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슬픔은 나의 행복
https://brunch.co.kr/@gojeme/66
중국의 기억
대학 입시를 위해 학원을 다니던 시절에 재밌게 열광하며 세계사 수업을 들었다. 특히 그 당시 수교한 지 얼마 안 되었던지라, 단순한 공산당의 중공으로만 알았고, 무협소설로만 접했던, 알던 것은 소림사와 개방 무당 아미 밖에 없고 지역으로는 북경보다는 개봉이나 장안 그리고 항주 소주에 더 익숙했던지라 근 현대 중국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교사의 강의에 매료가 되었다. 세계사 강사는 개방 개혁의 시대 흐름에 편승해서, 한국이 통일을 한다면, 우리 한국은 대륙에 속해있으니 중국과 한 팀이 되어 미 일 해양세력에 대항해야 한다는 논리를 수업 시간에 가르쳤다. 당시로는 상당히 래디컬 한 주장이었고, 내 기억에 현재까지 남아있다.
두 얼굴의 송나라
각 왕조의 시조와 수도만 알았지, 수업을 통해서 서사적이고 세세한 부분을 스펀지처럼 흡수했고, 내가 만약 고려나 조선시대에 태어난 유학자였으면, 나도 사대주의자가 되었겠구나 할 만큼 중국은 역사상 세계 최고 선진국이라고 배웠다. 이미 1000여 년 전 역사상 한족 최약체였던 북송나라 때 석탄을 생활에너지로 사용해서 그때부터 미세먼지가 발생했었고 석탄의 높은 열량은 철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밀접한 짝이다. 철강은 무기도 만들지만, 농기구가 고도화되면 생산력 경제력의 보증수표였다. 송나라의 풍부한 경제력은 그 주변의 이민족들 거란 서하 토번 여진 몽골과의 전쟁을 억누를 만큼 위력을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돈으로 평화를 유지했다.
통합의 고려와 조선
동시대의 유럽은 암흑기 중간에 있어서 경제력이라고 해봐야 장원경제를 넘지 못했고 자본주의는 아직도 멀고 르네상스가 오기에 몇백 년이 필요했다. 송나라는 그 시대에 이미 유학은 성리학 단계로 나아가 철학적인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이 성리학을 받아서 조선의 학문적 관료적 토대를 닦은 것이 이색 길재 정몽주 정도전 등이 있다. 3 은으로 알려진 이색牧隱, 길재冶隱, 정몽주圃隱은 조선건국을 회피했지만 그들의 후예는 조선의 지배층이 되었다. 그만큼 중국 송은 세계적인 선진국이었다.
이전의 한나라 당나라 등의 통일 왕조 기본 외교정책은 철저한 이이제이以夷制夷였다. 한사군을 설치해서 고구려와 부여를 누르고, 신라와 백제를 이용해서 고구려를 결국은 멸망하게 만들고, 신라와 발해에 등거리 외교를 통해서 당의 안보를 보장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등거리 외교는 우리 말로는 치졸한 분열책동이었다.
반대로 그들이 약하거나 분열했던 때는, 한반도에 분열책동의 힘이 없는, 통합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사마의가 초석을 다진 통일 진왕조가 망한 후 5호 16국 때 고구려가 한반도를 제패하고 요동까지 진출했고, 당이 망하고 5대 10국 거란족 혼란기에 고려가 건국을 하고, 원과 명이 치열하게 대륙을 다투는 사이에 조선이 생겨서 압록강까지 진출했다. 통일황조 명도 중원을 장악했지만, 북으로 쫓겨간 남은 몽고와의 투쟁으로 조선에 상대적으로 분열책동 정책이 적은 편이었다.
한반도와 중국
지금이야 중국은 후진 상임이사국에서 G2로 호령을 하고 있지만, 지난 100여 년 넘게 이어온 퇴행시대를 겪어서 일반의 눈에는 비하하는 말과 속어 그리고 혐오의 대명사 등으로 저평가되어 왔다.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의 과거가 그들이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으로 가는 발목을 잡는다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중국은 한족만으로 역사상 중국전토와 만주까지 통합한 두 번째로 넓은 영토를 보유하고 있다. 만주가 한족 중국 밑으로 들어간 건 100년이 안되었다. 역시 역사적인 왕조와 같이 사대정책은 같은 자신들과의 수교는 오로지 중국과 하게 하고, 한반도의 우리에게는 북조선과 대한민국 양쪽과 수교를 하고 있다. 이 것도 이이제이 정책의 현대 버전이다. 결국은 지금의 중국하에서는 분열된 한반도가 통합하기 어렵다는 역사적 경험이 오버랩이 된다. 10여 년 전부터 중국은 5호 16국이 정답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고 있다. 한족의 중국은 한, 송, 명 세 개였고, 200년이 최대였다. 신해혁명 이후로 중국이 세워진지 100년을 넘어가고 있다. 통합에 대한 도전이 슬슬 내부로부터 흘러나올 때가 되었다.
독재 분열의 다른 이름
정통성이 부족한 위안스카이의 황제 즉위는 각 지역의 군벌들이 난립하는 단초를 제공했고, 장제스와 마오쩌둥의 승부로 결정이 났다. 최근 뉴스로 접하는 중국은 점점 현 정부 리더십이 독재를 넘어 황제화로 나아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하나같이 일사불란해 보이지만, 고구려의 철권통치 연개소문 사후에 고구려가 분열되고 망했듯이, 그 시간을 한반도는 준비하고 기다려야 한다.
#지정학 #중국사 #현대사 #생존전략 #브런치연재 #역사통찰
#틀린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 주세요. 수정하겠습니다..
#라이킷 팔로우는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댓글도 남겨주셔서 소통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습니다.