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여행' 하는 재미를 알았다.

by 고잉웰제이드


몇 년 전, 제주도에서 보낸 일정은 특별했다. 한 번은 친구들과, 한 번은 가족과, 한 번은 남자친구와. 제주도는 총 다섯 번도 넘게 자주 간 여행지였지만, 이번에는 이전과 달랐다. 처음으로 혼자 가게 된 제주도 여행이었다.

출장으로 시작된 여행이었지만, 나는 평일 출장 일정 이후,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또 다른 2박 3일을 홀로 여행하기로 결심했다. 제주도 관광지의 번잡한 지역을 벗어나, 협재해수욕장 근처의 조용한 숙소에 묵으며 그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 선택이, 나에게는 그 어떤 여행보다도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바다를 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한 아저씨가 길가에서 귤 한 주먹을 내게 건넸다. 그때야 용달차 짐칸에 가득 실린 귤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 귤 좀 가져가요.”

평생 서울사람이었던 나는 그 투박하지만 정감 가는 말에 조금 당황했지만, 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또 한 주먹의 귤을 손에 쥐어 주었다.

“한 번만 주면, 정이 없으니께, 한 번 더 가져가요.”

그의 말은 아무런 꾸밈이 없었고, 자연스럽고 진심이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그 귤 한 주먹이 내 마음에 큰 따뜻함을 불러일으킨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본 ‘정’이었다.


최근 제주도로 이민을 간 언니에게 들은 말이 떠오른다.

"제주도에서 귤은 그냥 나는 거야."

겨울마다 귤이 어디선가 자꾸 나타나 집에 가득 쌓인다는 그 말은, 제주도의 사람들 간의 정을 상징하는 듯했다. 언니는 그 말과 함께 나에게도 귤 한 박스를 보내주었는데, 그 귤을 깔 때마다 길가에서 귤을 건넸던 제주도의 중년 남성이 떠오른다.


그날 저녁, 근처 맛집에서 회덮밥을 먹고 곧장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아쉬워 한 맥주집으로 향했다. 제주도의 밤바다가 보이는 야외 펍은 작은 모닥불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여행을 온 신혼부부, 상주하는 개, 그리고 단골손님들이 모두 한데 어울려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어요?"

나는 ‘서울에서 왔어요. 출장 왔다가 주말에 여행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 사람은 제주도민이었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나도 서울에 딸이 있는데, 괜히 보고 싶네요."


여행을 하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모르는 사람에게 더 진솔한 이야기가 나오는 때. 그 사람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테니, 비밀을 털어놓는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 사람도 그런 날이었을까? 그는 어느새 내게 자신의 이야기들을 술술 털어놓았다.

나는 이제 30대가 되어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경계하게 되었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두려움 없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의 눈에 비친 슬픔은 나를 아프게 했고, 나는 그가 필요로 하는 위로의 말을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시간이 지나면, 부모 자식 간에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알게 되는 때가 오지 않을까요?"

그저, 입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은 슬퍼 보이는 그에게 어설픈 조언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저 그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만이 전달되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맥주잔이 바닥을 드러내었을 때, 나는 자리를 떠났고, 다음 날 서울로 돌아갔다. 다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여행의 감정은 잊히지 않았다. 결국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지 보다 ‘사람’이었다.

협재해수욕장 근처의 소품샵에서 반나절을 보내고, 저녁노을을 보며 식사를 하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비우는 시간이 나에게 큰 만족을 주었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불러일으킨 감정은 나의 마음 한 구석에 깊이 새겨졌다. 그들이 나에게 준 따뜻한 감정들이 내 여행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었음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가는 맛집이나 감성 카페, 관광지에 가지 않더라도 나는 나만의 여행을 즐기는 방법을 배웠다. 여행은 그저 특정 장소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난 사람들과의 순간들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