의 삶에 옮겼다.


호스트가 제공한 아침은 완벽한 채식 식단이었다. 바게트와 함께 처음 보는 채소들이 담긴 샐러드.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아침, 같이 안 드세요?’라고 여쭤보니, ‘저는 아침에 따뜻한 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이 있어요. 물을 마시고 나면, 나중에 아침을 먹죠.’라고 답했다. 그 이후, 나는 그녀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그녀는 빵을 뜯을 때 생기는 작은 빵가루를 개의치 않고, ‘북북’ 찢어주며 말했다.

“편하게 먹고, 빵가루는 청소기로 치우면 돼요.”


자연스럽게 이어진 대화에서 나는 그녀의 삶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녀가 돌봐주는 길고양이 이야기, 여성 전용 에어비앤비를 시작한 이유, 커리어우먼으로 살다가 퇴직 후 그녀만의 사업을 한 이야기까지.

2박 3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그 따뜻한 대화들은 내 마음에 남았다.


오후 내내는 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서로 읽고 있던 책을 바꿔 읽기도 하고, 중간중간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에어비앤비 소개에 있던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길지 않은 2박 3일 이었지만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나도 그녀처럼 노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이야기가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상상해보았다.


관광지나 유명한 맛집을 찾지 않아도, 그 공간에 머물며 책을 읽고 밥을 해먹고, 대화를 나누며 나만의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그녀가 꾸민 공간, 그녀의 인생 이야기, 그리고 그 숙소에 방문한 다른 투숙객들을 만난 것 그 자체로 나에게 최고의 여행이었다. 이렇게 나만을 위한, 진정한 여행을 하는 것의 행복을 알아갔다.

화, 금, 일 연재
이전 01화'나만의 여행' 하는 재미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