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지만 큰 믿음_feat.치와와(리스본, 포르투갈)

by 고잉웰제이드


나는 빡빡하지 않은 여유로운 여행을 추구하는 편이라, 하루 동안 갈만한 곳 몇 군데만 추려 놓는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틈에 눈에 띄는 가게가 있으면 구경하고, 공원 벤치에 가만히 앉아 머물다 가기 위해서다. 내가 평소에 빡빡한 사람이라 여행에서만큼은 계획을 줄이고 그 순간을 오롯이 느끼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를 리조트 안에 스스로 넣어놓지 않고는, 여유로운 여행에 실패하는 경우도 꽤 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의 둘째 날이 그런 날이었다. 분명 리스본에서 꼭 가봐야 하는 벨렝지구 정도 들리고 저녁에는 타임아웃마켓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 날의 결과만 놓고 보면 마치 1분도 허투루 보내지 않은 것 같다.


7:30 한인 민박집 조식 제공 전, 숙소 근처 에두아르 두 7세 공원 산책

10:00 제로니무스 수도원 관람

11:40 1837년에 문을 연 나타 맛집에서 커피

12:30 벨렝지구(발견기념비, 벨렝탑) 걷기

13:30 LX팩토리 쇼핑과 점심

15:00 솔 광장, 상 페드루 드 알칸타 라 전망대

16:00 리스본 대성당

17:00 타임아웃마켓 저녁

19:30 숙소에서 기절 같은 취침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둘러본 뒤, 나타(에그타르트) 맛집까지 들렀으니, 마음도 배도 체력도 제법 채워졌다.벨렝지구로 건너가기 위해 지하통로를 이용할 때였다. 낮 12시가 넘자 햇볕이 꽤 뜨거워졌는데,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자 곧바로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와닿았다. 긴 통로를 따라 걷는 사이, 멀리서부터 아코디언 소리가 점점 다가왔다.


파란색 바지에 회색 후드티를 입은 젊은 남자가 빨간색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는 연주에 능숙했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의식하기보다는 자신의 음악에 몰입해 있는 듯했다. 그의 앞에는 갈색 치와와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낮은 의자 위에 담요를 덮어 깔고, 그 위에 조그마한 동전 바구니를 입에 물고 있는 개.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걸음을 멈췄다.


이상하게도 그 개에겐 위풍당당한 기운이 있었다. 작았지만 기죽지 않았고, 무언가를 지키고 있는 듯했다. '역시 도베르만의 영혼이 들어있다는 치와와라 그런가.'


지나가던 한 행인이 동전을 넣으려 했는데, 바구니가 작아서인지 동전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러자 치와와는 마치 그 순간을 경계하듯 '월! 월! 월!' 짧게 짖었고, 연주자는 개를 다독이며 '착하지, 괜찮아'하는 손길로 쓰다듬었다. 그 순간만큼은 치와와가 꽤 듬직해 보였다.


‘나는 누구와 묵묵히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질문은 ‘'나'’는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을까?’라고 '나'에다가 방점을 찍어, 과연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자문해 보는 질문이었다. 동시에 ‘나는 ‘누구’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나를 솔직하게 보여주고 서로 기댈 용기가 있는지.


그다음 목적지로 가기 전, 뜨거운 햇살을 피해 들어간 지하 통로, 빨간색 아코디언, 그리고 커다란 눈으로 용맹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작지만 씩씩한 개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꽤나 선명하다. 별 말 없던 그 둘은, 아마 서로를 누구보다 믿고 의지했을 것이다. 그리고 특별한 설명과 첨언 없이 서로에 대한 조용한 신뢰가 여행 중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로 내게 남았다.




화,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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