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넘어 고작 그림일기 씁니다
댄서 언니가 9월 개강을 앞두고
학교 가까운 곳으로 집을 구해 나갔다
몇 년을 용인 집에서 회기동으로
새벽에 나가서, 새벽에 연습이 끝나면
잘 곳도 없어 고생하던 댄서 언니가
결국 오늘 방을 구해 나갔다
방은 싱글 침대와 손바닥만 한 화장실,
두 명이 같이 서 있기도 좁은 방이었다
긴 복도에 이런 방이 수십 개 있고
복도 쪽으로 작은 쪽창이 나있었다
차에서 필요한 것들을 이것저것 챙겨
양손 가득 들고 3층 방으로 올라오니
최 여사는 말없이 집에서 가져온
침대 시트를 갈아주고 있었다
저렇게 비좁은 곳에
댄서 언니를 두고 돌아오는 길은
너무 미안하고 괴로웠다
아빠가 좀 더 좋은 집을
얻어줄 수 없어서 미안한데,
우리 형편을 알고 저런 곳을 골라
들어가겠다고 한 댄서 언니에게
더 더 미안했다
1994년,
서울에 취직해서 차병원 사거리 뒤에
작은 반지하 방을 계약할 때 나의 아버지가
"아부지가 이런데 밖에 얻어줄 수 없어 미안하데이"
라고 하시던 말씀이 어떤 미안함인지
지금 내가 내 딸에게 하고 있다
독립은
독립을 해 나가는 자녀나
독립을 시켜 주는 부모나
독립은 힘들다
<독립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